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기우는 석양을 밟고 서서 되돌아보는 시각엔 밝음과 어둠이 어지럽게 교차되기 마련이다.
다행히 불교신문사에서 30주년 기념으로 불교출판문화상을 재정하였다는 사실은 어떤 의미로든지 사막에서 샘 하나를 발견하는 그런 격이다.
불교 출판 풍토의 척박스러움은 당해보지 않고 어이 이야기되랴. 그야말로 현실과 이상이라는 엄청난 한계를 절감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신념이 좋아도 현실이 어떤 의미로든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신념은 사념(邪念)이 된다.
가뭄에 콩나듯이 어쩌다 좋은 얼 하려고 발심하여 불교 출판에 손대었다가 어처구니 없는 현실에 참패를 당한 이들이 한 둘 아니다. 사실, 출판문화의 발전없이 어찌 불교의 발전을 기다린단 말인가.
해마다 열리는 전국도서전시회를 둘러본 필자로서는 그래도 뜻은 있어 불교서적 코너를 마련하였다는 사실만으로 위로를 삼아야 하는 서글픔을 어떻게 처리하여야 할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불교 사회가 통탄스럽다. 어쩌다 이모양이 되었는지.
그런데 불교 출판이 영영 적막스러운 것만도 아니다. 그것은 몇 년 전부터 불교 서적이 꾸준히 읽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H출판사에서 만든 일련의 불교서적은 어떤 의미로든지 성공적이다. 더욱이 종교와 관계없는 K출판사 역시 여러 권의 불교 서적을 만들어 짭짤한 재미를 보았다고 전해진다. 그것을 기획한 사람이 타종교인이라고 하니 귀가 종긋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고보면 불교출판이 영 일어나지 못할 박토가 아니다. 다만 요즘 세상에 알맞는 책을 만들지 못함에 서글픔이 있다는 반증이다.
ꡐ장경각ꡑ에서 나오는 책들은 성공적이다. 옛 조사어록을 간추려 번역하여 요즘 사람들도 읽게끔 만든 정성에 버금가도록 호흥 또한 따라주어 다행이다.
사실 문제는 흩어진 옥(玉)을 얼마나 잘 다듬어 현대인의 기호에 알맞게 만드느냐에 달렸다.
불교하면 어렵다. 한문의 태산이 앞을 가로 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넘어서지 않는 한 불교의 저변 확대 또한 어려울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사상이요 철학이요 종교라 할지라도 널리 애용되지 않으면 별 도리없이 역사 속에 묻히기 마련이다.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는 선종에서 외려 책이 많음은 무슨 아이러니일까.
지금과 동시에 미래는 책만으로는 부족스러움이 앞선다.
한 권의 좋은 책은 인간의 운명까지도 바꾸어 놓고 새로운 역사까지 창출할 수도 있는 법이다.
그렇게 소중한 책 만드는 일에 대작불사가 없고서 어찌 불교 발전을 꿈꿀 수 있을까.
요즘 제빙에서 큰 불사 짓는 규모를 볼 것 같으면 책 만드는 일 쪽에 있는 이들은 상대적 빈곤에 허기가 날 지경이다.
우리 나라 출판문화의 새벽을 열었던 그 뜨거운 신앙심으로, 무구정광대다라니를 만들었던 신념으로 이 시대에 알맞는 기획이며, 책 표지 장정이며, 알찬 내용의 책을 만든다면 그래도 다시 햇불을 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필요한 책을 얼마나 정성스레 잘 만드느냐가 관건이다.
우리 나라에도 백만 권이 넘게 팔려나가는 책이 있었다. 부처님 말씀을 담은 책이 그렇게 읽혀져 많은 이들의 가슴에 영혼의 양식이 된다면 하는 바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