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후라도 어느듯 16~7세가 되었다. 부처님의 아들이라는 생각은 없어졌다. 다른 누구도 그것에 구애되지 않았다. 그러나 라후라의 장난은 아무도 크게 꾸짖지 않았다. 라후라의 성격은 본래 양순하였으나 아직 어려서 짓궂은 짓을 저질때라 종종 비구들이나 신도들을 속이고 기뻐하였다. 그것은 악의가 없는 장난이라 하겠으나 역시 수행자로서는 큰 잘못이었다.
신도들이 정사精舍에 와서는 라후라에게 부처님이 있는곳을 묻기가 일쑤였다. 이것은 역시 부처님과 라후라사이가 부자라는 것이 앞서기 때문이었다. 라후라는 그럴 때마다 옳게 가르쳐 주지를 않고 엉뚱한 곳을 대어주기도 했다. 정사의 경내가 넓어서 바로 대어주지 않으면 찾기가 어려웠다. 부처님은 라후라가 그런 짓궂은 장난을 하느것을 알고 하루는 라후라를 찾 아갔다. 아버지가 어째서 찾아왔는지를 모르는 라후라는 기뻐하면서 곧 물을 떠다가 발을 씻어 드리면서 어리광을 부렸다.
\"라후라\"하고 부르는 아버지의 음성은 엄격하면서 여태껏 들어본 적이 없는 강한 말씨였다.
\"너는 이 물을 마시겠느냐?\"
\"먹을 수 없습니다.\"
\"왜?\"
\"발을 씻은 물을 어떻게 마실수 있습니까?\"
\"너는 이 물과 같다. 물은 본래는 맑고 깨끗하다. 인간도 그렇다. 너는 일국의 왕손으로써 세상의 영화를 싫다하고 사문이 되었으나 수행을 하지 않고 삼독三毒의 때를 가슴에 가득 품고 있다. 그러니 이 물 같이 더럽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느냐?\"
그때 라후라는 아차 싶어 고개를 숙였다.
\"이 물을 버려라.\" 라후라는 물을 버렸다.
\"너는 이 물통에 밥을 담아 먹겠느냐?\"
\"그 통에 어찌 밥을 담을수 있겠나이까.\"
\"왜 담을 수 없느냐?\"
\"손과 발을 씻는 그릇에 먹는 음식을 담을 수는 없나이다.\"
\"너는 이 통과 같다. 사문으로 수행을 쌓아 삼독을 없앨 줄 모르는 사람의 마음에 어찌 생명의 양식을 담을 수 있겠느냐.\"
라후라가 눈을 동그랗게 해서 부처님의 얼굴을 쳐다 보았을 때 아버지의 얼굴이 이렇게 엄격하게 보이기는 출생 후 처음이었다.
\"너는 통이 부서질까 염려하느냐?\"
\"아니오이다. 값어치 없는 물건이온데......\"
\"너는 이 통과같이 값어치 없는 사람이다. 사문으로서 행동에 조심성이 없이 거짓을 마구 농하여 사람들을 미혹케 했다. 그 결과는 누구에게나 사랑을 못 받고 죽을 때까지 도를 깨닫지 못하여 미혹에만 허덕이고 통처럼 천대를 받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마음을 가다듬고 앞으로는 정진을 해야 할 것이다.\"
라후라는 호된 꾸지람을 받았다. 온 몸에는 땀이 물같이 흘러내렸다. 그때 라후라는 개과천선하여 옳은 수행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후로는 계율을 지키고 진리를 구하여 정진했다. 그러나 라후라는 해탈 할 수 없었다. 여러 비구들도 라후라의 수행에 감탄하면서도 라후라가 속히 깨닫지 못하는 것을 이상히 여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떤 비구가 부처님에게 물었다.
\"세존이시여, 라후라비구가 저렇게 열심히 수행을 쌓고 있으면서 아직 해탈을 못한 것은 어찌된 까닭이옵니까?\"
\"수계守戒면 삼독은 가신다. 불타가 따로 있느냐. 닦는 마음 열반涅槃이다.\"
라후라는 확실히 깨달음이 늦었다. 그러나 부처님은 별로 염려하지는 않았다. 정진자는 종국에 깨닫고야 만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라후라가 20세가 되던 어느 날 부처님은 라후라를 데리고 탁발하러 나가면서 말했다.
\"만물도 몸도 마음도 모두 무상이라 생각하면 모든 집착은 스스로 없어지고 지혜의 문이 열리고 나아갈 길이 트일 것이다.\"
라후라는 문득 느껴진 바가 있어 자문에 자답할 자신이 생겼다. 그는 부처님보다 일찍 정사로 돌아가서 입선入禪하고 자문해 보았다. 그때 명석한 자답이 머리에 떠올랐다. 라후라보다 한걸음 늦게 돌아온 부처님은 즉시로 라후라의 처소를 찾아 다시 가르치는 것이었다.
\"라후라, 숨결을 조용히 헤아리면서 마음을 가다듬어 제행무상諸行無常을 생각해봐라.\"
라후라도 이제야 깨달을 때가 왔다. 부처님의 말을 되새겨 가며 수행을 쌓았을 때 마음의 바탕이 밝아왔다. 라후라는 드디어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