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볕이 따스해 창문 안에서 밖을 보면 봄날인 것만 같은데 막상 문을 열고 나서면 바람이 칼날 같다. 방심했다간 큰 코 다치는 날씨다. 도심의 찬바람을 뚫고 뵈러 가는 스님은 호법부장 덕문스님, 혹시 저 바람처럼 으르렁거리는 호랑이 스님은 아닌가 싶어 겁을 집어 먹은 채 호법부에 발을 들이는데 스님은 고양이처럼 순하게 웃으며 반기신다.
“보살님이 호법부를 무서워 할 이유가 뭐 있습니까. 잘못한 스님들이 무서워야지.”
뒤에 붙은 말을 곰곰 씹으며 세상의 가시는 다 이유가 있어 돋은 가시구나 싶은데, 인사를 건네는 스님의 배려와 말 품새가 부드러워 마음을 다시 놓는다. 그런데 그렇게 안도하는 마음을 들켰는지 스님은 또 다시 오늘 날씨처럼 활시위를 팽팽히 하신다.
“소리장도笑裏藏刀, 웃는 얼굴 가운데 칼을 품고 있다. 외향을 봤을 땐 항시 부드럽고 편안하지만 내부적으론 칼을 품고 있어야지요. 원칙은 분명히 하되 친절한 호법부가 되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그렇게 나아 갈 생각입니다.”
지난 11월, 조계종 제 33대 집행부가 꾸려지면서 호법부장 자리에 앉은 덕문스님은 출가 후 줄곧 선원에만 앉았다가 몇 해 소임 산 것과 종회의원이 이력의 전부다. 집행부는 처음이랄 수 있다. 그런 스님은 말씀 하신다.
“종단은 서비스기관입니다. 스님들과 신도들이 수행을 잘 할 수 있도록 하고 불교가 활성화 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 기관인데, 언제부턴가 종단이 권력화되어 경직됐는지 모르겠어요.”
그 말엔 아쉬움도 있고 결의도 있다. 호법부는 그야말로 민원을 제기하는 곳, 그러니 힘이 세고 경직되어 있기보다는 친밀하고 호의적이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소수의 과오를 조사하고 징계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대중을 위해, 즉 과인科人을 위해서가 아니라 과인果人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말씀이다. 징계를 위해 존재하기보다 계도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허나 저처럼 부드러운 사람을 호법부에 앉히면 종단의 기강이 서겠나 싶기도 할 거예요.”
스님은 허허 웃는다. 그러나 소리장도라고 하지 않았나, 스님을 따라 웃는 사이에 그 안의 벼린 칼날이 언제 스쳐지나갈 지 모를 일이다. 그 칼날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숨어 있을까 싶어 몸을 낮추고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나를 한방에 무장해제시키는 스님의 말씀.
“특별한 건 없어요. 원론적 기능에 부합하면 문제될 게 없어요. 특별한 걸 하기보다는 원론부터 챙겨야지요. 잘못된 것이 있으면 올바르게 바꾸고, 몰라서 그르쳤으면 가르쳐 주면 되는 것이지요.”
역시 계도, 이끌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그러니 스님은 사후약방문보다는 사전 예방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난 해 11월엔 전국 사찰에 화재예방 지침을 통보했고 이어 1월엔 성보 도난 및 훼손 예방을 위한 수칙을 제정해 협조문을 발송하며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종법을 엄격히 적용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스님은 올해를 비롯해 꾸준히 미리 조사하고 단속할 일들부터 챙긴다. 그 첫 번째로, 올해는 불교의 비인가 복지시설에 대해 실제적인 조사를 할 생각이란다. 보조금을 부여잡기 위한 단체인지 진정한 마음으로 운영되는 정당한 시설인지 가려야만 사고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적 목적성을 띤 단체야말로 그 자체가 범법이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호법부가 나설 문제라며 스님은 말에 힘을 싣는다.
