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정 법전 큰스님의 자서전 ‘누구 없는가’의 서문 속의 글이다.
세간의 일시적 행복인 오욕락을 훌훌히 털어버린 수행자. 무명을 깬 지혜의 대광명을 밝혀, 영원히 자재로우며 맑은 행복을 얻고자하는 서원誓願과, 고통받는 동포同胞인 뭇생명의 안락과 이익과 행복의 꽃을 활짝 피우고자 하는 비원悲願으로 평생을 관통貫通한 대선지식의 일관된 삶을 확연히 드러내는 글이다.
부질없는 주변의 일에 조금의 한눈도 팔지 않고, 대열반을 앞둔 부처님의 학수종담鶴樹終談에서 고구정녕苦口丁寧하게 권한 바 그대로의 삶을 살아내고 계시니, 가히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환하게 길을 밝히신 후, 역대로 그 등불을 이어온 조사들의 뒤를 이어 혜명慧命을 바로 잇고 계시다 하겠다.
\"밖으로 구하지 말고, 스스로에게 의지하고, 법(진리)에 의지하라.”
\"비구여! 권하노라! 인연따라 생긴 것은 반드시 사라지는 무상無常한 것이니, 부지런히 힘써 정진하라.\"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이시다.
싯달타 왕자는 29세의 나이에 편안하고 호화로운 왕궁생활을 버렸다. 그 후 6년간 죽음을 무릅쓴 난행고행을 하였다. 뼈에 얇은 가죽만 남아 갈비뼈대와 핏줄의 윤곽이 그대로 드러난 앙상한 몸과, 눈이 십리는 움푹 들어간 해골骸骨 같은 얼굴모습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렀던 왕자는, 목욕을 하고 수자타의 유미죽 공양을 얻어 마심으로써 고행마저 버렸다.
유미죽으로 기력을 회복한 싯달타는 다시 정진하여 욕계천의 마왕 파순의 여러 가지 끈질긴 방해를 극복하고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이루었다. 붓따께서 쾌락과 고행 양쪽 모두를 버린 후 바른 깨달음을 이루신 때에는 고행을 파破한데 실망하여 함께 수행하던 다섯 도반이 이미 곁을 떠난 후였다.
이제 멀리 녹야원에서 수행하던 다섯 도반을 찾아 길을 떠나 ‘네가지 거룩한 진리’를 설하신다. 이렇게 첫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린 후, 45년간을 뭇생명의 안락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 길 위에서 길을 보이시던 붓따께서는 쿠시나가라(Kuśinagara)의 사라나무(Sala tree) 숲에서 그 위대한 발걸음을 멈추셨다.
대열반을 맞이하는 부처님의 제자를 향한 마지막 당부가 이루어지는 때에 사라나무는 학의 깃털처럼 새하얗게 변하여 학림鶴林 또는 학수鶴樹라 불리었고, 따라서 학수에서의 마지막 말씀은 학수종담鶴樹終談이 된다.
마지막 말씀 후 부처님께서는 색계色界 초선初禪에서 4선四禪을 거치고, 무색계無色界 초정初定에서 4정四定을 차례로 거쳐, 멸수상정滅受想定에 이르른다. 그리고 이 구차제정九次第定을 거꾸로 차례로 거쳐 초선으로 내려왔다가, 다시 4선인 사념청정지捨念淸淨地에서 대열반大涅槃으로 들어가셨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스피드 스케이팅 500m)을 딴 갓 청년인 모태범은 ‘생일에 스스로에게 생애 최고의 생일 선물을 한 것 같다’며 기뻐하였다. 스스로 뿐 아니라 온 국민을 기쁘게 하였고, 미디어의 이목을 받지 못한 무명의 혜성같은 등장으로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의 미니홈피엔 \'성공이라는 못을 박으려면 끈질김이라는 망치가 필요하다\'라는 글귀가 새겨 있다. 세속 최상의 성취 뒤에 어린 피땀과 쉬임없는 담금질의 면모를 충분히 엿볼 수 있는 참으로 함축되고, 끈질김으로 현실화된 진실의 글귀이다.
세속의 성취도 그러할진대, 세간을 떠나 생사를 초월하는 지혜를 얻고, 눈 밝은 사자새끼를 키워 삼계三界에 두루하는 자비의 비를 내리고자 하는 서원을 세웠다면, 온몸을 버려 도를 구하는 대결단과 항심恒心은 필수불가결이다.
출가시의 여린 소년이 법의 스승인 성철 큰스님을 절대적인 믿음으로 지성으로 모시고 따르며, 역대조사의 기개를 갖추고, 꿋꿋하고 묵묵하게 쉬임없이 매순간 목숨을 내놓는 철저한 정진으로 거목으로 성장하고, 겉으로는 무뚝뚝하나 내면 깊숙이 흐르는 따뜻함으로 제자를 키워가는 법전 큰스님의 모습은 혜가의 단비斷臂의 결연함이 오늘날에도 이어져 등불이 끊임없이 전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또한 법을 베푸시는 외에도, 공사가 분명하고 자급자족을 넘어 의식주로도 이웃에 베푸시며 단순소박하게 사시는 것은 백장선사의 청규가 선맥과 함께 그대로 이어져 옴을 생생히 느끼게 한다.
큰스님께서 선사의 허물될 것을 무릅쓰고, 구술하여 문자로 옮긴 대자비심이 눈물겹고, 읽는 이의 눈을 뗄 수 없게, 문자로 가감없이 담박하게 잘 옮겨준 이의 투명한 안목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