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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바퀴로 가는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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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이야기 - 원경/고불총림 백양사 율원 2010년 05월 339호
네 바퀴로 가는 자동차
원경圓鏡 / 고불총림 백양사 율원(청류암)

먼저, 불·법·승 삼보에 귀의 합니다.
여러분 지금 행복하십니까? 여러분 지금 행복하십니까? 여러분 지금 행복하십니까?
부처님 말씀을 배우다 신심이 홀연히 돈독하여 잠시 시간을 내어 외국으로 수행처를 찾아 다니며 참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굴뚝같은 신심으로 마음 밭에 들어서니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모를 정도로 잡초들로 가득하더군요. 그래도 이왕 시작한 밭일 차근차근 오목조목 잡초를 뽑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는 서늘한 기운에, 낮에는 얼굴을 태울 듯 한 햇볕에, 저녁에는 하루 일에 녹초가 되어가는 몸의 노곤함에 몸과 마음이 말을 듣지 않고 제각각 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황소 같은 마음으로 하루하루 밭일을 지어나가다 보니 반대편 밭두둑이 한 발치 앞에 다가왔습니다. 아! 이제 김매는 일도 끝이 나고 있구나! 어서 씨를 뿌려야지 하고 허리를 펴 그동안 김을 맨 뒤쪽을 돌아보니, 아니 이게 왠 걸! 몇 일째 김을 맨 자리에 다시 잡초들이 자라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 일이 헛일이 되어버렸네요. 마음 밭에 씨를 빨리 뿌리고 싶은 마음에 잡초를 뿌리째 뽑지 않고 잎사귀만 잡고 뜯었더니 땅속에 남아있던 뿌리에서 다시 새 잎들이 자라나고 있었던 겁니다.
세상사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듯 합니다. 마음만 앞서서 일을 진행하다보면 재 짝을 잃은 단추와 단추 구멍처럼 뒤엉켜 버려 모든 일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습니다. 내 마음 밭에 부처님 법의 씨를 뿌리기 위해서는 먼저 다겁생래에 훈습되어온 번뇌의 업종자를 뽑아내고 그런 뒤에 법의 씨를 뿌려야만 법의 꽃이 활짝 필 수 있게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 밭에 씨는 뿌려보지도 못하고 번뇌의 풀만 어설프게 뽑으며 땅을 치고 있던 차에 분한신고를 하기 위해 귀국하여 보니, 세상이 어수선하여 그런지 그렇지 않아도 어눌한 이에게는 참 적응하기 어려운 시간들입니다. 스님들 간의 분한 신고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로 종단이 어수선하고, 김길태 성범죄 사건이 일어나고, 무소유의 삶으로 평생을 살아오신 법정 큰스님께서 열반을 하시고, 봉은사 직영사찰 문제에 대해 승단 내부와 정치권과 종단의 갈등으로 세간이 시끄럽고, 천안함 사태로 온 국민의 마음이 슬픔에 잠겨있는 시국에 일련의 이러한 일들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근본적인 갈등의 요인들을 살펴보면 사회구성원들 간의 역할과 소통에 문제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소통방식의 변화
애플 아이폰이라는 스마트폰이 몰고 온 사회 전반에 걸친 변화의 바람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제품의 휴대폰이 세계 속에서 선두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이폰의 출현에 우리 제품들이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추세라면 선두자리를 내줘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기존의 제품들은 제조사에서 만들어 놓은 환경을 소비자들이 그대로 이용하는 방식이었다면, 아이폰 방식은 제조사는 큰 테두리만 정해주고 사용자들이 자기들의 취향에 맞게 선택하여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파트 건설 시공자가 모든 방의 구조나 인테리어를 결정하여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것이 기존의 방식이라면, 아이폰의 경우 건설 시공자는 아파트라는 빈 공간만을 제공하고 입주자가 자신에 맞게 공간을 모델링하는 방식입니다. 만일 입주자가 주택으로 쓰겠다면 주택으로 공간을 꾸미고, 음식점을 운영한다면 음식점에 맞게 꾸미고, 사무실로 쓰려고 하면 그 용도에 맞게 공간을 배치하여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사용자의 선택의 폭이 그만큼 넓어졌다는 말이다.
아이폰이 가져온 사회 변화의 바람은 수직적, 일방향적 소통의 세계에서 수평적, 쌍방향적 소통의 세계로 변화시키고 있고, 이에 소비자들은 사용자 위주의 변화에 호응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건발생 원인의 불명확성
또 하나 오늘날 사회문제 중에 눈여겨 볼 부분은 성범죄나 살인사건, 방화, 폭행 등의 사건들이 우발적이란 것입니다. 뚜렷한 원인 없이 즉흥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느 남자 중학생 폭행과 그로인한 사망 사건의 가해자인 동급생 친구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는데, 친구를 왜 때렸냐는 질문에 생일파티를 하지 않아 기분이 나빠 때렸다는 것입니다. 생일파티를 하지 않은 것이 사망에까지 이를 정도의 사건의 원인이 될 수 있겠는가? 이번 사건의 가해 학생이 보이는 마음의 상태를 보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점을 직시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과다한 스트레스로 인한 소통의 장애를 안고 있습니다. 결손아 문제, 입시 문제, 취업 문제, 결혼 문제, 노후 문제 등 다양한 사회 구조적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 있으면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원인이 불분명해져 스트레스를 해소할 대상 또한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상대가 분명하다면 그 상대에게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을 찾겠지만 상대가 불분명해지다 보니 해소의 대상 또한 불분명해져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듯 합니다. 현재 조계종단내에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 또한 이와 같다고 생각됩니다. 부처님 정법이 세워지지 않는 상태에서 누적되어오는 종단내의 여러 가지 문제들이 과부하가 걸린 기계처럼 위험 천만한 상황들입니다.

