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가에선 말로는 미치지 못하는 밑바닥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을 양구良久라고 한다. 단상에 올라 법문을 하기 전 선사들이 묵묵히 앉아 있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또 무언의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학인들에게 회광반조回光返照시킬 때 선사들이 종종 드러내는 행동이기도 하다.
당나라의 구지俱胝 화상은 평생 동안 누가 와서 무엇을 묻든 손가락 하나만을 세워 들었다. 임종 때 대중에게 “내가 천룡天龍 스님에게 일지선一指禪을 얻은 후 평생 동안 사용해도 모두 써버리지 못했다” 하고는 손가락을 곧추 세운 후 돌아갔다. 비마秘魔 스님은 일생 동안 나무집게 하나만을 사용했고, 타지打地 스님은 묻기만 하면 한 차례 땅을 내리쳤을 뿐이다.
무업 스님은 일생 동안 혹 누가 묻기만 하면 “망상을 피우지 말라”고 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르기를 “한 곳을 꿰뚫으면 천 곳 만 곳을 일시에 꿰뚫고, 한 기연機緣을 밝히면 천 기연 만 기연이 일시에 밝혀진다”고 했다. 이처럼 옛 어른들은 심오하고 은밀하게 학인들을 제접했다.
“가봐.”
이 말은 내가 상좌들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이며 거기서 조금 더 보탠 말은 “가, 밥먹어라”였다. 천성적으로 말수가 적기도 했지만 수행자에게 “수행정진하라”는 말밖에는 모두 군더더기다.
태백산 도솔암에서 오랫동안 정진하고 내려온 상좌가 내게 절을 하고 앉았다. 수좌들 사이에선 태백산 봉화 홍제사에서 한 시간 거리인 도솔암이 춥고 배고프기 위해 들어가는 곳으로 통한다. 샛길도 인적도 끊긴 절해고도와 같은 도솔암에서 6년 동안 단 한 번도 내려오지 않고 정진한 상좌에게 말했다.
“더 하지 않고 벌써 내려온 거냐?”
묵묵히 앉아 있는 상좌에게 내가 다시 말했다.
“가봐.”
잘 먹지를 못해 이가 우수수 쏟아져버리자 이 치료를 받기 위해 잠시 내려왔던 상좌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서운했을 것이다. 그가 다시 도솔암에 올라가 10여 년을 더 공부하고 내려왔다. 공부를 하면서 상좌는 내가 했던 단 한마디의 “가봐”라는 말 속에서 ‘하다 말다 하는 공부는 열 걸음 나아갔다가 아홉 걸음 후퇴하는 것’이라는 뜻임을 알았을 것이다.
그가 다시 내려와 삼배를 하고 앉았다. 젊은 날 그곳에서 정진했던 나는 도를 이루기 위한 염원이 뼈에 사무치지 않으면 그곳에 머물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한참 침묵을 지키던 내가 말했다.
“가, 밥 먹어.”
손상좌 하나가 7년 동안 묵언정진을 하고 회향하는 날, 가사장삼을 수하고 절을 올리는 그에게 “수고했다”고 한마디 하고는 다시 있다가 “가봐”라고 한 게 전부였다.
상좌나 손상좌들에게 “가봐”라는 그 한마디 속에 들어있는 내 심중이 전해졌다면 다행이다. 이는 ‘공부하는 수좌에게 무슨 말이 필요 있는가? 오로지 정진하라’라는 뜻이다. 다만 말이란 것은 조용한 수면에 돌을 던지는 것과 같을 뿐이다.
한 해에 한 번 내 생일에 상좌들이 모이면 늘 하는 한마디가 있다.
“밥값 해라.”
그 말 말고는 세월이 가도 더하거나 덜하는 것이 없다. 내가 상좌들을 앉혀놓고 늘 하는 이야기는 하나였다.
“너희들이 머리 깎고 먹물 옷을 입었으면 첫째는 참선을 해야 한다. 그다음은 포교, 그다음은 참선하는 스님들이나 포교활동을 하는 스님들을 뒷바라지해라. 수행자는 세 가지 가운데 하나는 하고 살아야 밥값을 하는 것이다.”
수도암 선방 대중을 외호하면서 살고 있는 상좌에게 “밥값 해라”는 말에서 조금 더 보탠 적이 있다.
“옛날에 사중에서 호롱불을 켜면 개인 돈으로 산 호롱불은 위에, 사중 돈으로 산 호롱불은 아래에 놓았다. 개인 기름이 아래로 흘러내리면 사중 것이 되어서 괜찮지만 사중의 기름이 개인 것으로 흘러내리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선방에 가서 좌복에 앉아야만 공부가 아니다. 원주 소임을 잘 보는 것도 다 공부다. 공심公心으로 열심히 살아라.”
1년에 한 번 수도암을 방문해도 나는 말이 없다. 묵묵히 공양을 하고 묵묵히 도량을 거닌다. 상좌들도 대개는 나를 닮았는지 말이 없다. 그렇게 말을 하지 않아도 1년에 한 번 내가 수도암에 가서 머물면 도량의 기운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훈훈하고 든든하다는 것이다.
“감정적이거나 즉흥적으로 말씀하거나 행동한 적은 일생에 단 한 번도 없을 것이다.”
저희 사형사제들끼리 그렇게 얘기하는 모양이다.
총림의 소임자들도 ‘이래라저래라 하는 말이 없어 더 긴장되고 두렵다’고 한다. 산중의 중요한 결정을 하는 임원회의를 할 때도 말없이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마무리를 지을 때 의견 한마디만 하고 있다.
“남에 대한 이야기하지 말고 화두 들어라.”
상좌들은 물론 총림 대중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일 것이다.
시비하지 말고 정진하라. 먹을 게 없으면 얻어먹으면 되고, 잠잘 데가 없으면 한데서 자면 된다.
수행은 말이 아니고 실천이다.
누구없는가
-종전 법전스님의 수행과 깨달음의 자서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