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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세종시·PD수첩 무죄판결…배제가 난무하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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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2010년 02월 336호
새삼 정치를 생각한다. 4대강, 세종시, 시국선언을 한 전교조 교사들과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보도했던 MBC 피디수첩 제작진에 대한 법원의 무죄 판결 등 일련의 사안을 보며 혼란스럽다. 피디수첩 제작진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린 후 나타난 혼란의 정도는 더욱 우려스러울 정도이다. 언론사들은 각사의 편집방향에 따라 사설 등을 통해 극명하게 대비되는 주장을 내놓았다. 보수단체들은 판사를 향해 비난을 넘어 저주에 가까운 말들을 쏟아냈다. 정치권까지 가세해 3권 분립을 흔드는 상황이다.

특히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피디수첩 제작진에 대한 무죄 판결 직후 “최근 일부 법관의 이념 편향적 판결에 대해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는 국민적 여론과 함께 법원이 좌파를 비호한다는 비판까지 등장하는 실정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마땅히 그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고 말했다. 진보적 성향의 법관들의 모임으로 알려진 우리법연구회와 관련해서는, \"법관들의 이념적인 써클이 반드시 해체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법관이 사법의 정치화를 가져온다\"고 덧붙였다. 발언자가 집권여당의 원내대표이고, 강도 또한 매우 높기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발언이다. 이념편향적, 이념써클이라고 지적한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다. 이런 발언의 배경이 “법원이 좌파를 비호한다는 비판까지 등장하는 실정이다”는 언급에서 나타나듯, 좌파를 배격하는 측의 주장을 빌미로 삼는다는 점에서 집권여당의 원내대표가 보여주어야 할 폭넓은 시각과는 거리가 멀다. 전체적 관점을 결여한 채 극단적인 자기논리를 관철시키려는 배제의 논리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나아가 삼권 분립의 원칙조차 저버릴 수 있다는 것인지, 매우 우려스런 발언이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은 많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러하듯 3권 분립의 원리를 채택하고 있다. 즉,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된 대통령을 중심으로 구성된 행정부에 국가 권력의 집행권을 부여하고, 또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서 행정부를 규제하고 국민의 생활을 규율하는 법을 제정하고, 행정부와 의회의 권력을 법원이 최종적으로 통제한다.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적절한 장치이다. 이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행정부의 권력은 무소불위로 치달으며, 민주주의는 증발된다. 따라서 헌법을 부정하지 않는 한 3권 분립의 원칙을 훼손해서는 결코 안 된다. 청와대 대변인은 피디수첩 관련 판결에 대해 \"그 부분에 대해 답변하지 않겠다. 침묵으로 답변을 대신하겠다\"고 말했다. 청와대까지 가세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다.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란 바로 ‘적과 동지의 구분’이다. 적과 동지의 구분은 어떤 실체적 척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실존적 대립 자체이며, 정치 개념에서의 적은 공적公敵으로서 정치적 통일성을 해치는 이질적인 존재가 된다. 따라서 그에 대한 부정과 혹은 전쟁은 정치적 필연이며 그에 대한 어떤 실체적 정당화도 불필요하게 된다.”

“정치의 힘은 관용이다. 관용이 없다면 복잡하고 상충적인 사회 관계들이 어떻게 하나의 영역에서 공존할 수 있을 것인가? 롤스가 제시하는 정치적 덕목 곧 최고의 헌법적 가치들은 곧 관용의 원리를 구체화하는 것이다. 롤스는 모든 사회 관계와 모든 사회 세력들에게 관용을 통한 자유와 평등을 역설한다.”

위의 두 인용문 중 첫 번째 것은 독일 나치에 협력한 법철학자 카를 슈미트의 정치관이며, 아래는 <정의론>으로 유명한 존 롤스의 정치관을 압축한 영남대 법학과 정태욱 교수의 설명이다.[《정치와 법치》, 책세상]

정태욱 교수는 “민족적 동질성과 대중적 열광 그리고 지도자의 독재에 의존하는 정치적 통일성을 외치는 슈미트의 주장은 분명히 탄핵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시대가 슈미트의 이론에 거리 두기를 실패하고 그 권력 지향적 성격에 향수를 느끼고 그로부터 미래의 어떤 비전을 구하려는 시도는 위험천만하다”며 슈미트 정치관을 비판한다.

그런데 최근의 상황들을 보며 우리 정치는 슈미트와 롤스가 생각하는 정치 가운데 어느 쪽에 더 가깝게 위치하고 있을까. 슈미트의 정치관에 경도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정치적 반대자는 배제되어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살벌하고 삭막한 풍경 속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반면, 롤스의 정치관에 대해서는 “특히 현대처럼 다원화되고 분열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롤스의 문제의식이 그렇듯이 공적인 영역을 구축하는 것, 즉 상충하고 대립하는 제 사회 관계와 세계관들 사이에 일종의 공동경비구역을 만들고 평화 공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정치에 맡겨진 엄중하고도 절실한 임무이다”며 옹호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평가에 동의하리라. 권력의 획득과 유지를 둘러싼 투쟁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곳이 정치의 현장이다. 그러나 정치에서의 투쟁은 전부가 아닌 부분이다. 또 권력의 획득과 유지가 정치의 목표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권력구조와 운영원리를 밝히고 있는 헌법에서는 명백하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천명하고 있다. 정치를 비롯한 국가기관의 운영은 민주주의와 구성원의 조화로운 발전을 그 목표로 삼아야 한다. 애초에 정적의 배제 따위는 끼어들 틈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권력은 늘 오만하다. 전권을 위임받은 듯 국민과 헌법 위에 군림하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권력은 조화의 수단으로 작동되어야 하며, 그리하여 국민의 행복과 헌법의 수호에 복무해야 한다, 이것이 모든 정치 투쟁이 지향해야 할 궁극의 가치이다.

현재 논란 중인 4대강, 세종시, 시국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결로 우리 사회는 큰 혼란의 와중에 있다. 사바세계인지라 혼란과 혼돈의 일상이 당연한 것이라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혼란과 혼돈이 우려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이 적과 동지를 가르는 이분법에 근거하고, 마침내 제로섬 게임이 반복되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이후 남북 관계는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때는 어찌 할 것인가. 지금의 문제를 풀어가는 것으로 봐서는 암담하고 아득할 뿐이다.

“정치인을 대신해서 변명하자면 정치인의 타락은 사회의 타락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틀린 주장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돈과 권력만을 생각하고 도덕에 개의치 않는다면, 정치인이 이런 사회에서 타락한다고 크게 놀랄 일은 아닙니다. 따라서 정치인의 타락을 전적으로 정치인의 책임이라고 비난할 수도 없는 입장입니다.”

잘못된 정치에 대해서는 적극 비판하되 조고각하의 자세를 가질 것을 당부한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이다. 최근의 정치 상황을 보며, 불교가 우리 사회를 위해 감당해야 할 역할이 적지 않음을 새삼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