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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장편소설 <캔들 플라워>를 펴낸 김선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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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 피플 - 최현태 2010년 03월 337호
꽃바람 불어올 삼월이다. ‘살랑’하고 바람이 일면 꽃망울이 터지고 ‘살랑’하고 다시 한 번 일면 가슴이 일렁이는 봄이다. 봄내(춘천의 순 우리말)에 둥지를 틀고 살면 일 년 내내 봄기운으로 살 수 있을까? 얼마 전 거처를 춘천으로 옮겨간 김선우시인의 봄 같은 얼굴을 잔설이 남아있는 인사동에서 만날 수 있었다. 무언가 들뜬 기분이면서도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지루한 당신~그녀가 얘기하는 꿈의 자가 발전소로 동행해보자.
소설 쓰는 시인
이제 김선우시인을 시인이라는 틀에 묶어두기가 좀 그렇다. 시인으로 문단에 나왔지만 그녀는 그동안 세권의 시집<내 혀가 입 속에 갇혀있길 거부한다면>, <도화 아래 잠들다>,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을 세상에 내놓았고, 산문집, 칼럼집, 어른을 위한 동화집으로 또 다른 결을 보여주더니 첫 장편소설 <나는 춤이다>에 이어 얼마 전 두 번째 소설 <캔들 플라워>까지.. 민들레 홀씨가 바람 따라 춤추듯이 문학의 여러 장르를 노닐고 있다. 그래서 김선우시인을 이제 작가라 부르는 것이 훨씬 더 자유로울 것 같다. 영어에서도 작가를 writer라 하지 않는가? 사실 본인도 시인이나 소설가로 구분되지 않고 글 쓰는 이로 남고 싶다고 했으니. 작가 김선우는 해인사와도 무연하지 않다. 해인지 첫 페이지에 선우정담(善雨情淡)을 연재했었고, 어느 해 여름 한 철을 해인사에서 나며 첫 소설 <나는 춤이다>의 초고를 만들기도 했다. “해인사는 아주 특별한 절집중의 하나에요. 가야산의 기운은 머리를 깨우고 가슴을 맑게 하지요. 가야산 일대는 적어도 하루에 하나씩은 새로운 배울 거리들이 나타났어요. 도처에 스승들이 계셔 집필로 지칠 때마다 새로운 힘이 되어 주셨구요.” 왜 아니 그러랴. 가야산과 해인사를 만나본 사람이라면 모두 그리 여겨지는 곳인데.... 작가 김선우는 강릉에서 나고 자랐다. 조선의 여류시인 허난설헌 후예가 아닌가? 문학적 동기 부여를 물었다. “초등학교 4-5학년쯤에 처음 만난 난설헌은 여성의 삶에 민감하게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이기도 하고 바닷가 생가에서 긴 낮잠이 들었던 것을 잊을 수 없는데 장주의 꿈같은 한나절이었어요. 그이야기를 첫 산문집<물밑에 달이 열릴 때>에 자세히 써놓았어요. 그리고 고향 강릉의 동해바다와 대관령은 언제나 나 홀로의 시간을 맞아주었던 곳이었죠” 나고 자란 터전의 산과 바람, 바다와 파도소리가 작가의 길을 예비해둔 것도 같다. 그러고 보니 1996년 김선우의 등단시가 <대관령 옛길에서>다. 글쓰기 외에는 직업을 갖고 있지 않은 전업 작가인 그녀가 마음이 한가로울 때면 무얼 하며 지낼까? “작업실 근처를 산책하고 음악을 듣고 명상을 하고 가까운 절 집을 찾아 108배를 하고 문득 여행 가방을 들고 꽤 먼 여행을 하기도 하고” 아!!부럽고 부럽다. 하지만 작가만의 치열한 글쓰기 시간을 짐작할 수 없으니 하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김선우의 글을 읽다보면 도대체 그녀 내면의 방은 모두 몇 개나 될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동화 <바리공주>에서 아버지의 약을 찾아 구도행이나 다름없는 떠남이나, 서정과 관능이 있는 그녀의 시, 칼럼에서 읽혀지는 세상은 보는 눈까지...이런 안목은 어떻게 키웠는지 한 수 배우고 싶다“글쎄...아주 어렸을 때부터 형성된 독서 습관 속에서 자연스럽게 내가 취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가려온 때문 아닐까싶어요. 책 속에는 세상의 모든 지혜가 있죠. 어떤 관점을 취하고 버리는 과정이 내가 직접 살아낸 인생의 과정과 맞물리며 자연스럽게 내게 체화되었을 테구요. 특별한 것이라면 ‘조화로운 공동체적 삶’의 가능성을 탐색했던 청년기의 운동적 관심도 한 몫하고 있을 테고....”
