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 나이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50대 후반, 그쯤이면 많은 가능성이 있기도 하거니와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할 시기이기도 하다. 안경너머로 세월을 머금은 시선이 단아하고 간결한, 그리고 더 품는 것은 과욕임을, 자연스런 관조는 미덕임을 일깨우는 한 사람을 만났다. 해인사 수련동문회장 보장 전완중불자다.환희용약의 그날
1996년 여름 어느 날, 홍류동을 굽이치는 물소리는 여전했고 가야산의 숲 향기 또한 어제와 다름없었지만 이 사람의 마음은 닷새전의 그 마음과 판이하게 달라져 있었다. 꿈결 같은 4박5일을 가슴에 모두 담고 집으로 가는 길은 환희용약~ 바로 그것이었다. 환희용약歡喜踊躍이 무엇이던가? 마음속에서 기뻐하는 것이 환희이고 그것이 형태나 동작으로 나타나는 것이 용약이라 하였다. 해인사여름수련회의 기운이 그를 기쁘게 했고 힘이 솟게 했다. 집으로 돌아와 수련회에서 배운대로 발우공양부터 시작한 불교적 삶, 불교적 삶이라 표현한 것을 두고 그는 필자를 나무랄지도 모른다. 허나 그를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준비해 간 여러 가지 질문들이 너무도 세속적인 것 같아 그 반대개념이려니 하고 눈감아 주었으면 좋겠다. 카톨릭계열의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비교적 늦은 나이에 부처님법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지만 그이의 향심은 지극하다. 그렇다고 따로 시간 내서 불교대학을 다니며 교리를 배운 것도 아니고 큰스님 찾아다니며 법문을 듣고 유난을 떤 것도 아니건만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부처님법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그이의 마음이 녹아 있다.
알 수 없는 이끌림으로, 그리하여
해인사와 인연을 짓고 가야산이 품은 그 넉넉한 도량에서 하룻밤을 지내본 사람은 안다. 한마다로 규정지을 수 없는 어떤 알 수 없는 이끌림에 따라 홀리듯이 해인성지를 찾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 해인사를 그리워하고 꿈꾸는 곳임을. 수련동문회장 전완중 불자 역시 그렇다. 왜 그렇게 해인사가 좋으냐고 뻔한 질문을 했는데 “나도 몰라요, 그냥 오고 싶어요. 한 달에 4~5번 올 때도 있는데 세상 모든 불편함과 상처가 하룻밤 자고나면 모두 치유되고 풀어져요. 난 해인사에 그냥 조금 미쳐있어요. 집에 가는데 이유가 없잖아요. 알 수 없는 이끌림에 그냥 가요”하고 웃는 모습이 방금 세수한 아기얼굴처럼 말갛다. 그 맑음은 중단 없는 신행생활과 기도하면서 참 많이도 쏟은 참회의 눈물로 만들어진 것이리라. 부처님 법 만나 희유한 삶을 내 것으로 만든 전완중 수련동문회장은 세상 속 유희들을 모두 내려놓았단다. 감각적인 쾌락들이 이제 결코 즐겁지가 않다는 그이의 말에 ‘과연 그럴까?’ 하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출가자는 아니지만 여법한 신행에서 오는 기쁨이 제일 아름답고 의미가 크다면서 힘주어 말하는 그의 이야기“부처님 법은 너무너무 고맙고, 너무너무 재밌고, 너무너무 좋고…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울화가 치민다는 말 있잖아요.? 그런데 불법을 만나면 기쁨이 치밀어요.”
