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전, 서울 강남의 한 포토 스튜디오. 나는 여성지 《마리끌레르》의“용감한 여성” 기사의 모델이 되어 찍는 입장이 아닌 찍히는 입장이 됐었다. 한참 사진촬영을 하고 있는 데 그 기사의 또 다른 모델인 최 현미 선수가 부모님과 함께 스튜디오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최 선수는 지난 1월30일 MBC-TV 인기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서 일본의 쓰바사 선수와의 복싱경기를 통해 전 국민에게 감동을 안겨 준 복싱 선수! 나는 최 선수를 1년여 만에 다시 만나 너무 기뻤고, 촬영을 마친 뒤 그녀와 포옹을 했다. \"현미씨, 너무 오랜만이에요! 무한도전도 잘 봤어요. 축하드려요!\" 그녀는 \"네, 언니!\" 라고 답했다.
나와 최 선수의 인연은 1년여전, 2008년 10월1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파리에 있는 ‘인터내셔널 헤랄드 트리뷴 (IHT)’ 신문사로부터 의뢰를 받아 서울 특파원인 최상훈 기자님과 함께 최 선수가 당시 몸담았던 한남 체육관에 갔었다. 그 당시 최 선수는 닷새전 치룬 세계챔피언 결정전에서 중국 선수에 승리,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었었고, 오른쪽 눈에는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어 체육관에 들어올 때에는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글라스를 벗은 최 선수의 얼굴은 달덩어리처럼 둥글고 싱글벙글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직업은 권투선수이지만 그녀는 그 때 꽃다운 18세 소녀. 체육관에 있던 강아지와 장난을 치던 그녀의 모습에는 세계 복싱 챔피언이 아니라 개구쟁이 소녀의 모습이 베어있었다. 나는 최 선수와 관장님께 2005년 평양의 류경 정주영 체육관에서 북한 여성 복싱 경기를 취재했었다는 것과, 또 다른 북한 출신의 여성 챔피언을 만나게 돼 영광이라고 말했다.
이윽고 최 선수는 손에 붕대를 감는 것으로 연습을 시작했는데, 붕대 감는 속도가 너무 빨라 제대로 사진을 찍을 수 없을 정도였다. 거의 30초 만에 붕대감기는 끝이 났고, 줄넘기를 거쳐 스파링 연습을 했다. 그런데 펀치와 발놀림 속도가 빨라 깜짝 놀랐었다. 스피드에다 복서로써 큰 키까지. 게다가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대신해 소녀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최 선수를 볼 때, 마음은 좀 측은했지만 본인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니 미래가 밝아보였다.
그 때 취재한 기사가 사진과 함께 IHT의 자매지인 <뉴욕 타임즈>에 실렸고, 이어 그 기사를 본 프랑스의 동영상 기자가 나에게 연락해 최 선수를 다시 취재하겠다고 알려왔다. 그래서 한 달도 못 된 11월 초, 다시 최 선수를 취재하게 됐고, 그 다음 달에는 독일의 《슈피겔》지에서 또 사진촬영 의뢰가 들어와 또 만나게 됐다. 이듬해에는 뉴욕의 《테마》라는 잡지에서 뉴욕 타임즈에 개제된 사진을 다시 개제, 그러니까 최 선수는 나에게 네 가지 일감을 준 셈이 되는 것이다. 비록 취재비가 아주 많지는 않았지만 본인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배고픈 사진기자인 나에게 일감을 주었으니, 전생에 내가 최 선수에게 밥이라도 잘 챙겨주었나 보다!
그리고 1년이 후딱 지나가 버렸다. 나는 브라질, 아프리카, 이스라엘 등지로 전 세계를 돌며 사진 작업을 했고, 최 선수는 챔피언 타이틀 2차 방어에 성공했다. 그동안 최 선수가 이루어놓은 것은 경기 승패를 떠나 비인기 종목인 복싱, 그것도 여자 복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 냈다는 것뿐만 아니라 본인의 긍정적인 자세와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전 국민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는 것이다.
최 선수는 북한 태생이지만 제2의 고향인 한국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고 있다. 그 희망 바이러스를 계속 전파해 ‘탈북소녀 복서’의 타이틀에서 벗어나 본인의 책 제목에도 나왔듯 ‘통일 복서’가 될 날을 눈 꼽아 기다려본다.
<사진설명>
2008년 10월16일 최현미 선수를 처음 만난 날, 그녀의 눈에는 닷새전 치룬 챔피언 결정전으로 말미암아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 이제 그녀는 무한도전에서의 경기장면 방영으로 온 국민에게 감동을 안겨주는 복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