캔들 플라워
우리는 지난 2008년 봄과 여름, 서울 청계천과 시청 앞, 서울역 광장을 해방구로 만들었던 촛불집회를 기억한다. 작가의 소설쓰기는 여기서 비롯되었고 소설제목 ‘캔들 플라워’는 \'촛불 꽃\'이다. 소설은 광우병 쇠고기수입반대로 촛불 꽃 사태가 났던 광장 한가운데로 내달리지만 소설의 시작은 국경의 안과 밖을 잇는 경계 국제공항인 것이 참 인상적이다. 입국장 문이 열리며 김선우작가가 꿈꾸는 인물, 이상형이라 말하는 열다섯 살 소녀 지오가 팔랑거리며 걸어 나온다. 지오가 만나는 소설 속 인물들은 반짝이는 청춘이되 시험과 온갖 제도적 관습에 내몰리는 청춘이다. 인터넷으로 지오를 알게 된 소심한 직장인 희영, 그녀가 가끔 읊조리는 “코, 코, 돌, 코, 나, 기, 펭”이것은 중얼거리면 기분이 좋아지는 코끼리, 코알라, 돌고래, 코뿔소, 나무늘보, 기린, 펭귄의 앞글자만 딴 주문이다. 말하자면 우리 불자들에게는 ’관세음보살‘같은 처방이다. 그리고 당돌한 아마추어 영화감독 연우, 강남아가씨 수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자부심으로 산다는 태연, 섬세한 감성으로 방황하는 민기, 소년 소녀 같은 숙자할머니와 홍씨 할아버지, 약육강식의 세계 속에서 자신의 꿈을 잃어버린 이지훈기자가 등장한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것은 주인공 지오인데 100일 넘게 타올랐던 촛불시민과 광장의 축제와 해방의 얼굴을 쉴 새 없이 기록하고 지오가 나고 자란 캐나다의 공동체 레인보우가족들에게도 알린다. 촛불이 모여 꽃으로 피어나는 촛불 광장을 오가는 동안 지오는 조계사에서 특별한 경험을 한다. 조용한 가운데 아무 말없이 행해지는 108배를 따라 해본 것이다. 고두례를 하는 모습에서 부처님에 대한 예경과 부처님 앞에서 신구의(身口意)삼업을 정화시키고자 발원하는 것임을 배우면서 세상의 모든 종교에 대해 관용과 배려를 가져야 한다는 레인보우 공동체에서의 가르침을 상기하기도 한다. 첫날 조계사를 찾아 108배를 한 지오는 사흘 후 조계사에서 천도재(薦度齋)의식과 탐심(貪心)을 경계하라 하시는 스님의 법문에 감동한 다음날부터는 매일같이 조계사에 들러 법당을 찾고 벤치에서 일기를 쓴다. 김선우 작가의 108배나 소설 속 주인공 지오의 108배, 그리고 우리불자들이 행하는 108배 그 모두가 정성스럽고 겸손한 몸짓이리라. 이 불교적인 대목을 읽으면서 어찌나 반갑던지 책 말미 작가의 말에 나온 그녀의 글을 인용한다. “세상이 아파서 나도 아플 수밖에 없는 유마의 마음 같은 것이 도처에 말간 눈물로 맺혀 있습니다.
제 생각에 문학은 함께 아픈 병입니다. 함께 아파야 나을 수 있는 힘도 비축하지요. 함께 아픈 말간 눈물 속에서 깨끗한 웃음이 무럭무럭 자란다고 저는 믿는 쪽입니다. 시스템의 타락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키려는 개인의 힘이 여전히 작동되고 있다고 믿는 것처럼 말이지요. 사회의 타락은 시스템에서 오는 경우가 많고 힘없는 개인들은 시스템에 적응하면서 타락해가기 쉽지만, 스스로를 지키려는 개인의 힘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면서도 특별한 존재들이니까요.“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맨 끝 문장에 밑줄을 긋고 싶다.
매 순간 청안하게 깨어 있기
김선우 작가를 인터뷰를 한 장소가 인사동의 한 갤러리였다. 벽에 유명작가들의 그림이 걸려있어 근사하기도 했지만 봄 같은 얼굴로 매화꽃을 연상시키는 작가의 향기로움에 함께하는 시간이 무척 행복했다. 작가로 살아가는 것이 늘 고된 작업을 수반하지만 참 발랄해 보이는 그녀, 일상 속에서 경계하는 것이 우리들과 다를 수도 있겠다. “이성과 감성이 무뎌지면 글쟁이로서는 끝이라는 생각을 늘 해요. 일상의 속도에 매몰되는 것을 가장 경계하지요. 매 순간, 가장 청안하게 깨어있을 것. 사유와 감각의 다채와 깊이를 확보하지 못하면 글을 써도 죽은 글이 됩니다. 세상에 보내도 세상을 이롭게 하지 못하구요. 그러므로 삶의 속도에 매몰되지 않도록 늘 내 안팎을 깨우고 채찍질하는 것이 작가로서의 첫 번째 의무입니다.” 앞서 꿈의 자가발전소를 이야기했다. 작가 김선우는 꿈꾸지 않고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니 우리 모두 왕성하게 꿈꾸며 아무도 걸어가 보지 않았던 맨 처음인 꿈을 소망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혹여 그대 이 춘삼월에 우울하고 기분이 안 좋으신가? 그렇다면 <캔들 플라워>를 펴보시라. 김선우가 내미는 손을 함께 잡고 꿈의 발전소를 가동시키며 ‘코, 코, 돌, 코, 나, 기, 펭’을 한번 읊조려 보시라. 봄바람이 ‘살랑’하고 다가오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