
천지간에 오월이 출렁거린다. 수 만 가지 초록빛깔에 눈이 부신다. 오월은 살아갈 날이 많은 사람에게도, 살아온 날이 많은 사람에게도 꿈을 꾸게 한다. 누구라도 한 번쯤 꽃으로 피어나고 싶은 오월~ 만개한 꽃의 느낌으로 대중들과 아름다운 인연을 지어가는 재즈가수 웅산을 만났다. 황금빛이 가득한 클림트의 그림들 속에서 초록빛 가득한 풍경화를 만나는 신선함이듯이 그녀는 잿빛 빌딩숲에 하늘하늘 꽃 스카프를 두르고 봄바람처럼 다가왔다.
재즈 … 그리고 자유하는 그녀
우리 귀에 익은 대중가요도 아니고, 학교에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접해본 클래식도 아니고 재즈라니~재즈라는 말에 진작부터 눈길을 돌리시려는 당신, 재즈는 끈적거리고 혼곤해지는 것 같아서 도저히 좋아할 수 없어…하는 당신에게 속삭이듯, 읊조리듯, 때로는 내어지르듯이 다가오는 재즈보컬리스트 웅산의 목소리를 만나게 하고 싶다. 15년째 재즈가수로 삶의 결을 컬러풀하게 만들어가는 웅산, 그녀가 한 때 수행자가 되고자 절에서 살았다는 이력은 불자인 우리들에게 특별한 느낌으로 와 닿는다. 그이는 열일곱살 꽃다운 나이에 단양 구인사에서 ‘웅산’이라는 법명을 받고 출가를 했다. “수행을 시작하고 2년이 채 못 되어 하산했지만 그 시절 관세음보살 정근하던 인연으로 이렇게 노래할 수 있도록 목이 틔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독과 회의로 찾아든 출가수행이 재즈로 연결되었지요. 불교수행 초기의 억제된 몇 가지 것들과 음악이 갖고 있는 분출이 재즈를 통해 접점을 이루었다고나 할까요.” 웅산이 빠져든 재즈의 매력은 무엇일까? 재즈칼럼니스트 황덕호는 ‘재즈는 예술적 정교함을 가지면서도, 한 스타일에 머무르지 않는 무한한 반복과 변주’ 라고 말한다. 재즈는 20세기를 전후해 미국에서 비주류에 속하던 흑인들에 의해 탄생한 음악이다. 낮에는 목수이고 이발사이던 흑인들이 밤마다 클럽에 모여 연주하고 노래하던 것이 발전해 재즈가 되었다. 소외되고 억압받던 민족에게서 나온 음악이기 때문에 재즈는 자유정신이 강하다. 역사도 자유롭고 다양한 변주에 열광한다. 웅산의 변화무쌍한 삶도 재즈의 자유와 변주를 닮아있다. 굳이 집중할 것도 없고 흥분하지도 않으며 가볍게 유연하는 자유…하여 재즈가수웅산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재즈와 더불어 자유한다.
해인사를 좋아하는 그녀, 가야산을 찾는 그녀
홍류동이 초록으로 짙어가던 어느 해 봄날, 그녀의 빨간 자동차에 잠시 동승한 적이 있다. 가야산의 기운을 받아들이고자 했을까? 차창을 활짝 열고 운전하던 그이를 기억하며 물었다. 해인사의, 가야산의 그 무엇이 그녀의 발길을 이끌게 하느냐고 “어렸을 적부터 엄마 아빠 따라 산사를 드나들었기도 하지만 워낙에 산을, 절집을 좋아해요. 특히 해인사 몇 분 스님들과는 부모님의 인연도 있구요. 겨울 가야산의 매력을 아세요? 아주 특별해요. 노래하다 지치면 해인사를 그리워하지요. 가끔은 가수 이은미언니랑도 함께 와서 에너지를 충전하는걸요. 주위 친구들에게 권해요. 세상살이 고단할 때 해인사에 들리라구요.” 그이는 해인사를 찾으면 비로자나부처님을 친견하기 전에 만나게 되는 국사단을 알고 있을까? 일주문을 지나 해탈문을 들어서기 전 계단 옆 오른쪽에 자리한 국사단에 정견모주가 모셔져있다. 정견모주는 신비의 왕국 대가야의 건국설화에 가야산의 여신으로 나와 있다. 가야의 시조인 수로왕의 어머니로 기록되어 있음을 되새기니 그녀가 가야산을 특히 좋아하는 것에는 어떤 알 수 없는 이끌림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고? 그녀는 재즈계의 여신으로 인정받고 있으니….웅산은 1996년 재즈보컬리스트로 데뷔 후 98년 일본에서의 활동을 시작으로 2000 년 한·미·일 재즈페스티벌 참가로 국제무대에 올랐다. 2004년 1집 앨범(Love Lettr)을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내놓고 올 3월 5집 앨범(Close Your Eyes)까지 발매하며 3년째 계속하는 ‘윈디 스프링 콘서트’로 전국에 봄바람을 날리며 재즈팬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유마거사는 그대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 하였던가? 팬들이 행복하니 그녀도 행복하다. 지난 2008년에는 한국 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크로스 오버 음반상과 노래상을 받았으며 금년 1월에는 재즈강국 일본의 유명잡지<스윙 저널>의 ‘골드 디스크상’수상으로 일본에서의 활동도 열매 맺기가 시작되었다. 게다가 시청률 30%를 이상을 기록한 TV드라마 <추노>의 삽입곡 ‘지독한 사랑’이 대중적인 관심도 받고 있으니 그녀의 겨드랑이가 간질간질 할 것 같다. 재즈가수 웅산의 노래에 날개가 달릴 것 같으니 말이다.
