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이제 모두들 돌아갔다.
때 이르게 우리의 송년회가 끝난 것이다.
부산, 장흥, 대구, 문경, 영천, 상주, 강릉, 어떻게 약속이 되었는지 모두들 그 먼 거리에서 일시에 몰려와서는 그렇게 한꺼번에 몰려갔다. 으레 12월 말쯤에나 있는 방문이었는데 올해는 한 달이나 먼저 몰려와서는 사훌 밤낮을 함께 뒹굴다가 돌아간 것이다.
무려 열 개나 되는 꾸러미에 채곡채곡 묵나물을 싸가지고 온 ꡐ주책의 형ꡑ이 있는가 하면, 더덕․달래주에 아직 채 마르지도 않은 곷감을 들고 온 ꡐ못난 아우들ꡑ도 있다.
더러는 바둑을 두고 더러는 문학토론으로 밤을 새다가 그것도 지치면 가져온 술을 마시다가 다음날 저녁까지 잠에 떨어지기도 하였다.
내 건강을 염려해서 아예 안방이나 서재에 있는 재떨이는 치워버리고 저희들은 추운 베란다에서 도둑고양이마냥 담배를 피우던 녀석들, 그 옆에서 그 모양을 보고 있던 아내는 내게 ꡐ천복올 받은 사람ꡑ이라고 했다.
허연 겹잠바에 까맣게 그을은 얼굴들, 그 얼굴들을 보면 대부분 농사를 짓는 녀석들의 고통이 얼마만한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지만 조금도 어려운 내색올 하지 않는 녀석들이 오히려 민망하고 야속할 따름이다. 필시 12월에도 돌보아야 하는 농사일로 일찍 상경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짐작한 대로 현우는 그 ꡐ우리의 천복의 날들ꡑ 속에 끼지 못했다. 3년 전 얼큰히 취한 상태로 내게 와서는 그동안 쓴 한뭉치의 시고(詩橋)를 훌쩍 던져놓고는 아직 얼굴 한번 보이지 않는 나보다 두 살 어린 도반이다.
언젠가 지금 같은 초겨울이었다. 가을걷이가 모두 끝난 김포평야에서 밤을 새던 기억, 추위를 잊기 위해 젖은 짚단을 태우며 까맣게 티금부리가 내려앉은 도시락을 먹었던 일, 그렇게 내가 까무룩 잠이 들었을 녘, 눈을 뜬 내 어깨 위에는 녀석의 잠바가 걸쳐져 있었다. 나보다 더 얄팍한 속옷을 입은 녀석은 자신은 하나도 안춥다며 팔둑을 걷어붙였다. 그리고는 해가 뜨는 먼 벌판을 뛰다 함께 논두렁으로 곤두박질, 그 건강한 웃음.
어렵게 대학을 졸업하고 공장노동자, 출판사, 잡지사 등을 전전하다가 운동권 청년으로 낙인이 찍혀 형무소까지 다녀온 녀석, 어쩌면 그래서 녀석은 고향으로 일찍 자신의 자리를 정했는지 모른다. 사람에 대한 염증 아니면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벽을 깨기 위한 준비의 단계로 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한달 전, 녀석에게 소포가 왔었다. 늘 그렇지만 안부를 묻는 서신 하나없이 가지런히 포장된 시집 두권이었다.
로르카의 「축제일의 노래」와 파울 첼란의 「죽음의 푸가」. 분명 녀석은 내 책상 머리에 이미 오래전에 이 두 시인의 시집이 있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녀석이 이 두 권의 시집을 내게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프랑코의 압제 정권 아래서 가슴에 총을 맞고 그의 고향 그라나다에서 죽은 에스파니아 최대의 민중시인 로르카, 첼란 역시 유태인계 독일인으로 아우슈비츠의 처참한 상황을 시로 읊다가 스스로 센강에 폼을 던진 격렬의 시인, 녀석이 내게 이 시집을 보낸 이유는 너무도 자명하다. 나약한 일상의 틀을 깨고 좀더 크고 밝은 쪽으로 눈을 돌려달라는 견책일 시 분명한 것이다. 아울러 녀석은 책앞 표지 뒷면에 일전에 문학지에서 내 작품 〈종착역〉을 읽었다고 써놓고 있었다.
정말 숨막히는 일이었다. 어딘가에서 감시하는 그 눈길로 하여 나는 그후 여러 날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러고는 몇 번을 시간이 나면 녀석을 찾아가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일순간, 나는 시간이 없다는 것을 핑계삼아 오늘까지 녀석을 찾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한낱 핑계일 뿐, 나는 녀석에게 똑바로 눈을 뜨고 나설 자신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제나 마음이 서면 생각 그대로 행하던 녀석, 그 형형한 눈빛 앞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을까. 두렵고 막막한 일이다.
책상 앞의 시계를 무려 2시간이나 앞에 돌려놓고도 그 시간을 맞추지 못해 허둥대는 게으른 내가 전기도 전화도 없는 산가(山家)에서 혼자 농사일을 하여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는 녀석에게 무슨 면목으로 나설 수 있단 말인가.
부끄럽게도 오로지 나를 돌보는 일 하나로도 힘에 겨운 내가 녀석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녀석은 언제까지나 나를 기다려준다는 것을, 그것이 비록 이승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또한 나는 믿는다. 녀석은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라고.
승속이 얼마나 다르며 또한 얼마나 같은 가를, 로르카와 프로스트가 얼마나 다르며 같은 가를, 첼란과 지용이 얼마나 다르며 또한 같은 가를, 녀석은 잘못 끼워진 단추 하나로 하여 나머지 단추가 모두 잘못 끼워진 우리의 사회와 내게 그 잘못 채워진 단추를 하루빨리 풀어주기를, 그리고 처음부터 올곧게 잘 채워주기를 바라고 있음을.
인생은 어떠한 경우에도 자기의 모든 것을 던져 넣는 사람을 거부할 수 없다. 나는 언젠가 녀석에게 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을 다시 찬찬히 읽는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것을 나는 믿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칼이 펜보다 강하다는 것도 믿지 않는다. 문제는 펜이나 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내부에 있는 독룡(毒龍:번뇌)을 어떻게 다스리는 가에 달려있다.〉
이곳 김천은 구름입니다
서울 하늘 한번 보시지요
소포 겉봉에 녀석이 쓰는 글투는 변함이 없다.
아직은 한달이 남은 93년. 나는 기다린다.
혹 녀석이 불쑥 머리에 얹힌 눈들을 털어내며 우리집 초인종을 누르는 날을. 그냥, 눈이 내려서 왔다며 허옇게 웃는 모습을, 언제나 언제나 두렵고도 따뜻한 눈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는 샘물처럼 맑고 고향처럼 다정한 아우, 그렇게 그렇게 내게 고운 바람으로 다가왔듯이, 한풍을 막아주는 바람벽으로, 뜨거운 햇볕을 막아주는 정자나무로, 조용하고 깊게 우리 문학사
에 아로새겨질 현우의 문학을 기다리며……올해의 잘못 채워진 단추를 모두 풀 것이다. 명년에는 첫 단추부터 꼬옥꼬옥 채울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