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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맹정진 1 - 좌차座次가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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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소 - 종현 2010년 01월 335호
해인사는 하안거, 동안거 결제기간동안 전 총림이 동참하는 용맹정진을 한다.
기간은 일주일로 밥 먹고 청소하는 시간 외外에는 정진만 하는 그야말로 용맹정진이다.
비구스님들은 총림 선원에서 비구니 스님들은 각 암자 선원에서, 재가불자들은 원당암에서 각각 7일 용맹정진에 든다.

선원에서 하는 용맹정진에는 선원대중은 물론이요, 강원과 율원, 종무소 소임자도 자유롭게 참여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참여하여 정진이 시작되면 중간에 나올 수 없다. 아니 굳이 나온다면 해인사를 떠나야 한다. 아니면 시체가 돼서 나오거나... 외부에서 해인강원 졸업한 스님들을 인정하는 것은 강원의 엄격한 청규와 생활도 있겠지만 결제기간 용맹정진에 동참하여 선원스님들과 함께 정진하는 것을 아마도 가장 크게 인정할 것이다. 강원 스님들도 용맹정진에 동참한 스님과 동참하지 못한 스님 사이에는 큰 레벨 차이를 느낀다. 대화가 안된다고나 할까. 같은 해인강원을 나왔더라도 용맹정진을 한 네 번 이상은 나야 비로소 해인강원 장판때 좀 묻혔구나 하고 인정한다.

해인사 강원을 다니는 대중들은 선원을 한철도 나지 않았으면서도 선원 정진을 할 수 있는 아주 큰 복을 누렸다. 그러나 이런 용맹정진이 죽기보다 싫었던 스님들은 그야말로 지옥체험을 하고 오는 그런 기분이었다. 강원에서는 1,2,3,4 학년 최소 소임자와 환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올라가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용맹정진에 올라가기 전에는 늘 주의사항이 따랐다. 철저한 묵언黙言에 시간 철저, 특히 쉬는 시간에는 선원 외를 벗어나서 쉬지 말 것 등 여러 준수사항이 따른다. 그만큼 모두 예민해지고 날카로워 지기 때문이다.

일주일 용맹정진을 마치고 나면 거의 단체참회나 개인 참회가 뒤따랐다. 일주일 고생하고 내려와서 또 참회 받고, 정말 아랫반은 죽을 맛이다. 이유도 다양했다. 쉬는 시간에 떠든 것, 윗반스님에게 죽비를 너무 세게 친 것, 정진시간에 심하게 존 것 등등 다양한 이유로 참회를 받았다. 한해 용맹정진에서는 졸지 않았는데 죽비경책을 했다 하여 선원과 강원이 시비가 붙었고 그로 인해 강주 스님이 책임을 지고 강원을 떠나신 일도 있다. 대중들도 강주스님을 따랐고 강원은 반으로 갈렸다. 또 용맹정진을 마치면 한 두 명은 강원에서 보따리를 싼다. 참선의 맛을 봤다나 어쨌다나.... 자기가 가야 할 길은 참선이라며 강원을 떠나는 것이다.
이렇듯 용맹정진은 공부하는 학인들에게는 수행의 크나큰 분수령이 되는 전환점이기도 했다.

용맹정진 때 가장 좋은 것은 밤에 죽 공양을 하는 것이다. 밤 11시 30분에 흰죽이나 잣죽을 끓여 수행의 양식으로 삼는다. 죽 공양 시간에는 정진에 참여하지 않은 주지스님이나 강주 스님, 소임자 스님들이 격려차 선원에 올라오신다. 한해는 총무원장을 지내신 지관 큰스님(당시 주지)께서 올라 오셔서 대단한 격려를 하셨다. 그 말 듣고는 잠이 싹 달아났다.
“열심히 해서 득도해라. 좌차座次가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