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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문의 빗장을 열겠다는 용맹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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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 해인총림 방장 법전 스님 2010년 02월 336호
불인일사不因一事하면
부장일지不長一智니라
한 개의 일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한 개의 지혜가 자라지 못하느니라
조계종 종도라면 누구나 곁에 두고 읽어야 하는 소의경전인 금강경 능정업장분能淨業障分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선사들은 이 구절을 ‘금강경 경천輕賤’이라고 했습니다.
약위인경천若爲人輕賤 시인是人 선세죄업先世罪業 응타악도應墮惡道 이금세인경천고以今世人輕賤故선세죄업先世罪業 즉위소멸則爲消滅
만약에 남에게 천대와 멸시를 당한다면 이 사람이 전생에 지은 악업으로는 악도에 떨어져야 마땅하겠지만 금생에 다른 사람의 천대와 멸시를 받았기 때문에 전생의 죄업이 소멸될 것이다.

이는 죄를 바꾸어 성불한다는 전죄성불轉罪成佛을 말합니다. 능히 업장을 맑히는 일을 말하며, 또 생사와 번뇌가 둘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대신 스스로가 아상我相 인상人相 등의 상相을 일으키지 말아야 합니다. 원수와 친함을 묻지 말고 항상 모든 이에게 공경함을 행해야 합니다. 설사 잘못하는 자가 있더라도 앙갚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무거운 업業을 바꾸어서 과보를 가볍게 받는다는 전중경수轉重輕受가 됩니다. 그러면서 항상 반야바라밀을 닦아야 합니다. 그런 이후에야 여러 겁의 무거운 죄가 한 순간에 모두 소멸되는 것입니다.
색色으로서 여래를 보고자 하거나 음성으로써 여래를 구하고자 한다면 이런 사람은 삿된 길을 가는 것이니 여래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안목이 없는 이는 움직이기만 하면 응당 나쁜 길로 떨어지고 맙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지하여 가만히 서 있게 되면 남의 멸시와 천대를 받기 마련입니다. 또 마음 밖에 따로 법이 있다고 한다면 이 역시 나쁜 길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의 위치만 꽉 지키고 있으면 이것 또한 남의 멸시를 받게 됩니다.
공덕이란 경전을 몸에 지니는 일입니다. 허물이란 전생前生의 업장業障입니다. 이미 허망한 인因이 만들어지면 반드시 허망한 결과를 부르기 마련입니다. 전생前生이란 지나간 생각들의 망념일 뿐입니다. 금생今生이란 뒷생각으로 일으킨 깨달은 마음입니다. 뒷 생각으로 일으킨 깨달은 마음으로 지난 생각들의 망념을 천대하게 된다면 그 허망함은 이제 더 이상 머무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전생의 죄업이 소멸하는 것입니다. 허망한 생각이 이미 사라지면 죄업이 이루어질 수 없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보리를 얻는 것입니다.

금강이란 법의 본체가 견고함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물건이 이를 절대로 파괴할 수 없으며 그 기능이 아주 날카로워 어떤 사물이라 할지라도 자를 수 있는 것입니다. 금강으로써 산을 노리게 되면 산이 꺾어지고 바다를 노리게 되면 바다가 고갈됩니다. 금강경의 법 역시 이런 것입니다.

하지만 설사 이렇게 경전에 의지하여 뜻을 해석한다고 할지라도 조사문중에서 본다면 이것 마저 삼세三世부처님의 원수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경전을 떠나서 따로 한 글자라도 설한다면 이것 역시 마구니의 말과 다름없습니다.

갑자기 천지가 깜깜해지고, 사방으로 도망갈 수 있는 모든 길이 끊어지며, 번개가 내려치고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소낙비가 쏟아지며, 폭포가 엎어지고 산악이 거꾸러지면서 물동이로 물을 퍼붓듯이 하더라도 한 개는 고사하고 반개도 제창提唱하지 못한 것입니다.

금강경에는 아상도 없고 인상도 없다고 했는데 아상 인상이 없다면 누가 경을 강론하며 도대체 누가 듣는 것입니까? 도대체 선세의 죄업은 어디에서 찾는다는 것입니까? 사구게가 따로 있다는 그 생각조차 잘못된 것입니다. 도대체 금강경 안에서 어떤 것이 사구게 아닌 것입니까?
빈 집 방안에서 몇 질의 경전을 쌓아놓고 살펴 보십시오. 책에서 빛이 쏟아져 나옵니까? 책에서 절대로 아무 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자기 속에서 나오는 이 마음이 공덕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모두 나의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이 참됨을 망각하고 허망함에 집착한 것입니다. 반야로 관조하는 것만이 참된 것입니다. 공덕이니 허물이니 원인이니 결과니 하면서 이를 따지는 것은 모두가 분별심이니 이 모두는 참으로 허망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설사 콩을 한 가마니 밭에 심었다고 할지라도 한 톨의 팥싹 조차도 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두꺼운 얼음 위에 한 바가지 끓는 물을 붓는 격이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눈 위에다가 서리를 더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입니다. 하긴 따지고 보면 끓는 물을 한 바가지 더하는 것이나 서리를 한 가마니 보태는 것이나 그 짓거리가 그 짓거리인 것입니다.

본분자리에서 보면 경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본지풍광과 본래면목이 바로 경전인 것입니다. 하지만 조사가풍대로 한다면 그 본지풍광이니 그 본래면목이니 하는 것 조차도 그 자리에서 바로 두동강을 내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참으로 제대로 된 공부인의 자세라고 할 것입니다.
이런 용맹심으로 결제대중은 하늘문의 빗장天關을 열어젖힐 듯한 기상으로, 또 지축地軸을 옮겨놓고 말겠다는 맹렬한 각오로 납월팔일 성도절 일주일 용맹정진에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약요일若了一하면
만사필萬事畢이니라
하나의 일을 마치니
만가지 일이 모두 끝나는구나.

2010.1.14 동안거 성도절 용맹정진을 앞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