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露律) 갈은 곳, 문중(門中) 같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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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구활
1990년 12월 106호
지난 해 망년의 서러운 취기가 아직 가시지 않았는데 다시 한 해의 끝인 세모의 벼랑에 서다니. 삼, 사십대에는 한 해를 후딱 보내고 나면 아무 것도 이룬 것 없다는 사실 앞에 자조섞인 회한으로만 남더니, 쉰 고개에 올라서고 보니 이젠 저주에 가까울 정도의 자탄으로 제야의 종소리를 들어야 한다.
삼, 사십대가 이기를 앞세운 성취의 세대라면 오십대는 베품을 전재로 한 봉사의 길을 걸어야 함에도 한번도 그렇게 해보지 못한 자신이 밉고 원망스러워 해마다 마지막 남은 캘린더 앞에서 이렇게 오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화엄경」에도 보시는 소유욕을 버리는 실천행으로 반드시 재물공양에는 법공양이 동시에 따라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헐벗고 굶주리는 이웃을 위해 가진 재물을 떼어서 나눠줄 땐 마음까지 얹어 주지 않으면 무용하다고 했다. 왜냐하면 원래 인간현실은 정신과 물질, 여성과 감성이 서로 통일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쪽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기 재생산 활동에서 물질적․감성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을 재물공양이라 한다면 이성적․정신적 욕구를 충만시켜 주는 것이 법공양이다.
그래서 마음을 얹지 않은 재물공양은 물질의 본질을 깨우쳐주거나 그 사용의 바른 방도를 일러주지 못한다. 또 재물이 따르지 않는 법공양은 관념만의 공허한 베품으로 그것은 마치 입술이나 마음만 허락하고 깊은 곳의 육체는 도사리기만 하는 사랑같아 그것 또한 무용하다고 했다.
그러함으로 지난 한해를 보내면서법공양은커녕 재물공양조차 온전하게 한 것이 없으니 부처님 뵈올 낯이 없어 법당 위에 차마 엎드리질 못한다.
해마다 새해 첫날 신새벽의 꿈은 ꡐ일년동안ꡑ이란 주어진 화폭 앞에 서서 경견한 마음으로 멋진 채색을 다짐하고 맹세하지만, 제야의 시간에 쳐다보는 캔버스는 온통 흰색으로 비어 있거나 화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황칠로 얼룩져 있기가 일쑤다.
나는 이 대처럼 화나고 내가 싫어지는 시기는 다시 없다.
그래서 가을이 깊어지면서 찬바람이 일기 시작하면 마음 깊은 곳에서 회한의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게으른 나르 사정없이 어디 낯선 곳으로 내몰곤 한다.
그것은 마치 예약되지 않은 여행이라도 한 며칠 다녀오고 나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것 같고, 또 내일의 활력을 낯선 그곳에서 듬뿍 얻어 올 것 같은 기대가 발걸음을 그리로 향하게 한다.
아니다. 더 솔직하게 얘기한다면 아무도 동행하는 이 없는 혼자만의 여행을 즐기고 싶어 이런저런 변명과 잔꾀를 기획해내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곳은 꼭히 어디라고 지명을 정하지 못한다. 그곳은 69년대 김승옥(金承鈺)의 소설 「무진기행(霧津紀行)」에서 보여준 아침마다 안개가 자욱이 피어오르는 무진(霧津) 같은 곳.
이렇게 사무치는 회한을 떨쳐버리고 무엇인지도 모르는 막연한 그리움 같은 것을 말끔히 씻어버리기 위해 찾아간 곳이 오히려 뼈를 저리게 하는 아픔이나 부끄러운 기억만을 가득 안고 돌아온다 해도 나는 그런 곳에 가고 싶다.
그곳이 설령 바람을 피해 간 곳이 더 큰 바람맞이 언덕일지라도 이 해가 가기 전에 한번쯤 다녀오고 싶다.
안개마을 무진(霧津) 같은 곳에서 친구와 후배를 만나고, 그들의 여왕으로 군림하는 여선생을 만나 또 다른 부질없는 짓을 저질러 후회와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해도 이 무력감에서 탈출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도 좋으리라.
아니면 돌아가신 선친께서 마지막까지 버리고 떠나지 못했던 고향과 그 녁넉한 문중의 일가들 품으로 돌아가 단 며칠이라도 쉬고 싶다.
너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읜 때문에 나한 문중의 냄새도 맡지 못하고 자랐지만 그곳이 내가 돌아가야 할 진정한 아주처임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나는 그곳에서 아버지의 숨결과 체취, 그리고 이승에 대한 그리움이 젖어 있을 듯한 들녘과 정자나무 아래 또 노름방까지 살펴볼 작정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윗대 할아버지들의 헛기침 소리가 배어 있는 돌담길을 돌면서 동리를 한바퀴 돌고 싶다.
그리하여 저물녘에는 동네 뒤 언덕에 올라 서(西)로 지는 해의 그 장려한 낙조를 보면서 내 저리고 가난했던 유년을 추상해 보고, 갓 쉰 생애의 지난날을 되새김질해 볼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날들을 누구를 위하여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가늠해 보는 일도 잊지 않을 것이다.
시방 고향은 시골이 도회지로 변해 쓸만한 장롱이며 반닫이며 심지어 그릇까지, 저루며 쇠여물통이며 뜨락 위 댓돌까지 도시고 쓸려가고 모든 젊은이들까지 떠나버린 빈 마을이 되었지만, 나 그곳에 가고 싶다.
그곳에서 ꡒ주인어른 계십니까?ꡓ란 낯선 일가 부스러기지의 방문인사에 무겁게 가라앉은 정적이 잠시 소란스러워질 뿐, 무거운 적요만이 태고로 버티고 있겠지만.
문중의 빗장은 내 윗대 윗대 할아버지가 이 집을 지을 때 목수의 마지막 손질이 끝난 후 한 번도 잠가보지 않은 상태로 나를 반겨줄 것이다.
세모와 신년이 북풍마(北風馬)를 타고 무섭게 달려오기 전에 내가 먼저 달려가야지. 한해를 덧없이 보낸 회한을 그러하고, 회한이 다시 더 큰 회한을 만나기 위해서도 그러하다.
어디로든 가고 싶다. 그곳은 아침마다 안개가 피어나는 무진(霧津)이라도 좋고, 사라진 모든 것들이 추억으로 모여 있는 고향이라도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