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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데라의 해인사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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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향기 - 오노데라 사토미/한국어강사 2010년 05월 339호
귀원이 어딘지는 저희도 잘 몰라요.”
통영 관광을 마치고 진주 버스터미널에서 해인사행 막차를 놓친 우리는 안내 창구에서 귀원행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이때부터 조금 나쁜 예감이 들었다. 1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내린 그곳에는 작은 슈퍼마켓이 하나 있을 뿐이었고, 그 옆에 허름한 다방과 노래방이 있었다. 완벽한 시골인 셈이다. 이미 시간은 밤 7시 30분을 지나 주변은 어두웠고, 내 마음도 하늘 색처럼 깜깜해졌다.
하지만 한국은 얼마나 좋은 나라인가. 우리에게 해인사를 안내해 주기로 약속한 지인의 친구이자 사진작가인 이형준 선생님이 해인사에서 4,50분 거리에 있는 작은 마을, 귀원까지 우리를 구출하러 나와 주셨다. 이렇게 해서 우리 셋은 차에 올라 자기 소개를 하고 절에 머무를 때 미리 알아놓아야 할 이야기를 들으며 즐겁게 해인사로 향했다. 해인사에 도착하니 밤 9시 반이 넘은 시간. 한국인의 친절을 뼈저리게 느끼고, 또 깊은 산속에 있는 절인데도 시골 버스 정거장까지 핸드폰 통화가 가능하다는 것에 내심 감탄한 하루였다. 해인사에서 보낸 감동적인 첫날이다.

나는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시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한국어 강사다. 지금까지 20년에 걸쳐 70번 이상 한국을 방문했지만, 절에 묵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에서는 지역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고야산의 슈쿠보(절의 숙박 시설 명칭)에서 딱 한번 숙박한 적이 있다. 불교가 한국(당시 백제)에서 전해진 것은 일본 교과서에도 나와 있는 사실이고 나 역시 한국 산사가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던 차에 특별한 기회를 얻어 부푼 마음으로 해인사를 찾았다. 다음은 일본으로 돌아간 후 직장인 대상 한국어 강좌에서 수강생들에게 해인사 경험을 간략하게 설명한 내용이다.

해인사의 하루
아침 5시 기상. 절에서 제공되는 식사를 공양이라고 하는데, 6시 공양 시간을 놓치면 점심까지 아무것도 못 먹는다. 난 절에서 자는 게 너무 기뻐 5시에 일어났는데 친구는 30분만 더 자겠단다. 나는 일찍 세수를 하고 아침의 맑은 공기를 즐겼다.

템플 스테이 프로그램은 보통 토요일부터 일요일까지 1박 2일로 진행되는데, 이를 이용하면 스님의 말씀을 듣고 간단한 행사에도 참여할 수 있다. 이번에 내가 해인사를 찾은 날은 템플 스테이 프로그램이 없는 요일이라 안타깝게 정식 프로그램에는 참여할 수 없었다. 대신해인사를 비롯해 유네스코 선정, 세계문화유산 사진을 많이 찍고 계신 사진작가 이형준 선생님의 안내로 해인사에서 숙박할 기회를 얻었다. 덕분에 스님의 귀한 말씀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나만의 해인사 베스트 3을 꼽는다면, 우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팔만대장경이다. 고려시대 만들어진 이것은 목판에 새겨진 경전이 무려 8만장 이상 된다고 한다.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창고는 800년 이상 풍설을 견뎌낸 것으로, 전쟁의 피해를 받지 않은 덕분에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워낙 통풍이 잘 되고 습기가 잘 빠지는 구조라 목판을 무사히 보관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스님에게 전해 들었다. 한국 선인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목판을 3년 정도 바닷물에 담아 놓으면 연분이 목판에 스며들어 목판의 부식을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중에 다른 한국 분에게 들었다.

다음으로 꼽고 싶은 것은 스님의 말씀이다. 솔직히 말해 일본에서도 스님 방에 들어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눠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스님 앞에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벅찬 감동이 느껴졌다. 한국 스님은 평생 독신, 일본은 일부 큰 절을 제외하고 스님들이 자식을 낳아 대를 이어간다. 한국과 일본 절은 전혀 다른 시스템인 것이다. 해인사 스님은 100명 이상 계시는 것 같았는데 말씀을 나누는 기회를 얻은 스님만 해도 기도를 전문적으로 올리는 스님, 숙박체제 일정 등 대외 업무를 담당하는 스님, 출판물 편집을 맡고 계시는 스님 등, 웬만한 기업체만큼 조직성이 있는 듯했다.
스님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싹싹하고 내 이야기도 잘 들어주었다. 한국과 일본 사람 사이에서 흔히 일어나는 선입견으로 대화가 막히는 일도 거의 없었고, 그분들과의 대화를 통해 정말 마음이 가벼워졌다. 일본 사람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것을 은근히 헤아려주시는 것 같았다.
“고민이 있어요?”라고 물어보시길래 “지금은 없는데 예전에는 있었다”고 하며 옛날 경험을 말씀 드렸고, 스님은 나에게 추천할 만한 경전을 몇 편 소개해 주기도 했다. 그동안 내가 70번 넘게 한국에 드나들면서 경험한 것 중, 해인사에서 스님과 나눈 대화는 1,2위를 다투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3번째 경험은 공양을 꼽고 싶다. 공양은 밥과 국, 그리고 야채와 나물 반찬 2-3가지, 김치와 깍두기 정도가 나오는 불교 식사다. 당연히 고기는 없다. 자기가 먹고 싶은 만큼 접시에 담아 먹는데, 야채만 사용해서 만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말 입맛에 잘 맞았다. 아마 평생 그 맛을 잊지 못할 듯하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암자 산책도 한국 산사의 숨겨진 매력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암자란 본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세워진 작은 절들을 말하는데 암자로 가는 길은 가벼운 등산 기분으로 떠나기 좋고, 아담하고 조촐한 분위기가 이어져 사진 찍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외국인인 나는 공교롭게도 모르고 있었지만 “산은 산이다, 물은 물이다”란 말로 유명한 성철 스님이 계셨던 암자가 해인사 근처에 있었다. 이 암자의 건물은 무척 차분한 색이었고, 높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멀리 웅장한 산세를 바라볼 수 있어 정신을 맑게 깨우는 장소였다. 속세를 떠나 석가모니불의 가르침을 배우는 성스러운 공간에 잠시나마 몸을 담을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음에는 꼭 템플 스테이 프로그램이 있는 토요일에 해인사를 찾아 다른 외국인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다.
끝으로 내 경험담을 들은 수강생들의 반응이 흥미진진해 몇 가지 한국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수강생들이 나에게 몇 개의 질문을 던졌다.
“스님도 군대에 가나요?”
“공양은 남기면 안 된다고 하는데 더 먹고 싶으면 한번 더 가져와서 먹어도 되나요?”
다음 번에는 우리 수강생들과 함께 해인사를 찾아가 직접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들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어 나에게 정말 친절하게 대해 주신 해인사 스님들, 관계자 분들, 끝까지 세심하게 배려해 주신 이형준 작가님, 그리고 내 한국 친구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