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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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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이야기 - 홍수정 / 방송작가 2010년 02월 336호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다가오면 방송국은 분주해진다. 위에선 특집 기획안을 내라고 아우성이고, 스텝들은 매일같이 허덕이며 생방송 막아내기 바쁜 와중에 특집을 위한 회의에 또 들어간다. 라디오 방송의 경우, 명절 특집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실시간 현장 반응이다. 여기서 현장이란 바로 길 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선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이나 바라보며 지루하게 움직이고 있는 이들의 상황을 즉각 문자메시지로 받아 소개해주고, 가끔은 전화연결을 하며, 신청곡도 틀어준다. 그들의 내용은 대부분 이렇다. “출발한지 몇 시간인데 아직 천안도 못 왔어요.” “큰일 났어요. 화장실이 급한데 휴게소까지 한참 남았네요.” “아. 졸음이 밀려옵니다. 신나는 노래 한곡 틀어주시죠.” 몇 백 개씩 쏟아지는 비슷비슷한 사연 가운데 그나마 좀 튀는 내용들을 골라 DJ가 볼 수 있는 모니터에 붙여주고, 중간 중간 특별한 이벤트와 함께 테너 박인수와 이동원이 함께 부른 <향수>와 같은 곡들을 들려주다보면 어느덧 두 시간이 지나간다.

그렇게 다른 날과 변함없는, 아니 조금은 정신없었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모두들 각자의 고향을 찾아 빠져나가 여느 때보다 여유 있는 올림픽대로를 달리며 라디오를 틀면, 아니나 다를까. 또 <향수>가 나온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휘돌아나가는 실개천이 있는 곳,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가 말이 달리듯 들려오는 곳이라 노래하는 고향의 이미지를 그려보며, 내 고향은 어떤가? 생각하는데, 순간 멈칫한다. 도대체 어디를 고향이라 꼽아야하는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기억도 없는, 태어날 때 살았다는 부산 옛 시청인근의 데파트? 소꿉장난을 하던 놀이터의 풍경이 생생한 영도? 꿈같은 청소년기를 보낸, 아버지의 고향이자 나의 본적지이기도 한 제주도?

고향의 사전적 의미는 참으로 단순하다.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 여기서 ‘태어나다’는 것에 포인트를 준다면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요즘 애들의 모든 고향은 OO산부인과’라는 결과가 나올 것이고, ‘자라나다’라는 것에 힘을 싣는다면 내가 머물렀던 그 모든 곳이 고향이 될 것이다. 왜냐면 우리는 늘, 나이와는 상관없이 조금씩 자라나기 마련이니까. 그럼 머리가 아닌 가슴이 알려주는 고향의 의미는 무엇일까. 수많은 수식어들 중에 고향을 대변해주는 최적의 단어는 바로 ‘그리움’일 것이다. 늘 가슴속에 품고 있는 곳. 일상에 지쳐 진이 빠질 때 마다 한조각의 초콜릿을 베어 물 듯 조금씩 아껴가며 떠올려 보는 곳. 그곳이라면, 그곳에서라면, 온갖 근심 다 잊고 코를 딩딩 골며 달콤한 낮잠 한 자락 편안히 흘려버릴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곳. 그리고 순수했던 그때의 나로 되돌아갈 수 있게 만들어 줄 그곳. 그곳이 바로 고향이다.

어느 해던가. 아. 그러니까 그때는 내가 막 서른이 되던 즈음이었다. 우습지만 그때의 나는 참 서글펐다. 청춘을 담보삼아 재기발랄하게 지내고자 노력하던 20대를 마감하고, 또 다른 인생의 챕터를 시작하려던 순간. 하지만 오래전 막연하게 상상했던 서른의 모습과 현실의 모습은 너무나도 다르게 전개되고 있었고, 그 간극에서 혼란스러워 하던 찰나, 문득 지금의 시간을 꿈꾸던 과거의 그 어느 날이 그리웠다. 무언가에 대한 기대가 많던 시절. 내일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오늘이 행복하던 시절. 그런 나날을 보냈던 그곳을 향해, 무심코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그곳에 가면, 비워진 가슴이 다시 채워지리라 기대하면서. 차를 한대 빌려, 한때는 삶의 터전이었던 곳곳을 여행 삼아 돌아다녔다. 처음 전학 왔던 초등학교부터 특별한 날이면 교복바람으로 빨빨대며 돌아다녔던 중앙로 지하상가, 이제는 다른 이에게 넘어가버린 옛 집까지. 하지만 더 이상 그곳은 그때의 모습이 아니었다. 넓은 자연학습장이 있던 초등학교 뒷마당은 4층짜리 새로운 교실 동으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고, 상권이 죽어버린 지하상가는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온 가족이 함께 힘을 모아 울타리를 만들었던 그 집은 뜨내기손님을 맞는 펜션으로 둔갑해 있었다. 허무했다. 달콤한 낮잠은커녕, 숙소에 들어와 불을 끄고 새벽녘까지 뒤척여도 잠이 오질 않았다.

그렇게 내 마음속의 고향 제주는 지워졌다. 다시는 찾고 싶지도, 떠올리고 싶지도 않을 만큼. 그리고 의외로 주위에 이런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변해버린 풍경에, 변해버린 사람들에, 변해버린 관계들에 실망하고 아파하며 스스로 마음속에서 고향이란 단어를 지워버린 사람들. 하지만 나를 포함해 그런 그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바로, 변해버린 고향만큼이나 변해버린 내 자신이다. 나날이 영악해지고, 찌들어가며, 알게 모르게 현실과 타협하는 나에겐 그리도 관대하면서, 나 이외의 것들엔 어김없이 칼날 같은 잣대를 들이댄다. 사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던가? 찬란히 피어오르는 꽃잎도, 반짝반짝 윤이 나던 금가락지도, 영원을 약속했던 사랑도, 시간이 흐르면 시들고 얼룩지며 힘을 잃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꽃이 돌이 되는 건 아니고, 순금이 14K로 전락하는 것도 아니며, 이별 역시 또 다른 이름의 사랑일 뿐이다. 눈을 째고 보톡스 주사를 암만 맞아도 나는 그대로 나이듯이, 길을 내고 바다를 메우며 새 건물이 들어서도 고향은 여전히 고향인 것이다. 제주도 출신이란 신인 가수에게 인터뷰 질문 하나라도 더 적어주고 싶고, 어쩌다 TV에서 제주도 배경이 나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리모컨을 다시 맞추듯이, 지웠다 생각했던 그 고향은 여전히 내 마음속 어딘가 변치 않고 남아있을 뿐이다. 마치 <향수>의 가사 한 구절 “꿈엔들 잊힐리야~”처럼.

서른 살 그때 그 이후로, 아직까지 제주를 다시 찾은 적은 없다. 하지만 봄이 오면 이번엔 한번 가볼까 한다. 어릴 적 서울에서 손님들이 올 때마다 따라갔던 유채꽃 만발하는 성산일출봉도 오르고, 그 사이 새로 만들어졌다는 올레길도 걷고 싶다. 그땐 냄새조차 맡기 싫던 자리젓에 구수한 오분자기 뚝배기도 한 그릇 꼭 먹을 거다. 이젠 그 맛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됐으니까. 쿰쿰하고 퀴퀴한 냄새 너머 가슴속까지 지릿하게 만드는, 그 깊은 참 맛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