사건처리의 모호성
천안함 사태 이후의 군당국이나 정부 그리고 언론의 정확하지 못한 상황 발표는 국민들을 불신과 혼돈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사태에 대한 신속한 처리도 중요하지만 정확한 정보의 제공이 필요합니다. 부정확한 정보는 추측성 보도와 그로인한 불필요한 긴장과 국론 분열은 물론 국민들을 불안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가?
불교에서 승가라 함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이들의 모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승가의 바람직한 모습을 통해 사회의 문제와 승가의 문제에 대한 해결점을 찾아보겠습니다.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사부대중이 승가의 구성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부대중은 서로서로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비구, 비구니 출가자는 우바새, 우바이 재가자의 경제적 도움을 받아 수행하며 그 수행에 따른 성취의 결과를 재가자에 회향하여 재가자의 행복과 평안을 위해 노력합니다. 한 가정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이 정해져 있듯 출가자, 재가자의 역할 또한 어느 정도 정해져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장님과 앉은뱅이가 있다고 합시다. 두 사람이 강을 건너 잔치 집에 가려하는데 장님은 다리는 멀쩡한데 눈이 어두워 강을 건널 수 없고, 앉은뱅이는 눈은 밝지만 다리가 불편하여 건널 수 없다고 한다면 이 두 사람이 강을 건너 잔치 집에 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알다시피 장님이 앉은뱅이를 업어 앉은뱅이의 다리가 되어주고, 앉은뱅이는 장님의 눈이 되어 주어 두 사람이 강을 안전하게 건널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앉은뱅이는 눈 밝은 출가 스승이라면 장님은 재가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출가자와 재가자는 서로 떨어져서는 극락정토에 이를 수 없습니다. 출가자가 재가자의 경제적 보살핌 없이 몇 일을 살 수 있겠습니까? 재가자 또한 출가자의 가르침 없이 어떻게 진리의 길을 찾겠습니까?
또 하나의 예를 들어 보면, 오늘날 우리 삶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자동차를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자동차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네 바퀴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네 바퀴가 움직이는 모습 또한 여러 가지입니다. 앞바퀴 두 개만 움직이는 전륜, 뒤 두 바퀴만 움직이는 후륜, 네 바퀴 모두 움직이는 4륜 자동차가 있습니다. 전륜이든 후륜이든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평평하고 좋은 상태의 도로를 달리는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눈길이나 빗길, 또는 높은 언덕길 등 열악한 상태의 길을 가는데 전륜이나 후륜으로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나마 4륜이라야 그런 길을 가는데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전륜은 출가자에, 후륜은 재가자에, 4륜은 출가자 재가자 모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불교를 바라 볼 때 출가자 비구 중심의 불교, 재가자 우바이(통상적으로 보살) 중심의 불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륜도 아니고, 후륜도 아니고 그렇다고 4륜도 아닌 앞뒤 바퀴하나씩이 펑크가 나 있는 고장 난 자동차입니다. 바퀴 4개중에 하나라도 이상이 생기면 자동차에 무리가 오거나 심하면 전복사고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 조계종단이 현재 안고 있는 문제점의 원인도 사부대중의 상호 역할이 부재한 탓이라고 봅니다.
승가에서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우선 사부대중이 모두 참여하는 열린 공간이어야 하겠습니다. 한쪽으로 치우쳐진 상하부 구조가 아니고 인드라망과 같이 중중무진으로 펼쳐진 다양한 대중의 의견이 수렴되고 조율되는 평등한 대중의 장이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모든 문제가 맑고 투명하게 처리되어야 하겠습니다. 어두운 방안에서 바늘귀를 못 찾듯이 밝은 햇빛 아래와 같이 모든 대중이 수긍할 수 있는 정보의 공개와 토론이 이루어지는 장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부처님께서 수행을 통하여 정각을 이루신 순간 읊은 게송을 모든 대중들과 함께하여 모든 이들이 항상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한량없는 세월의 생사윤회 속에서
집을 짓는 자가 누구인지 알려고
찾아 헤매다 헤매다 찾지 못하여
계속해서 태어났나니 이는 둑카(dukkhā)였네.

아, 집을 짓는 자여! 나는 이제 너를 보았노라.
너는 이제 더 이상 집을 짓지 못하리라.
이제 모든 서까래는 부서졌고
대들보는 산산이 조각났으며
나의 마음은 닙바나에 이르렀고
모든 욕망은 파괴되어 버렸느리라.

선재 선재 선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