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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나무를 찍어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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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으로 본 문화1 - 김성우 2010년 03월 337호
서산 대사는 《선가귀감》에서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다(선시불심禪是佛心 교시불어敎是佛語)”라고 했다. 즉, 선禪) 불심이자 무심無心이요 일심一心을 뜻한다. 일심불난一心不亂한 선적인 삶을 사는 무심의 대가들은 삶 그대로가 수행인 생활선生活禪을 닦고 있는 셈이다. 무용, 미술, 사진 등의 예술 창작의 대상이든 스포츠의 검이든, 활이든, 골프채든, 공이든 마주한 대상과 일체가 되어 무심으로 작업이나 게임에 임하다 보면, 어느새 대상도 나도 인식할 수 없는 무아지경無我之境에서 오로지 또렷도렷한 작용만이 흐르게 된다. 주관과 객관이 끊어진 상태에서 어떠한 집착이나 두려움, 분별, 망상도 없이 순일한 무념無念 상태에서 집중된 행위가 이뤄지면, 거기에서 위대한 작품이나 명승부, 대기록이 쏟아져 나오게 마련이다.
이번 호부터 연재할 ‘선으로 본 문화’ 시리즈는 우리가 접하는 다양한 문화현상을 통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를 키우는 동시에, 밝은 문화를 창조하는 사람들의 마음거울(심경心鏡)을 밝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편집자 주)


“이번 학기, 과제물로 ‘웃는 나무’를 찍어 오세요.”
사진경력이 25년에 달하는 베테랑 사진작가인 장명확 거사는 여러 대학에서 사진 강의를 할 때면, 가끔 이런 질문을 던진다. 평소 사진을 전공하며 테크닉에만 몰두해온 대학생들은 이런 숙제를 받으면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하기 마련.
과연, 어떻게 하면 웃는 나무를 찍어올 수 있을까. 이 질문을 필자가 운영하는 다음카페 ‘구도역정’(cafe.daum.net/kudoyukjung)에 올려보았더니, 이런 댓글들이 올라왔었다.
“심외무법(心外無法 : 마음 밖에 법이 없다)이요, 만상이 자심소현(自心所顯 : 자기 마음에서 나타난 것)임을 아신다면, 기쁘고 사랑스러운 마음에 밝게 웃는 나무가 찍히고, 어제의 분한 생각을 삭히지 못하고 상한 마음으로 찍으면 성난 나무가 분명 하겠군요(ID ‘寒山’)
“여기 저기서 ‘그림자 없는 나무’[本無(菩提)樹]를 찾으시니 머잖아 저 언덕이 이 언덕이 되는 용화세상이 도래하겠습니다.”(ID ‘無影’)
“아직 나무가 웃는 것은 본 적이 없네요. 하지만 약수터에서 약수물 나오는 소리가 노래처럼 들린 적은 있어요. 한참을 귀 기울려 들은 기억이 나네요.”(ID ‘진무구’)
이러한 대답들은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가졌음직한 생각들이다. 어느날, 이 질문을 던진 장명확 사진작가에게 당시의 채점 기준을 물어보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화두 처럼 질문을 던졌지만, 점수를 매기기는 정말 어려운 문제였죠. 저는 학생들이 자신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은 사진작품을 가져오길 바랬지요.”
20여 년전 성철 스님 문하에서 참선한 한 거사로부터 화두를 받고 수시로 ‘이뭣고?’ 화두를 든다는 장 거사는 자신도 모르게 강의에서 화두와도 같은 질문을 던져 학생들과 함께 참구해 본 것이다.
한번은 장 거사가 ‘물’을 주제로 사진을 찍어오라고 한 적도 있었다.
이번에는 학생들이 자신 있게 저마다 강물, 바닷물, 샘물, 빗물, 눈물 등을 찍어왔는데, 여전히 사진가의 마음이 담긴 작품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던 중, 장 거사는 뒤늦게 과제를 제출한 한 학생의 사진작품을 보고 경악하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물을 찍은 사진 인화지에 물이 묻어있었던 것. 이 작품을 보고 장 거사는 사진속의 물과 현실의 물이 ‘둘이 아닌’(불이不二)듯한 짜릿한 경험을 하게 됐으며, 당시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이와 같이 눈에 보이는 대상을 순간적으로 사진에 담아내는 사진촬영은 찰나에 영원을 담는 선禪의 미학美學을 매우 현실적으로 표현한 예술행위라 볼 수 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생각을 잊고 사물을 직접적으로 지각함으로써 개념화를 멈추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는 생생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순간적, 직관적으로 전체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면 보는 자가 사라지고, 보는 것이 보여지는 것이 되는 시공간이 하나로 똘똘 뭉친 ‘불이不二’가 실현된다고나 할까.
일체를 마음에서 나타난 것으로 보는 선에서는 촬영대상이나 카메라, 사진가 모두 가상으로 존재하는 ‘토끼뿔(토각兎角)’, ‘거북털(구모龜毛)’로 본다. 꿈이나 환상속에서 카메라와 사물, 그리고 사물과 카메라가 하나 되어 ‘찰칵’ 하는 순간, 또다른 ‘허공꽃(공화空華)’인 사진작품이 탄생한다. ‘찰칵’ 하는 순간에는 시간도 정지하고 공간도 사라지고 오로지 사물을 보는 사진가의 눈과 셔터 누르는 손가락의 작용이 있을 뿐이다. 이 순간에는 관찰대상(객관)도 관찰자(주관)도 하나가 된다. ‘찰칵’ 하는 순간 주객主客이 하나 되어 무無 속으로 사라지고, 그와 동시에 사진작품이라는 색다른 유有가 드러난다. 그야말로 ‘찰칵’ 하는 찰나 텅빈 충만, 진공묘유眞空妙有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만약 사진의 대가들이 ‘사물을 보고 마음을 밝힌다’고 하는 견색명심見色明心의 도리를 안다면 사진촬영을 통해서도 수행이 가능할 것이다. 보이는 대상을 통하여 자신의 본분을 밝히는 ‘견색명심’을 말할 때 가장 널리 회자되는 기연은 단연, 우연히 복사꽃을 보고 깨달았다는 중국 당나라 때의 영운지근靈雲志勤 선사의 사례일 것이다.
무엇(색色)을 보고 깨치는 인연은 육식六識 중의 하나인 안식眼識을 통해 체험된다. 꽃을 보건 소리를 듣건 그 구체적 체험의 순간, 무심(無心 : 무분별)이 되어 주관과 객관의 대립이 소멸되면서 곧바로 진여자성 즉, 본래면목과 하나되는 기연이 도래한 것이다. 주객의 소멸로 무심이 되어 우주법계와 하나가 되는 일심의 순간, 크게는 구도자의 깨달음이 성취되고 작게는 작가의 걸작이 탄생된다. 이를 사진예술에 적용한다면 셔터를 누르는 찰나 사진가와 보이는 대상, 카메라가 일체가 되어 무아無我ㆍ무심이 되는 순간 웃는 나무를 찍게 되는 셈이다.
바야흐로 복사꽃, 진달래,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봄날이 다가온다. 카메라를 들고 동네 뒷산이나 명산에 올라가 ‘듣는 눈과 보는 귀로’ 아름다운 봄꽃을 관통해 웃는 꽃을 찍어보는 것은 어떨까.

김성우金聖祐 님은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현대불교신문 기자, 취재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선禪 전문 작가로 문서포교에 주력하면서 다음카페 ‘구도역정’(cafe.daum.net/kudoyukjung) 운영자 및 현대불교신문 논설위원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