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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가는 여행, 템플스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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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향기 - 신연정 2010년 03월 337호
2010년 1월 23일, 새벽부터 눈이 번쩍 뜨였다. 템플스테이를 참여하기 위해 해인사를 가야했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출발한 나는 해인사와 가까운 거리였지만 먼저 도착해서 해인사 경관을 둘러보며 여유로움을 느끼고 싶어 서둘러 준비했다.
항상 친구나 가족과 함께 여행을 다녔기 때문에, 24살이 되도록 혼자서 여행을 떠나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었는지 혼자 여행을 가보고 싶었다.
사실 요즘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제일 편안하다고 말하는 학생신분이지만, 부족한 것이 많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1년… 이 시간 안에 모든 것을 다 해내야 한다는 의무감이었을까? 아니면 대학원까지 다니면서 아직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뭐가 되고 싶은지 모르는 내 자신을 보면서 한심하게 느껴져서 그런 걸까?
모든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정말 하고 싶고,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뭐가 되고 싶은지, 내 자신에 대한 생각을 가져보지 못한 채, 그저 학교에서 하라는 대로,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순응하면서, 사춘기 시절 같은 건 없이 막연하게 그런 삶을 살아왔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답답함이 이제 서야 찾아 온 것 같았다.
해인사를 오기 전 며칠 동안 나는 친구를 만나는 것도 귀찮고, 하는 일에 집중도 되지 않았으며, 잠만 오고, 꿈속에서 조차도 악몽을 꿨다.
평상시 항상 밝고 웃는 얼굴로 다녀서 학교 동기들이나 선배들에게 웃음을 주는 역할을 했는데, “요즘 무슨 일 있어? 네 얼굴에 ‘심각해’ 라고 적혀있어” 라며 같은 연구실에 있는 선배가 물어보기까지 했다.
나 또한 어디론가 훌쩍 떠나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그 날 밤이었을까? 꿈속에서 수많은 스님들이 보였다.
그래서 절에라도 갔다 오면 마음이 좀 편안해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어디라도 기대고 싶은 마음에 초등학생 때, 가봤던 해인사가 문뜩 떠올랐다.
그리고는 홈페이지에 들어 가보게 되었고, 때마침, ‘템플스테이’라는 큰 문구가 눈에 띄여, 템플스테이 시작 이틀 전 바로 신청을 하고 참여하게 되었다.
대구에서 버스를 타고 해인사로 가는 동안 버스에서 항상 잠을 자는 나였지만, 이 날 만큼은 나에 대한 많은 생각들로 가득 차 한 숨도 자지 못했다.
버스에서 내려 해인사로 올라가는 길, 추운 겨울이었지만 춥다는 생각보다도 신선한 공기와 꽁꽁 얼어붙은 얼음사이로 흐르는 계곡 물, 그 옆으로 앙상한 가지로 손을 뻗어 나를 반겨주는 것만 같은 나무들, 모든 자연들 속으로 들어가 잠깐 동안의 지친 나의 마음을 다독거려주는 엄마의 품속 같은 편안함이 찾아왔다.
나는 혼자서 사진도 찍으며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었지만, 해인사를 찾은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구끼리 와서 하하 호호 웃음소리와 즐거운 모습들로 혼자 온 나로서는 약간의 외로운 기분이 들면서 부럽기도 했다.
올라가는 길에 어묵이 참 먹음직스럽게 보여 어묵 하나를 사먹었다.
가게 주인인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는 “아가씨는 참 복스럽게 생겨서 시집도 잘 가겠네, 먹는 것도 어쩜 얼굴만큼 예쁘게 먹어, 추우니까 여기 와 앉아” 라며 난로 옆 자리를 내 주시기까지 했다.
그렇게 해인사는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따뜻한 정이 넘쳐흐르는 곳이었다.
템플스테이에 참여 하기위해 모인 사람들은 신년이라고 모두 모인 대가족 식구, 한국 문화를 좀 더 알고 싶어 하는 일본인 요시코와 같이 일어공부를 하는 희영언니, 딸을 잃어 슬픈 마음을 좀 더 추스르고자 찾아온 부부, 그리고 나 이렇게 참여한 모든 사람들에게는 각자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이렇게 모두 모여 템플스테이는 시작되었다.
