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놀음에 도끼자루(난가爛柯) 썩는 줄 모른다”는 고사가 있다. 바둑에 몰입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는 삼매경에 빠지기 마련이다. 고등학교 때 친구에게 바둑을 처음 배울 당시는 누워서 천정을 보면 바둑판으로 보일 정도로 푹 빠졌다. 대학 시절에는 주로 휴일에 가끔 친구와 바둑을 두었으며,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는 퇴근 후 짬을 내어 인터넷 바둑을 두곤 했다. 몇 달 전 모처럼 여유가 생겨 다시 바둑을 두어보니, “바둑을 두면 자기 수양이 되고,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고 한 이창호 국수의 말처럼 필자에게는 바둑이 적지 않은 삶의 교훈을 주었음을 되돌아 보게 된다.
바둑을 알게 된 지 28년만에 필자의 기력은 아마 2단 정도가 되었다. 바둑을 보는 마음자세도 확연히 달라졌다. 무엇보다 승부에 대한 집착이 거의 사라졌다. 이제는 게임에 지더라도 분한 마음 보다는 스스로의 욕심이나 상대방에 대한 자만심, 치밀하지 못한 성격을 점검하게 된다. 그리고 집중력도 높아져 방심하지 않는 한 동급에서는 지는 일이 드물게 되었다. 게임을 할 때는 오로지 바둑에만 몰두하니, 그야말로 바둑판 앞에 사람이 없다는 ‘반전무인盤前無人’이란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반전무인’이란 승부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이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같이 차분히 가라앉아 아무것도 걸림이 없이 무심無心, 무아지경無我之境에서 바둑을 둔다는 말이다. 바둑판 위에서 주고 받는 한 수, 한 수의 작용만 있고 정작 두는 사람이 없는 ‘무심의 거래’는 선禪 수행자들이 추구하는 한 물건도 없는 무일물無一物의 경지와 유사하다. 반상에는 오직 흑돌과 백돌의 수순이 있을 뿐이라는 생각으로 평정심을 닦아가면 점점 이길 확률이 높아지지만, 정석定石과 묘수풀이와 같은 기술적인 연마도 동시에 필요한 것이 바둑이다.
청나라 순치順治황제가 “백년의 세상일은 하룻밤의 꿈속이요(백년세사삼경몽百年世事三更夢) 만리의 이 강산은 한판의 바둑이라(만리강산일국기萬里江山一局碁)]”고 노래했듯이 한 판의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인생이 생로병사를 연출하는 장편영화라면, 한 판의 바둑은 희로애락을 보여주는 단편영화라고나 할까. 긴장, 동요, 결단, 환희, 착각, 고통 등의 의식의 흐름이 이어지는 치열한 한판의 바둑도 승부가 결정되는 순간, 다시 텅 빈 바둑판으로 되돌아간다. 흑백의 돌을 가리는 이전으로 돌아간 순간은 마치, 육조 혜능 선사가 명상좌에게 던진 “선도, 악도 생각하지 않을 때, 그대의 본래면목은 무엇인가?”하는 화두를 떠올리게 한다.
간화선을 집대성한 대혜 선사는 『서장』에서 조대제의 편지에 답하면서, 흑백을 가리기 이전의 한 수 즉, ‘일착자一著子’를 아래와 같은 화두로 제시할 정도로 선과 바둑은 깊은 인연이 있다.
“이참정 거사와 매일 마주하면 바둑 두는 일외엔 ‘이 일’을 대화한 적이 있습니까? 단지 바둑만 두고 ‘이 일’에 관해 대화한 적이 없다면 그 즉시 바로 바둑의 흑백이 아직 가리지 못한 곳에 나아가 바둑판을 뒤집고 바둑알을 흩어버린 후에 그에게 물어보십시오? ‘어느 곳에 이 한 점을 놓을 것인가?’하고.”
흑백과 선악, 옳고 그름 등 온갖 시비분별이 벌어지기 이전의 본래면목을 상징하는 ‘일착자’는 일심一心, 일물一物, 불성佛性, 진여眞如, 열반涅槃, 원각圓覺, 심인心印, 심경心鏡, 심월心月, 여의주如意珠 등 가지가지의 이름으로 상징되는 본래의 마음자리를 뜻한다.
흑돌과 백돌로 나뉘어지기 전 바둑판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텅빈 자리이면서도 온갖 묘수를 간직한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진여실상眞如實相을 상징하기도 한다. 텅빈 바둑판에서 전개되는 무한한 수手는 선禪에서 말하는 1천7백 공안과 다름 없다. 산천 초목이나 꽃이 피고 새가 지저귀며 낙엽이 지는 온갖 자연현상을 화두로 보는 현성공안現成公案에 따른다면 공안 역시 무한한 셈이다. 이런 점에서 바둑과 선이 둘이 아니라고 하는 ‘기선일여棋禪一如’라는 말을 붙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싶다. 언제 어디서나 마주하는 일상생활의 순간순간이 화두라면, 바둑에 몰입하는 시간 역시 수행의 과정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1600여 년 전 중국의 동진시대에 지도림支道林이란 스님이 바둑을 ‘수담手談’이라 표현했듯이 바둑은 말없는 대화이다. 묵언의 수담을 통해 심성을 도야하는 바둑은 중도中道의 묘리를 터득하는 방편이 될 수도 있다. 다음은 위기십결圍棋十訣의 교훈을 불교수행에 대입해 본 것이다.
① 부득탐승不得貪勝(너무 이기려고만 하지 말라); 집착과 욕심 없는 정진 ② 입계의완入界誼緩(경계를 넘어 들어갈 때는 천천히 행동하라); 하심과 인욕 ③ 공피고아攻彼顧我(상대방을 공격할 때 먼저 자신을 돌아보라); 회광반조 ④ 기자쟁선棄子爭先(돌 몇 점을 희생시키더라도 선수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이 일대사인가? ⑤ 사소취대捨小取大(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 번뇌 버리고 부동심 유지 ⑥ 봉위수기逢危須棄(위기에 처할 경우에는 모름지기 버리라; 방하착 하기 ⑦ 신물경속愼勿輕速(바둑을 경솔히 빨리 두지 말라); 빨리 깨닫기를 바라지 말라 ⑧ 동수상응動須相應(행마를 할 때는 이쪽 저쪽이 서로 호응되도록 하라); 연기법 깨닫기 ⑨ 피강자보彼强自保(상대가 강한 곳에서는 내 편의 돌을 잘 보살피라); 참회와 인욕 ⑩ 세고취화勢孤取和(상대편 세력 속에서 고립이 되는 경우에는 빨리 안정하라); 정견과 중도 수행
이와 같은 ‘위기십결’에 따라 바둑을 둔다면 한수 한수가 그대로 ‘한소식’을 담은 ‘이 도리’를 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너무 지나치게 바둑 두는 시간을 뺏기지 않는다면, 가끔은 평상심平常心과 무심無心을 수련할 수 있는 바둑에 몰입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오등회원五燈會元에서 부산원浮山遠 선사가 문충공文忠公에게 제시한 화두를 참구하며 이심전심의 수담을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
“일러라 일러! 흑백이 나뉘기 전에 한수는 어느 곳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