재즈에는 명곡이 없다. 명연주자가 있을 뿐
필자에게도 재즈는 그리 쉽지 않았다. 언젠가 며칠 아프고 삶이 시든 배추처럼 축축 처져 내리던 날 한 친구가 던져준 재즈CD 몇 장과 관련서적 2권이 재즈와 웅산을 인연지어 주었다. 꽃바람이 불어도, 봄꽃이 흐드러져도 사는 것이 심란하여 오월 햇살마저 외면하고 싶은 그대, 한국의 여성재즈 가수 중에서 가장 화통하게 노래한다는 웅산을 만나보라. 화들짝 놀라 자리를 털고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봄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듯 볼륨을 높이지 않고 속삭이듯 부르는 토치송(torch song)창법으로 위무하다가 허스키보이스로 웅장하게 내지르는 강인함으로 허물어져 있는 우리에게 손을 내민다. 거부하지 말고 그이의 손을 잡고 오월 산야로 나서보자. 콘서트의 앵콜송으로 <루치오 달라> 작곡의 ‘카루소’를 그녀만의 독특한 색깔로 마무리한 웅산, 그녀의 목소리는 강철 고드름이 되어 청중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파바로티나 도밍고, 카레라스같은 테너가수의 전유물이라 여겼던 성악곡을 JAZZY하게, 멋들어지게 불러낸 그녀의 이야기다. “록으로, 재즈로, 블루스로 다양한 시도를 하는 가운데 방송을 진행하고 학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며(웅산은 경희대학교 포스터모던과 보컬교수로도 활동 중)여러 장르의 음악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클래식도 많이 들으면서 귀가 열렸죠. 그래서 오페라 음악도 제 스타일로 JAZZY한 느낌으로 불러 본 거에요.” 재즈에는 명곡이 없고 명연주자가 있을 뿐이라는 말이 새롭다. “재즈는 가장 내추럴 한 창법이에요. 스스로 느끼고 소화해서 자기화 시켜야 하거든요. 원곡에 가까이 부르려고 하는 것은 가식이고 재즈에 대한 배신이랄 수도 있어요. 누가 부르느냐에 따라 새롭게 변하고 재해석되기 때문이죠.” 그녀는 재즈를 전 방위로 확장하고 있는 음악인이다.
가장 좋은 친구 재즈, 재즈는 나의 수행이기도
무대 위에서는 엄청난 에너지로 한없이 열정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몸짓으로 모든 관객을 일으켜 세워 열광케 하더니 리허설 현장에서는 또 다른 모습이다. 무대에서는 아주 크고 당당하게 느껴지더니 뜻밖이다.“제 이름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거대하고 뛰어난 웅(雄) 산(山)이잖아요. 하하.” 계속되는 연주여행으로 목소리를 아껴야했지만 이것저것 묻는 내게 정성껏 답해주는 그녀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재즈가수 웅산에게 재즈는, 음악은 과연 무엇일까.? “음악은 제게 수행이기도 해요. 절대 게을리 할 수 없는 것이 재즈에요. 계속해서 발전 시켜야 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야하고 그러면서 그 안에서 충분히 자유로워야 하거든요. 음~~그리고 음악은 제게 가장 좋은 친구죠. 연인은 만나서 헤어지기도 하지만 친구는 평생 갑니다. 살면서 좋은 친구 하나 얻으면 그 인생 성공 아닐까요? 재즈라는 멋진 음악을 친구 삼게 되어 아주 행복해요.” 원고를 쓰고 있는데 그녀에게서 메시지가 날아왔다.<언제 해인사에서 차 마시며 얘기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날이 기다려진다. 김선우 詩를 좋아한다는 웅산이 가야산에 들면 해인사를 좋아하는 김선우시인에게도 기별해야겠다. 세 여인이 국사단을 지나 대적광전으로 오를 때 불두화 피어나면 더욱 좋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