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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공양구의 상징 청동은입사 정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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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성보 - 김태형 2010년 01월 335호
정병은 승려들이 사용하는 정수(淨水)를 담는 수병으로 범어로 kundika, 군지(君持) ∙ 군지카 등으로 음역되며「법망경(梵網經)」,「십송율(十誦律)」,「사분율(四分律)」등에 대승비구가 두타행(頭陀行)을 떠날 때 반드시 호지하는 십팔물(十八物)중의 하나이면서 불∙보살 전에 정수를 공양하는 공양구이다. 정병의 정신적 기능은 「청관세음보살소복독해다라니주경(請觀世音菩薩消伏毒害陀羅尼呪經)」에 의한 법수(法水)의 상징으로 관음보살이 중생의 고통을 구제해 주는 감로수가 담긴 병이라 하여 감로병(甘露甁), 보병이라고도 한다.
정병은 사용법에 따라 정병과 촉병(觸甁)의 두 가지로 나눈다. 당대(唐代)의 구법승 의정(義淨)은 인도 나란다 승원에서의 경험을 적은「남해기귀내법전(南海寄歸內法傳)」에서 ‘모든 물에는 정촉(淨觸)의 구분이 있다. 병도 두 개가 있어 깨끗한 물은 모두 와자를 사용하고, 보통 물은 구리 ∙무쇠 등의 병을 마음대로 사용한다. 깨끗한 물은 식사 때가 아닐 때 음료수로 사용하고, 보통은 물은 대소변 후에 필요한 물이다. 깨끗한 물은 깨끗한 손으로만 지닐 수 있고 반드시 청정한 곳에 안치하여야 하며, 보통 물은 언제나 필요할 때 잡을 수 있게 하여 손이 닿는 곳에 이를 놓아 둔다.’고 소개했다. 즉 동병은 보통 물을 담는 것이라 했지만 선종 7조인 신회의 묘에서 출토한 금동정병이나 고려시대 청동은입사정병을 보면 실제로는 정촉의 구별 없이 동제나 도자제, 모두 정병으로 사용되었다. 정병의 형태로는 주구부나 뚜껑이 없는 간단한 것에서부터 주구와 첨대, 뚜껑이 달린 것 등 여러 형태가 있다.
우리나라 정병의 시원은 삼국시대에 불교가 발흥할 때 부터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문헌기록으로는 7세기에 당 법장현수가 신라 승전법사가 고향에 돌아가는 편에 의상에게 ‘저번에 신라의 중 효충이 금 구분을 갖다 주면서 상인이 보낸 것에 답하여 지금 서국의 군지조관 한 개를 보내어 작은 정성을 표하오니 받아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편지와 정병을 예물로 보냈다는 예가 있다. 고려시대에는 대표적인 불교 공양구로서 불교의 융성과 함께 많이 제작되는데 불교 의식에 실제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은입사기법을 이용한 당초연화문이나 포류수금문 등 회화적인 소재가 시문되었다.
해인사에 소장된 청동입사정병은 주구부와 첨대가 달린 고려시대 전형적인 정병으로 첨대에는 당초문, 몸체에는 여의두문과 포류수금문, 굽에는 외문이 은입사 되어있다. 조형적인 안정감과 장식성이 뛰어나서 고려 불구의 상징적인 작품일 뿐 아니라 바람이 부는 방향까지 느껴질 정도로 섬세하게 청동바탕을 정으로 쪼아내고 은선을 끼워 한국 은입사기법의 절정을 보여준다. 더욱이 고려시대 화적이 드문 현시점에서 고려 전기의 사실적인 회화양식을 엿 볼 수 있다는 점과 불교사상적으로 양지정수법을 상징하고 있어 공예사적과 불교미술사적으로 의의가 큰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