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전도선언을 하신 것은 마음의 집착이 사라져 모든 번뇌에서 해탈한 아라한이 61명에 달했을 때이다. 이 전도선언을 잘 분석해 보면 현대 사회에서의 전법과 포교를 누가, 어떤 목적으로,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진행되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첫째, 포교사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 포교사는 욕계欲界에서 발생하는 낮은 차원의 번뇌와 색계色界 및 무색계無色界의 높은 차원의 번뇌에서 벗어나야 하며 법을 설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의 눈높이를 맞추어야 한다.
둘째, 포교의 목적은 ‘인간과 천신을 비롯한 모든 중생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서 실천하는 성스러운 자비행慈悲行이며 동시에 지혜행智慧行이다. 포교활동은 사찰寺刹이나 종단宗團의 신도수를 증가하는 일차원적 목적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이익과 안락을 위한 궁극적窮極的 목적을 수행하여야 한다. 이러한 거시적巨視的 목표가 없다면 불교도 다른 많은 종교단체들이 범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종교적 이기주의利己主義나 분파주의分派主義, 그리고 대립과 갈등의 사회구조를 헤쳐 나갈 수 없게 된다.
셋째, 부처님께서 강조하신 포교 방법은 설법과 청정행淸淨行의 실천임을 알 수 있다. 누구든지 어느 때 들어도 오해 없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설법이 필요하다. 이를 상대의 근기根機에 적합하도록 법을 설하는 대기설법對機說法이라고도 한다. 법을 설할 때에는 마음의 먼지가 적은 사람들부터 시작하여 점차 확산시켜 나가도록 강조하셨다. 또한 설법자는 자신이 말한 대로 행동하고 실천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이제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현제의 포교가 어떤 위치에 있고 어느 정도의 수준에 있으며 부처님의 전도선언에 비추어볼 때 그 대의에 얼마만큼 상응相應하고 있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현대 불자들의 불교관과 그들이 가슴깊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도 부처님의 출세본원出世本願인 포교를 보다 더 여법如法히 승계承繼하여 홍포弘布해 나갈 수 있는 한 방법이다.
현대의 포교는 보다 세밀해지고 조직화 되어 질 필요가 있다. 또한 ‘체계적인 신도교육’은 언제나 언급되어지는 말이기도 하다.
1920년대 중반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한 포교는 1930년 말에는 《포교개설서》가 만들어지기에 이른다. 1910년 최초의 포교당인 ‘각황사覺皇寺’ 설립을 시작으로 1030년대에는 전국에 18개의 포교당이 설립되었고 이후부터 현제까지 ‘포교중흥정책布敎中興政策’에 힘입어 전국곳곳에 포교당이 생겨났지만 우후죽순처럼 설립된 포교당에서는 각자의 신도유치에 급급했고 체계적이고 세밀하지 못했다. 포교사와 교법사 등의 수도 턱없이 모자라서 조직화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주먹구구식 포교가 이제는 어느 정도 체계적이 되어있고 포교사의 수도 해년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도 불교포교에 대한 종단차원에서의 지원과 교육프로그램의 일원화 등의 제도적인 문제의 해결은 아직도 요원遙遠하기만 하다.
불교포교가 이토록 험난한 여정을 가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삼국시대 이후 샤머니즘, 토테미즘과 융합되어가던 불교는 조선시대의 ‘불교억압정책佛敎抑壓政策’을 겪으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나를 찾아가던 수행처가 급격하게 복을 비는 기도도량으로 변모해버린 것이다. 오늘날엔 전통사찰이나 유서 깊은 고찰, 큰가람, 작은암자 할 것 없이 모든 불교의 수행처에 기도를 하지 않는 곳이 없고 재齋 지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가 된 것이 현실이다.
불교가 전래된 이후 지금까지도 복을 비는 기복신앙祈福信仰이 만연해 있기는 하지만 다행히도 현대의 불자들은 많은 인식변화를 보이고 있다. 불교를 다시 생각하고 되돌아보게 된 것이다. 주생활지역이 도심에 편중 되어있기는 하지만 점차 전원생활로 시선을 돌리는 추세이고 생계를 걱정하며 불교를 접했던 때와는 달리 윤택하고 풍족해진 환경과 보다 여유로워진 생활, 문화 등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아를 통찰通察하게 만들었다. 이제 현대의 사람들은 육체적 쾌락 보다는 정신적 만족을 더 추구하게 된 것이다.
요즘의 사람들은 휴가를, 방학을, 가족여행을 사찰로 오고 있다. 산사체험을 통해 정신적 충만감을 만끽하러 오는 것이다. 이러한 현대인의 정신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종단차원의 신도 교육뿐 아니라 신도들을 교육하는 모든 스님들에게도 체계적이고도 조직적인 포교정책을 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