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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돌아가야할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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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이야기 - 준한/해인사승가대학3학년 2010년 02월 336호
‘십자인대 완전파열’
2007년 4월, 해인사 강원에 입학한 뒤 2달 후, 축구 대중 운력을 하다가 무릎을 심하게 다쳤다. 무릎이 많이 부어올라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대구에서 MRI 촬영을 했다. 판독 결과는 ‘왼쪽 무릎 십자인대 완전파열, 수술 불가피’였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친한 도반스님 두 분과 함께 대구에 갔던 나는 이렇게 강원 학인스님으로서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결과를 가지고 해인사로 돌아왔다.
‘아…이렇게 해인사와의 인연은 끝나는 구나.’
이렇게 아쉬움의 마음을 정리하며 해인사와의 이별을 준비하였다.
해인사에 돌아와 관음전을 총괄하시는 찰중스님께 보고를 드리러 갔다.
찰중스님도 무릎수술을 두 번이나 하신 분인데, 그래서 그런지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해주셨다.
“준한스님. 이대로 해인사 강원을 포기할 생각입니까? 버티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까?”
사실, 해인사 강원 역사상 치문(1학년)때 수술을 하고 버틴 스님은 단 한명도 없었다고 하니, 몸도 힘들지만 마음고생이 훨씬 심해서 스스로 못 버티고 해인사 일주문을 내려왔다고 한다. 전 년에도 한 스님이 축구를 하다 인대를 다쳐서 중도하차 했다고 하니, 나도 당연히 그래야 할 거라 예상하고 있었는데, 찰중스님의 질문은 뜻밖이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나는 버티어 보겠다고 힘주어 대답했다.
일주일 후 일산 동국대 병원에서 십자인대 이식 수술을 받고, 6주간의 재활을 마친 뒤 해인사로 복귀했다. 해인사 강원에서의 치문반 생활은 해병대 훈련과도 비교될 만큼 새벽 3시부터 저녁 9시까지 눈 코 뜰세 없이 바쁘고 힘들다. 그렇게 내가 6주간 자리를 비운 동안 도반스님들은 내 몫까지 힘든 안거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난 도반스님들에게 너무나 미안했지만, 도반스님은 모두 목발을 집고 들어 오는 나를 따뜻이 맞아주었다. 그렇게 난 지대방에서 누워 한 달 이상을 환자로, 도반 스님들은 내 밥까지 챙겨주며 힘들게 안거를 치루어 내었다.

그 후 4개월이 지난 후 맞은 동안거 기간.
어느 덧 치문반의 생활도 얼마 남지 않은 추운 겨울 어느 날.
난 7명의 도반스님들과 사찰 계율을 크게 어기는 사건을 저질러 또 한 번 강원 생활의 큰 위기를 맞았다.
강원의 강주스님은 모두 퇴방(퇴학)을 시키라는 지시를 내렸다.
우리 8명의 스님은 참회하는 마음으로 강주스님 방문 앞마당에서 무릎을 꿇고 무언의 용서를 빌기로 했다. 나는 무릎 수술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걱정이 좀 되었지만, 동참하지 않으면 해인사를 하산下山해야 할 수밖에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마당에 무릎을 꿇은지 1시간 반이 지나자 강주 스님께서 방문을 여시더니 우리를 살짝 보시고 혀를 끌끌 차시며 다시 들어가신다. 우리 해인사 강원에서는 일명 ‘무릎공사’라고, 자주 무릎을 오래 꿇고 참회를 하거나 경책(꾸지람)을 듣는다. 그러나 무릎도 20분 이상 꿇게 되면 통증이 시작되는데 그럴 때 조금 덜 아파보겠다고 움직거리면 안 된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쥐가 나거나 혹은 통증이 두 배로 심해져 더 견디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무릎 공사는 30분 이상 넘지 않는다. 이날 전까지 가장 오래 해본 무릎 공사는 ‘한 시간’, 행자 교육원에서 단체로 해본 경험이 있었지만, 이날은 두 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수술한 왼쪽 무릎이 심하게 아파오기 시작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파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실족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여기서 일어나지 않는다면 영원히 왼쪽 다리 하나를 쓸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일기 시작했다.
이대로 포기하고 일어나야 하는가…7명의 도반들을 뒤로하고 걸망을 싸야하는가….
그러나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했는데. 어떻게 일 년을 버텼는데.
한쪽 다리를 잃더라도 포기할 수 없다! 이 정도의 두려움에 못 이겨 큰 뜻을 굽힐 수 없었다.
이렇게 한 생각을 전환시키자,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봤자, 한 쪽 다리를 잃을 뿐인데.
약 3시간 반이 흐르자, 강주스님이 방문을 나오셨다.
“그래도 스님들이 참회를 하겠다는 뜻이 있구나. 그럼, 앞으로 무기한 하루 종일 법당에서 가사와 장삼을 수하고 삼천배 참회를 하여라. 참회를 무사히 끝내면 그때 다시 큰 스님들과 상의해서 결정을 하겠다.”
그렇게 3시간 반 동안의 지옥 같은 무릎공사가 끝이 났다. 강주스님은 그렇게 다시 방으로 들어가시고 우리는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다리를 풀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왼쪽 무릎의 통증이 완전히 사라졌다. 걷는데도 아무 지장이 없었고 우려했던 실족은커녕 아무렇지도 않았다. 부처님의 가피인가.
우리 8명의 도반들은 다음 날부터 혹한의 추위 속에서 매일 삼천 배 참회를 하였다. 아쉽게도 8명 중에 한 명의 도반은 참지 못하고 다음날 새벽 몰래 걸망을 싸고 하산하였지만, 나머지 7명은 견뎌 내어 다행히 용서를 받고 치문반 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지금 난 어느 덧 사교반(3학년)이 되었고, 그동안 수술을 두 번이나 더하였고 지금은 또 재활중이다. 많은 분들이 걱정하시며, 몸이 가장 중요하다고. 수행자에게 있어서 몸은 생명과도 같다고 말씀하시지만, 뭘 모르시는 말씀! 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난 안다.
어떠한 두려움도, 근심 걱정도, 증오와 미움도 한 순간에 떨쳐 버릴 수 있는 자유자재한 바로 이 마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광대원만하고 무애자재한 위대한 대 자비의 이 마음’이야말로 우리 불제자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이 아닌가!
난 파열된 십자인대 무릎 덕분에 내가 순간순간 돌아가야 할 영원한 고향을 찾을 수 있었다. 내 마음의 고향은 바로 지금, 바로 여기이다. Right Here Right Now!

약인욕요지若人慾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