“내가 애들을 키워서 알아요. 아이들은 한 순간만 눈을 떼도 일이 벌어져요. 그런데 그게 마음 한쪽 없이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또 하나는, 해외 거주 스님들에 대한 파악이다. 사적인 활동에 대해선 손 댈 수 없지만 외적으로 승가의 위엄을 떨어뜨리는 일이 있다면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라 제도화시키고 보완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호법부가 아닌 다른 부서에서 신경 써야 할 일이 아닐까도 싶은데, 스님은 이것이야말로 큰 사고를 막기 위한 일이란다. 역시 문제의 싹부터 없애려는 사전 예방 차원이다. 그러니 스님이 안 바쁠 수 없다. 스님은 아침 7시부터 출근해서 움직인단다. 시간을 쪼개도 부족하단다. 하나의 부서를 책임지고 종단이라는 큰 틀 안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이려면 바빠야 한다며 스님은 말씀하시는 동안에도 다른 업무들로 바쁘다. 그런데도 그 바쁨에는 흐름이 있으니, 스님은 그 안에서 또 허허 웃으신다.
스님이 처음으로 주지를 맡은 것은 99년도에 경기도 의왕의 용화사다. 선원에 다니던 수행자가 도심에서 포교를 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스님은 말씀하신다.
“포교하면서 중생을 처음 만난 것과 다름없지요. 말사 주지는 신도들의 고민을 끊임없이 들어줘야 하는데, 그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너무 불쌍하고 안타깝더란 말입니다. 대화도 많이 나누고 상담도 참 많이 해줬어요. 덕담도 더 하게 되고 손도 한번 더 잡아주게 되고, 그들의 괴로움을 어떻게 해소시켜 줄 것인가 생각해 보게 됐죠.”
그러면서 스님은 혼자서 수행 할 때보다 더 많이 배웠단다. 혼자만의 방식으로 살았다면 아만에 사로잡혀 있었을 텐데 중생과 함께 있으면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단다. 그러면서 스님은 도심 포교당이 갖추어야 할 것들이 무얼까 고민하고 생각했다.
“왜 포교당이 이 도심에 있어야 하느냐 생각해 봤을 때 그 목적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언제든 부처님을 보며 쉬어 갈 수 있는 여유 있는 공간을 만들자 싶었지요.”
스님은 불화와 건축에 조예가 깊다. 석정 큰 스님의 불화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스님은 불화가 갖는 의미도 중요하지만 예술적인 부분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불화를 보는 것이나 불화에 대해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 지금도 동대 도서관이나 학자들의 도움으로 궁금한 것들을 알아가곤 한다.
“같은 사물도 달리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포교당 하나 지을 때도 생각을 달리 하고 발상을 전환해보는 거죠.”
처음 주지로 간 의왕의 용화사를 이전할 때, 스님은 전국의 포교당은 물론 일본과 대만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런 후 건축연구소를 사찰에 두고 함께 설계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으며 지금의 포교당을 지었다. 그 특징들을 보면 세세하고 다양하다. 외부에 있던 미륵부처님이 석불이라 실내로 들이기가 어색해 실내의 한쪽 벽을 유리로 하고 밖에서 자연채광이 들어오게 한 것, 대웅전을 접근성이 좋은 2층에 두고 부처님이 집중될 수 있도록 창을 낸 것, 신도들이 대화하며 쉬어갈 수 있는 찻집을 만든 것, 지하의 공양간을 갤러리처럼 꾸며 그림을 전시한 것 등. 그리고 입구의 사천왕문에 두려움을 느끼는 젊은이들이 많아 그것을 예술적인 부조로 만들어 놓아 친화적으로 꾸며놓았더니 사진을 찍는 명당자리가 되었단다. 스님은 이번에 주지 소임을 맡은 울산 도솔암 또한 예쁜 도량으로 만들기 위해 한참 공사를 하고 있다. 스님은 전통 사찰은 보존을 잘 해야 할 것이고 새로 지어지는 사찰의 경우엔 정갈하고 친숙하면서도 장엄하고 엄숙할 수 있도록 신경 써야 한단다.
