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뇌 신경과학과 불교의 인식론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학사대 - 현무/해인사승가대학4학년 2010년 02월 336호
뇌 신경과학과 불교의 인식론
- 마음의 인식과정에 대한 비교 고찰 -

첨단 영상 기술(fMRI)의 등장과 현대 신경 과학의 발전으로 과학자들은 두뇌의 사물 인식 및 마음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들을 통해 대뇌의 여러 기능 계통들의 기본 영역들에서 뇌 활성화를 계측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시각, 청각, 촉각, 후각, 운동, 언어, 및 기억에 관련된 기능 영역들에 대한 연구들을 통하여 뇌지도(brain mapping)를 작성하였다. 그 결과 뇌 신경학자들은 마음이 단순히 감각을 통하여 이루어진 뇌의 인식활동에 의하여 형성된 산물이라고 주장하게 되었다. 즉, 마음은 뇌에서 존재한다고 하는 유물론(有物論)적인 생각을 뇌 신경학자들은 갖게 되었다. 따라서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과 뇌 신경과학에서 말하는 마음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게 되었다. 뇌 신경과학에서의 인식과정과 부파불교(아비담마), 대승불교(『능엄경』,『금강경』 유식학)의 인식과정을 비교하고, 마음에 대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뇌 신경과학에서 의식이라 함은 “ 눈으로 꽃을 본다. 혀로 맛을 본다. 손으로 물체의 감각을 느낀다.”등 오근을 통해 현실에서 체험하는 모든 감각작용 및 정신작용 그 내용을 포함하는 일체의 경험 또는 현상을 말한다. 뇌 신경과학 중에서 중요한 의식 이론 중 하나는 에멀던의 ‘뉴런 선택 이론’이다. 에멀던은 “의식의 상태란 일원적이고 통합적인 뇌에 의해 구성되며, 다양한 감각 양식의 결합을 통해서 광범위한 내용의 지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정의한다. 즉, 의식이라는 것은 하나의 온전한 덩어리로서의 장면이 떠오르는 것이므로 ‘새로운 감각들이 기존의 가치-범주 기억과 연관된 뇌의 활동’이다. 의식의 출현에는 1차의식(장면의 출현)과 2차의식(장면의 연속성)이 있다.

불교의 유식에서는 마음을 제1식(眼識), 제2식(耳識), 제3식(鼻識), 제4식(舌識), 제5식(身識), 제6식(意識), 제7식(末那識) , 제8식(阿賴耶識)등 여덟 가지로 세분한다. 나는 나 자신을 지각할 수 없다. 그러나 시각이 작용하면, <내가 본다>고 생각한다. 손을 움직이면, <내가 나의 손을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구성요소의 작용위에 나라는 것을 상정하고, 그것이 실체로서 존재한다고 집착한다. 이와 같이 육체와 마음의 작용에 의해 <나는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思量을 본성으로 하는 의식은 제7식(末那識)이다. 사량은 단순히 \'생각하다\'라는 의미는 아니다. 말나식은 대상을 그릇되게 인식하여 근본적인 번뇌를 야기하는 번뇌식의 인상을 갖게 하는 심식이다. 그것은 항상 활동하고 있는 확고하고 철저한 자아의식이다. 말라식은 언제나 4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에 물들어 있기 때문에 염오의(染汚意)라고도 한다.

뇌 신경과학적으로 의식에 대해 "고차의식은 자기 자신의 행동이나 감정에 대해 사고하는 주체에 의한 재인(在人) 포함되어 우리는 우리가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해서, 상호 주관적인 감정 교환을 통해 자기를 확립시키는 데 의존한다. 그리고 직접적인 자각 즉 감각기관, 다시 말해 감각수용체가 관계되지 않는 정신적 사건들에 대해 직접적이며 비 추론적이고 즉각적인 자각을 나타낸다. 이를 통해 개인적인 모델 그리고 현재는 물론 과거, 미래의 모델을 재현한다. 현재가 연속되어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 하여 self(자아의식)가 생긴다."라고 했다. 이러한 관점(觀點)은 불교의 유식론의 제7식(末那識)의 我見에 집착하는 것이다.

오늘날 신경과학에서는 인식의 과정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사람의 눈을 통해 입력된 시각 신호들은 우선 간뇌시상(thalamus)으로 이동하여 여기서 뇌 언어로 번역된다. 번역된 시각 신호들은 시각피질(visual cortex)로 간다. 시각피질은 입력된 신호들을 분석하고 검토해서 대상을 인식하고 감정을 통하여 반응한다. 그러나, 뇌 신경에서 대상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심 찰나에도 끊임없이 대상을 인식하여 영상신호(Walking memory)를 보내주어야 한다.

아비담마 에서는 마음이란 “ 대상을 아는 것” 이라고 한다. 대상이 없이는 마음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으며, 다섯가지 알음알이의 대상은 현재에 일어나는 물질이지만 마음의 대상은 이런 현재에 존재하는 물질과 과거에 일어난 마음의 대상과 과거의 마음들까지 모두 대상으로 가진다. 대상에 대한 심찰나에 마음은 두 가지 대상을 가질 수 없다. 즉 눈으로 보는 동시에 귀로 듣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세속적인 차원에서 관찰하면 동시에 일어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모든 마음은 찰나라도 앞뒤가 있다.

아비담마의 인식과정과 뇌 신경과학에서의 인식과정을 비교하여 보면, 마음은 대상이 있을 때 일어난다. 즉, 찰나생, 찰나멸하며 조건에 의해 인식작용이 일어난다. 뇌 신경학적으로 “뇌는 시간적인 신호와 장면의 속성들을 상호 연관시켜 의식을 발생한다.”는 것과 아비담마의 인식은 대상을 인식하는 심 찰나에 물질(장면)의 수명은 17개의 마음순간에 존재하고, 소멸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과정을 살펴본 사실들에 비추어 아비담마의 인식과정과 뇌 신경과학에서의 인식과정이 거의 동일함을 알 수 있다.

육근이 육입을 통하여 육식을 이뤄 대상에 대한 육촉(六觸)을 통하여 감정(受, 想, 思)을 형성한다. 뇌 신경학자들이 생각하는 자아의식은 물체를 대상화하고 실체화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자아의식이다. 즉, 볼 때는 눈(眼)이 자아로 의식되고, 들을 때에는 귀(耳)가 자아로 의식된다. 이렇게 자아의식을 가지고 지각활동을 할 때, 그 자아의 외부 자아에 의해 지각되는 대상이 실재한다는 의식이 발생한다. 그러나 마음의 문제에 대하여 찰나생·찰나멸 한다는 점에서는 의견을 같이하나 뇌 신경과학에서는 이를 실체화 · 구체화 한다. 그 무엇이 “我”이기 위해서는 변치 않아야 한다. 그러나 몸이든 감정이든 생각이든 의지든 나라고 생각할 만한 모든 것들은 대상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즉, 마음은 한순간에 일어나서 육근이 대상을 시시각각으로 인식하고 멸한다. 그러나 부처님이 불기2550년 전에 正法으로 설하시기를 “본래자성은 자각하여 보고, 듣고, 느끼고 알지만 일체의 모든 경계에 본래 진여 자성을 깨우치면 생사윤회는 영원히 끊어지고, 해탈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