아! 울화가 아닌 기쁨이 치민다는 그의 말에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더불어 성장하고 서로에게 이익 되기를
취재를 당해주려고(?) 서울서 한 달음에 내려온 그를 지지하는 수련동문회법우들이 기쁜 마음으로 함께한 이날은 전완중불자의 면모를 다시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우리 집사람이 그래요, 회장님은 부처님같이 사신다구요.><한 번도 화내는 모습을 볼 수가 없어요.><그저 뭐 도울 일이 없나, 나눌 일이 없나를 찾고 계세요.><찾아온 병고를 친구로 맞이하셨대요.><참 좋은 인연이에요. 마침 비번이라 오늘 함께 할 수 있어요>법우, 도반. 참 아름다운 말 아니던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도반이 수행의 전부라 하신 부처님말씀이 머릿속으로 스친다. 2002년 수련동문회장소임을 맡아 이제껏 앞장서 걸어가는 그이는 여전히 첫 마음이다. 해인사신행단체 1호로 등록한 수련동문회가 법우들의 신앙심을 증장시키는데 힘을 더하는 의지처가 되었으면 싶고 여력으로 해인사에 도움이 되는 모임이었으면 하는 그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사실 동문회의 해인사를 향한 사랑과 신심은 각별하다. 전국에 지부를 두고 인터넷에 수련동문회카페를 만들어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오가는 온갖 정보들로 하여 이들의 헤쳐모여는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해인사의 크고 작은 행사 때면 도량곳곳을 누비는 노란조끼의 자원봉사자가 바로 그들이다. 이렇듯 자원봉사는 물론이고 성지순례를 통해 국내외사찰을 답사하며 부처님을 닮아가고자 마음을 열고 3천배정진으로 몸을 낮추고 마음을 살피는 오롯한 시간이 또한 행복한 그들이다. 전완중동문회장이 내키지 않은 해인지와의 인터뷰를 거절 못한 것도 이 기사를 인연으로 동문회가 활성화되고 법우들의 동참이 한걸음 더 다가오기를 기대해서이다. 지금 이 시간 기도에 게으름이 나고 나태함이 감지된다면 수련동문회를 방문해 볼 일이다. 1080배, 3천배를 하면서 좌복에 떨어지던 땀방울을 상기시키고 정신이 번쩍 나는 도반들의 수행이야기를 날것으로 만날 수 있을 터이니.
핸드백 들고 다니는 남자
핸드백 들고 다니는 남자라고 별스런 이야기는 기대하지 마시라. 20대 남자 아이들이 크로스백 걸치고 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손에 들었으니 핸드백이고 가방 안에 무엇이 들었느냐를 말하고 싶은 거다. 낡고 오래된 금강경이 수련동문회장 가방 속 주인공이다. 1997년 아버님 세상 떠나시고 49일간 매일 금강경을 읽은 후로 지금까지 경전을 놓지 않았다. 수련회이후로 시작된 신행과 온몸으로 스며든 경전의 구절구절들이 그의 개인적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주변사람들도 그가 변화하고 있음을 읽더란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도 젊은 시절 모나고 부족하고 4상相에 빠져 있었노라고 자신의 허술한 모습을 무람없이 드러내는 그의 푸근함에서 원만과 깊이가 느껴진다. 집에서도 산에서도 사무실에서도 늘 끼고 다니는 금강경 가운데서 어느 구절을 가장 좋아하고 새기느냐 물었는데 그는 날 또 무안하게 만든다. 사구게 중에서 한 대목이겠지 하는 예상을 가볍게 엎어버리고 모두가 다 귀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세상 모든 만물이 나의 도반이며 내 삶에 함께하는 모든 인연들이 나를 깨우치게 하고 고쳐주니 제겐 모두가 부처님입니다.”
나누는 기쁨으로 아름다운 회향을
행복은 선택이고 훈련이다라는 말에 거부감을 가진 젊은 날이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순하게 받아들여지더니 수련동문회장이 누리는 불자로서의 행복 또한 그의 선택이고 신행을 통한 훈련이 아닐까 여겨진다. 그이인들 게으름이 나고 기도하기 싫을 때가 어찌 없을까? “사람 몸이 변덕스러워요. 며칠만 버려두면 망둥이처럼 뛰고 달리고…그것을 빨리 알아차려야지요. 저는 앉은 자세도 부처님처럼 꼿꼿하게 유지하려합니다. 우선 모양을 닮아가니 언행도 생각도 가까이 다가가더군요. 나름대로 치열하지요. 그러는 동안 모든 일에 자신감이 생기고 좋고 기쁘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그 또한 지나가려니 하고 바라볼 수 있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납니다.” 언제나 부처님을 생각하며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자유롭고 행복하며 크게 걸림이 없다는 전완중 불자. 불자의 미덕은 모름지기 무주상보시라며 있으면 있는 대로 나누고 싶은 사람. 그이는 은퇴시기를 딱히 정해놓지는 않았지만 그 이후는 늘 꿈꾸고 있다. 맘 맞는 도반들과 함께 조그마한 구도의 장을 만들어 수행공동체를 꾸려가고 싶단다. 자신에게 엄격하며 때로는 세상에 고개를 숙이는 여유를 가진, 그래서 편하고 아름답고 충만한 그의 삶이 향기롭다. 2월, 여전히 세상은 겨울옷을 벗지 못하고 있지만 어쩌다 하루쯤 선물처럼 따사로운 햇살이 눈을 찌르면 저 남쪽 어딘가에는 봄을 준비할 것 같은 성급함은 왜일까? 겨울 끝자락에서 봄눈 같은 한 사람을 만난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