스님은 어려서 전라도 강진의 고성암 아랫마을에 살았다. 어머니께서 새벽기도를 가시면 랜턴을 들고 길을 밝히던 소년이었다. 가난한 농가의 아들이다 보니 대학 갈 형편이 안 돼 책을 많이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싶어 절 문으로 들어섰단다. 그리고 스님들이 걸망 메고 다니는 걸 보고 있으면 그렇게 자유로워 보일 수가 없어서, 그 자유가 너무도 좋아서 버스비와 입장료만 들고 마지막 버스가 향하는 화엄사로 향했단다. 그렇게 해서 85년도에 범어사에서 수계 받았다. 그러고는 전국의 선원은 다 돌았다.
“출가하기 전과 후가 달라진 게 있다면, 출가 전엔 80년대 광주사태가 있던 시절이라 상당히 부정적이었지요. 가난했으니 세상을 더 부정적으로만 봤지. 그러나 출가 후엔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게 됐어요. 아름답고 살만한 세상, 행복이 더 많은 세상이라고.”
스님은 호법부라고 해서 사람을 미워할 일이 뭐 있나 하신다. 화는 날 수 있을 지라도 사람을 미워하진 않는단다. 항시 여여하기 위해 노력한단다.
지난 1월엔 호법부 스님들이 덕문 스님을 필두로 모두 장기 기증 ‘행복 릴레이’에 동참한 것이 기사화됐다. 그것을 여쭈니 뭐 대단한 일이냐며 손사래를 치신다.
“몸뚱이에 집착할 필요 없는 승가에서 당연한 일이지요. 단지 ‘행복 릴레이’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 기사화하는 것에 동의했을 뿐이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호법부가 모범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내 것에 집착하면서 누구를 야단칠 수 있겠습니까.”
스님은 호법부장이 되면서 오히려 누구든 더 이해하려고 한단다. 보이는 잣대로만 바라보면 미워하고 싫어해야겠지만 그 잣대만으로 판단해선 안 될 것들이 있어 더 많이 생각하고 이해하려 하는 것이다.
“판결에 싸인을 바로 하지 않고 책상에 하루 이틀은 묵혀 둡니다. 오다가다 보고 또 보며 생각합니다. 나는 싸인만 하면 끝이지만 당사자는 잘못된 판결로 억울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스님께 원력을 여쭈니 이해와 계도의 마음으로 지금의 소임을 다 마치는 것, 그러고는 포교의 일선으로 돌아가 근본적인 봉사의 마음으로 신도들과 호흡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라 말씀하신다. 그러더니 개인적인 로망도 하나 있단다.
“바이크 타고 세계일주하는 것, 그것처럼 자유스러운 게 있을까 싶어요. 세상을 다 둘러보고 싶어요. 차는 안 탈 거예요. 그러면 유리라는 틀 안에 또 갇히는 거 아닙니까. 바람과 눈비를 온몸에 맞으며 달려가고 싶어요.”
그것이야 말로 스님의 원력이 아닐까. 출가의 또 출가가 아닐 것인가. 걸망 메고 걸어가는 스님들의 자유가 좋아 보여서 출가했는데 와 보니 엄청난 제약이 있더라며 스님은 껄껄 웃지 않았던가.
“문중과 집안과 본사의 틀에 매여 있다고 생각하는 것, 이게 사고의 틀인 것인데, 아닌데 아닌데 하면서도 못 벗어나고 있어요. 전생에도 이 틀에서 살았나봐요.”
햇살이 찬란한 오후, 성근 눈발이 날리는데 또 부리나케 걸음을 옮기시는 스님의 발이 언뜻 바퀴처럼 보인 것도 다 그 때문이었을까. 그래서 그 눈발 속을 걸으며 상상해보는 것이다. 바이크를 타고 눈발을 헤치며 달려가는 고글을 쓴 호법부장 스님의 통쾌한 뒷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