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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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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류재환 2010년 02월 336호
우리 인간 모두가 한시적인 삶으로 인한 슬픔의 후예다. 모두 다 고난의 후예다. 슬픔과 고난을 견디고 살아남은 자들의 후예다. 그 모진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기란 진실로 어렵고 희귀한 일이다. 살아남은 자들의 후예로 살아있다는 것은 마침내 기적 같은 일이다. 살아있는 것이 기적인 삶이여! 기적 아닌 삶이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이런 한시적 삶을 가장 절실히 느끼는 곳이 병원이며 그 중에서도 중환자실이다.

그 중 인상 깊었던 환자가 있다. 어느 날 진료실에 타대학원생이 상담을 위해 방문했다. 상담내용인즉 자신의 어머님이 타병원 중환자실에서 균혈증(세균이 혹은 세균이 내는 독소가 혈액 내에서 증식 유주하는 아주 위험한 질환)과 뇌출혈, 호흡부전 등 증상으로 입원하고 계시던 중 생존가망성이 없다는 진단을 받고 혹시나 하는 작은 희망을 안고 방문한 것이었다. 환자 상태에 대한 소견을 들어본 결과 생존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상태였고 비어있는 중환자 병실도 없었다. 환자의 아들은 매우 연약하게 보였으며 맥이 풀린 자포자기 상태였다. 두 눈에는 눈물이 고였고 피부는 창백했으며 애가 타는지 자꾸 침을 삼키며 나에게 전원을 간곡히 부탁하면서 꼭 옮겨서 마지막 희망을 갖고 치료를 하겠다고 계속해서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나 역시 나의 의학경험상 또 환자의 정황을 보아 치료받던 병원에서 지속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좋겠다고 보호자에게 설득 아닌 설득을 하고 있었다. 보호자 아들은 주장을 굽히지 않고 막무가내로 졸랐다. 나는 보호자에게 결과가 좋지 않아도 괜찮겠는지 반문하고 생존가능성이 매우 희박하여 병원을 옮기는 과정에서도 사망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결국 전원을 결정했다.

내가 봉직하고 있는 분야는 좀 특이해서 한의학과 의학 내과 전문 과정을 병용 치료하는 통합의학과로서 국내에서는 흔한 분야가 아니었다. 환자 가족은 이를 익히 알고 있어서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방문했던 것이다.

드디어 중환자실 병실이 확보되고 인공호흡기가 준비되어 환자를 옮기게 되었다. 전원 한 환자 상태는 매우 심각해서 페기능을 상실한 성인형 호흡곤란증후군 상태였고 인공호흡기에 의해 겨우 호흡을 유지하는 상태였다. 또한 뇌출혈로 인한 의식장애, 균혈증, 신부전 등 다발성 장기부전 상태와 전신부종이 심했고 더군다나 65세의 고령의 환자였다. 힘든 질병과의 싸움이 시작되었고 환자는 내원 당시의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서 점진적으로 안정을 찾고 전원한 병원에 적응하는 것으로 보였다. 과거 예로 전원해서 적응치 못하고 의사에게 치료의 기회를 주지 않고 그냥 생명生命의 끈을 놓아버리는 환자를 종종 경험한 바 있어 이번 환자는 그런 경우가 되지 않았으면 하면서 내심 걱정을 많이 했다. 다행히 전신부종도 사라지고 기관절개도 시행하고 자발호흡이 가능해져 인공호흡기도 제거하고 의식도 점차 회복되고 마비된 팔다리도 회복되어 수의적 운동이 가능해졌으며, 다발성 장기부전상태에서도 회복하여 죽음의 문턱에서 기사회생하였다. 환자는 현재 가사일도 하며 의사소통도 가능하여 통원치료를 하고 있고 아들은 학업을 계속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가족 모두가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다.

지금까지 중환자실 의사생활을 하면서 힘들고 괴로울 때도 많았고, 또 생명을 보존하지 못한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사망한 환자보단 회복되어 살고 있는 환자가 많기 때문에 그 보람으로 위안을 삼고 있다.

끝으로 사랑하는 어머님 이야기를 하려 한다. 어머님이 돌아가시던 해에 많은 죽음의 고비를 잘 견디셨으나 고령에다 치매, 폐렴이 합병되고 신부전까지 오게 되어 혈액투석,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면서 의식불명상태로 6개월 이상 중환자실에서 치료하던 중 가족회의에서 이젠 가능성이 없고 89세라는 고령으로 회복되어도 치매와 의식불명이 지속될 가능성이 많으므로 가족 합의로 인공호흡기를 제거하자는 결과를 큰형님이 강요하셨다. 나는 막내아들로서 가족회의 결론을 반박하기엔 숫적 열세에 있었으며 가족분위기상 병원비 등의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가족회의 결과에 따라 후배 주치의에게 내일 호흡기를 제거하자고 의견제시를 하니 후배는 강력하게 거부하며 나에게 전원한 후 내 자신이 직접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고 제안했다. 그래서 전원하기로 한 그날 새벽 4시 30분 병원에서 응급 전화연락이 왔다. 어머님이 위독하고 곧 운명하실 것 같다고 해서 급히 집에서 병원으로 갔다. 어머님께서는 새벽 5시에 호흡기를 유지한 채 운명하셨다. 그날은 바로 조계사 기도 회향날이었다. 어머님께서 사랑을 많이 했던 막내아들이 인공호흡기를 자신의 손으로 제거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으로 생각되고, 기도 회향날 돌아가시는 부처님의 가호도 받으신 것 같다.

지금도 생각되는 어머님, 스스로의 운명에 대해 마음의 위안을 삼고 살아가고 있고 시방삼세 항상 계시는 불보살님께 귀의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