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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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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의 향기 - 경성 2010년 05월 339호
부처님의 여러 가지 설명 가운데에 비유법譬喩法은 보다 쉽고 자세한 설명을 위해서 중생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배려에 의한 것이다. 그 가운데에 바다의 여덟 가지 특성을 불법佛法에 비유하시면서 대중의 화합과 포용과 청정과 정진을 강조하셨다.
바닷물에는 여덟 가지 특별한 법이 있는데, 첫째는 시냇물과 개울과 계곡의 물과 폭포 등의 온갖 것들이 흘러 들어가서 모이는 것이며, 둘째는 항상 머물러서 조수潮水의 법칙을 어기지 않는 것이고, 셋째는 여러 갈래의 강물이 모두 바다에 들어가면 본래의 이름을 잃고 바다라 부르는 것이며, 넷째는 아무리 많은 강물과 빗물이 바다에 흘러 들어가더라도 바닷물은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는 것이고, 다섯째는 바닷물은 전체가 짜서 맛이 동일한 것이고, 여섯째는 시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며, 일곱째는 육지에 없는 진귀한 보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고, 마지막 여덟째는 몸집이 거대한 중생들이 살아가는 것 등이다.
이와 같이 나의 법에도 여덟 가지 특별한 법이 있으니, 첫째는 저 바닷물에 온갖 물들이 흘러들어 모이는 것처럼 모든 제자들이 점차 계를 배우고 훌륭한 법을 수행하는 것이며, 둘째는 바닷물이 항상 머물러 있으면서 조수의 법칙을 잃지 않는 것과 같이 나의 제자들도 계율 속에 살면서 목숨이 다할 때까지 계율을 범하지 않는 것이고, 셋째는 여러 갈래의 강물이 바다에 들어가면 본래의 이름을 버리고 바다라고 불리는 것처럼 나의 법 안에서 네 가지 종성種姓 들이 믿음이 견고하고 출가하여 도를 수행하면 본래의 출신성분의 계급은 없어지고 모두를 부처님의 제자라고 부르는 것이며, 넷째는 아무리 많은 강물이나 빗물이 바다에 들어오더라도 바닷물은 증감增減이 없는 것처럼 훌륭한 제자들이 견고한 신심信心으로 도를 수행하여 모두 남음 없는 열반의 경계에(무여열반 無餘涅槃) 들어가더라도 열반의 경계는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는 것이고, 다섯째는 바닷물이 모두 짠 맛인 것과 같이 불법의 가운데에서는 똑같은 해탈의 맛을 얻는 것이며, 여섯째는 바다가 시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처럼 사문沙門이 아니면서 스스로 사문이라고 하거나 혹은 범행梵行을 닦지 않으면서 스스로 범행을 닦는다고 말하거나 혹은 계를 법하고 부정한 행으로 더럽히는 수행자는 대중이 멀리하고 용납하지 않는 것이고, 일곱째는 육지에 없는 진귀한 보배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불법 가운데에는 세속에 없는 육바라밀六波羅密과 팔정도八正道와 선정禪定과 반야般若 등의 보물이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어우러지게 하는 것이며, 여덟째는 바다에 거대한 중생들이 사는 것처럼 불법 가운데에서 아라한과를 향하면 아라한과를 얻고 내지는 불과佛果를 향하면 부처의 지위에 오르게 되는 것으로, 이것을 불법의 여덟 가지 특별한 법이라고 한다.
정법正法의 수행修行과 여법如法한 범행梵行은 출가자의 생명이며, 목숨이다. 정법의 수행으로 외부와의 소통을 구현하고, 여법한 범행으로는 자신과의 치열한 소통을 성취한다. 안과 밖의 소통은 새의 양쪽 날개와(여조양익 如鳥兩翊) 같고 수레의 두 바퀴와(여거이륜如車二輪) 같아서 어느 한 쪽을 포기하거나 가벼이 여길 수 없다. 만약 어느 한 쪽의 소통에 치중한다면 결국에는 날지 못하는 새, 굴러가지 못하는 수레와 같은 상황이 도래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내면의 소통, 내부와의 소통보다는 외부적인 소통에 공력功力을 소모함으로써 정작 내면의 외침과 비명을 묵과하지는 않았는지 모두의 성찰省察이 긴요緊要한 시점이다. 출가 이전의 모든 족성族姓과 특성을 내던지고 동일한 이름과 동일한 맛과 동일한 수행법과 동일한 과위果位를 취향趣向하는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충분한 설명으로 취지趣旨에 대한 이해를 선행先行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이제부터라도 이해와 협조를 위한 설명에 진력盡力을 기울여야 할 것이며, 다른 한편에서는 취지에 대한 공감共感을 기반으로 시행방법이나 시기절차에 대한 각자의 의견이나 소신을 피력하여 추호의 의심이나 우려를 전반적으로 종식終息해야 한다.
여러 갈래의 강물이 바다에 들어가면 본래의 이름을 버리고 모두 바다라고 불리는 것처럼, 의견과 주장이 제각각이더라도 궁극적으로는 불법을 위한 수행과 불법을 통한 실천을 취향할 것이기 때문이다. 본래의 이름을 버림으로써 바다에 합류한 강물처럼, 자신의 소견을 강요하기에 앞서서 반론反論에 귀 기울이고 받아들이는 포용과 관용으로 입지立地와 위세威勢가 굳건해질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공청회와 토론회 등으로 소통을 통한 해결책을 궁구하고자 하는 의지를 시행하고 있으니 자못 고무적인 기대감이 등등騰騰하다.
무엇보다도 무소유의 표상表象을 온몸으로 구현하신 큰스님의 유지遺志에 누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노심초사를 안도케 하는 동시에, 유례類例가 없는 불행한 사태에 대해서 군민軍民의 근신謹愼으로 아픔을 나누는 상황에서 시대적인 요구와 기대에 부응하는 대처對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