템플스테이는, 좀 더 자세히 배울 수 있었던 사찰 기본예절, 여해 스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던 시간, 절도 있고 질서정연한 스님들의 예불모습과 함께 내가 원하고 바라는 소망을 기도 할 수 있었던 예불시간, 내 자신에 대해 한 번 더 돌이켜 보고 생각해 볼 수 있었던 108배와 참선, 해인사 내를 둘러보며 모든 문화재에 대한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들려주시던 원각스님의 이야기, 이 세상에 하나뿐인 자신만의 108염주를 만드는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다.
템플스테이의 많은 프로그램들 하나하나가 정말 나에게 의미 있고 소중한 시간들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스님과의 대화시간과 108배 및 참선시간이 기억에 남는다.
여해 스님과의 대화시간은 학교에서 배웠던 집단 상담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비록 내 고민을 말할 용기가 없어 털어 놓진 못했지만, 다른 보살님들로부터 많은 것을 얻고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다리 아프지?”라는 스님의 질문에 솔직하고 씩씩하게 “네”라는 대답과 함께, “스님 공양이 뭐예요?”라며 궁금한 점을 당당하게 물어보던 초등학생 남자아이, 자신감이 부족해 항상 작은 목소리로 말끝은 흐리게 말하며, 궁금해도 질문을 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런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이 그 아이에게로부터 본받고 배우고 싶은 점이었다.
또 자기가 정말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과 꿈 때문에 고민하던 아저씨,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진정한 꿈을 가지고 향해가는 그런 모습이 너무 보기 좋고 부러웠다.
“열성적으로 일을 하게 되면 언젠 가는 ‘탁’ 터져 나올 거예요. 끝까지 열심히 해 보세요.”라는 여해 스님의 말씀을 듣고 ‘아!’ 내 마음 속에 박혔다. 이 때 까지 나는 열정적으로 해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러 사람들 사이 오고 가는 말 속에서 내 자신에 대한 미해결과제들이 조금씩 조금씩 풀려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스님과의 대화시간이 끝나고 잠자리에 들기 전, 나는 나에 대한 많은 생각들로 인해 잠이 오지 않았다. 고민 고민 끝에 도저히 해결이 안 되면 내일 템플스테이가 끝나고 스님께 상담이라도 받으러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잠을 청했다.
그리고 아주 잠깐 잠이 들었고, 다음 날 새벽에 했던 108배와 참선이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108배와 참선을 하면서 나는 약간의 감정이 북받쳐 오르기도 했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생활을 처음부터 돌이켜 보며 나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렇게 내 자신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해 본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한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나는 정말 많은 생각을 정리 할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며, 거기에 대한 감사함을 모르며 살고 있었다.
내가 고민하고 답답했던 문제들 또한 짧은 시간 안에 무조건 다 끝내 버려야 된다는 내 욕심 때문이었으며, 친구들이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에 내가 뒤쳐질까 두려운 걱정에서 나오는 질투심과 경쟁심 때문이었으며, 무조건 내 꿈을 빨리 찾아야한다는 조바심 때문에 일종의 슬럼프가 나에게 찾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내 자신에게만 투자하고 집중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봄으로서 이러한 시간을 갖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템플스테이를 하는 동안만큼은 “욕심과 번뇌를 버리며 긍정적으로 사세요,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현실에만 집중 하세요” 라는 원각스님의 말씀으로 인해 내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이켜보며 반성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고, 나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었던 시간, 잠깐 동안이라도 나에게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었던 시간, 많은 것을 얻고 배우고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나에게 있어서 템플스테이는 내가 기댈 수 있는 엄마의 품 속 같았으며, 모든 것을 다 받아줄 것만 같은 바다같이, 아픔을 함께 나누어 주는 친구같이, 가야 할 길을 인도해주는 선생님같이, 그렇게 나에게 다가와 주었다.
다음에는 남자친구와 함께 오라고 하시던 여해 스님,
남자친구가 생기지 않더라도 친구나 가족과 함께 또 오겠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산사에서의 1박2일, 나를 찾아 갈 수 있었던 템플스테이를 마음속 깊이 간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