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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문화의 금자탑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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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성우 1990년 12월 106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 나라에ꡐ책의 날ꡑ이 있다.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그 책의 날이 매년 10월 11일로 되어 있다. 그것은 우리 나라가 자랑스럽게 문화민족으로 내세울 수 있는 「고려대장경」이 완간된 날이다.
그래도 생각 깊은 이 있어 책의 날 선정을 「고려대장경」 완간된 날로 했다는 것은 조금은 안도를 가져오게 한다.
세계 최고(最古)의 책이 목판활지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서기 1751년)이며, 세계최초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과 「중도가」를 상기하면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없다. 그토록 자랑스럽고 지혜로웠던 조상들에 비하면 오늘날 이 땅의 불교 출판문화는 낯 뜨거운 지경이 아닐 수 없다.
한국불교 그 역사가 무색할 정도로 왜소한 불교 출판문화.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바세상 모든 일 가운데 인과란 테두리를 벗어날 일 어디 있는가.
오늘날 불교 출판문화 역시 우리네가 심어온 결과이다.
못난 농부가 씨앗을 잘못 뿌려 농사를 못지어 가을에 거둘 곡식이 없어 하늘만 바라보고 탄식한들 무슨 소용있는가.
그러나 다행스런 일은 그래도 승단 안에 글을 쓰거나 책을 낸 스님들이 그래도 백여 명이 넘는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젊은 세대에서. 이런 일은 선종(禪宗)을 표방하는 곳에서 아주 적은 이변이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한국불교에서 선의 영향은 지대하다. 하지만 새로운 제도는 새로운 악을 창출하듯이 한국불교 오늘의 모습을 만들게 한 원인이 바로 선에 있다면 이 무슨 역설의 논리인가.
선거에서는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한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불립문자(不立文字)의 힘으로 종교를 지탱시키기엔 너무나 역부족이다. 그렇다고 교종(敎宗)에서 어떤 뚜렷한 무엇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선의 잘못된 영향 탓이긴 하지만 그것이 보통 위험수위가 아니다. 그래서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 외려 책 읽는 것조차도 금기시하는 형편이다. 그래서 신도들에
게도 책을 읽게 하지 않는다. 책 읽지 않는 것을 외려 자랑으로 여기니 이 또한 무슨 망발인지. 그렇다고 책 읽지 않는 시간에 선정을 쌓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으면서.

한 해가 기우는 석양을 밟고 서서 되돌아보는 시각엔 밝음과 어둠이 어지럽게 교차되기 마련이다.
다행히 불교신문사에서 30주년 기념으로 불교출판문화상을 재정하였다는 사실은 어떤 의미로든지 사막에서 샘 하나를 발견하는 그런 격이다.
불교 출판 풍토의 척박스러움은 당해보지 않고 어이 이야기되랴. 그야말로 현실과 이상이라는 엄청난 한계를 절감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신념이 좋아도 현실이 어떤 의미로든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신념은 사념(邪念)이 된다.
가뭄에 콩나듯이 어쩌다 좋은 얼 하려고 발심하여 불교 출판에 손대었다가 어처구니 없는 현실에 참패를 당한 이들이 한 둘 아니다. 사실, 출판문화의 발전없이 어찌 불교의 발전을 기다린단 말인가.
해마다 열리는 전국도서전시회를 둘러본 필자로서는 그래도 뜻은 있어 불교서적 코너를 마련하였다는 사실만으로 위로를 삼아야 하는 서글픔을 어떻게 처리하여야 할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불교 사회가 통탄스럽다. 어쩌다 이모양이 되었는지.
그런데 불교 출판이 영영 적막스러운 것만도 아니다. 그것은 몇 년 전부터 불교 서적이 꾸준히 읽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H출판사에서 만든 일련의 불교서적은 어떤 의미로든지 성공적이다. 더욱이 종교와 관계없는 K출판사 역시 여러 권의 불교 서적을 만들어 짭짤한 재미를 보았다고 전해진다. 그것을 기획한 사람이 타종교인이라고 하니 귀가 종긋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고보면 불교출판이 영 일어나지 못할 박토가 아니다. 다만 요즘 세상에 알맞는 책을 만들지 못함에 서글픔이 있다는 반증이다.
ꡐ장경각ꡑ에서 나오는 책들은 성공적이다. 옛 조사어록을 간추려 번역하여 요즘 사람들도 읽게끔 만든 정성에 버금가도록 호흥 또한 따라주어 다행이다.
사실 문제는 흩어진 옥(玉)을 얼마나 잘 다듬어 현대인의 기호에 알맞게 만드느냐에 달렸다.
불교하면 어렵다. 한문의 태산이 앞을 가로 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넘어서지 않는 한 불교의 저변 확대 또한 어려울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사상이요 철학이요 종교라 할지라도 널리 애용되지 않으면 별 도리없이 역사 속에 묻히기 마련이다.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는 선종에서 외려 책이 많음은 무슨 아이러니일까.
지금과 동시에 미래는 책만으로는 부족스러움이 앞선다.
한 권의 좋은 책은 인간의 운명까지도 바꾸어 놓고 새로운 역사까지 창출할 수도 있는 법이다.
그렇게 소중한 책 만드는 일에 대작불사가 없고서 어찌 불교 발전을 꿈꿀 수 있을까.
요즘 제빙에서 큰 불사 짓는 규모를 볼 것 같으면 책 만드는 일 쪽에 있는 이들은 상대적 빈곤에 허기가 날 지경이다.
우리 나라 출판문화의 새벽을 열었던 그 뜨거운 신앙심으로, 무구정광대다라니를 만들었던 신념으로 이 시대에 알맞는 기획이며, 책 표지 장정이며, 알찬 내용의 책을 만든다면 그래도 다시 햇불을 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필요한 책을 얼마나 정성스레 잘 만드느냐가 관건이다.
우리 나라에도 백만 권이 넘게 팔려나가는 책이 있었다. 부처님 말씀을 담은 책이 그렇게 읽혀져 많은 이들의 가슴에 영혼의 양식이 된다면 하는 바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