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현(大賢)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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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등불을 이어온 이 땅의 스님들 - 편집실
1990년 12월 106호
대현대사는 신라 경덕왕대의 스님으로 생몰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신라 유가종(瑜伽院)을 대표하는 고승이다.
그러나 스님은 언제나 자신을 숨기고 살았으며 자신을 청구사문(淸丘沙門)이라고 부르면서 지금은 그 자취마저 아득한 경주 남산 용장사(龍長寺)에서 학문을 연마하는 틈틈이 거문고 타기를 즐겨 하였던 멋쟁이였다.
스님은 중국 법상종의 개조(開祖)라 일컬어지는 현장법사의 제자 원측스님의 법손이었으니 곧 도증(道證)대사의 제자였다. 스님은 처음에는 화엄학을 공부하였으나 뒤에 법상(法相), 즉 유식(唯識)계통의 공부를 하였다. 그리고 유식계통의 대가(大家)가 되었다.
그러나 언제나 밖으로는 덕행을 숨기고 안으로는 한량없는 맑은 지혜를 지니고 계셨다. 그의 이름은 우리 한국에서보다 훗날 일본이나 중국에서 더 알려졌으며 「삼국유사」에는 단지 그의 행적에 대한 편린(片鱗) 밖에 남아 있지 않다.
스님은 앞에서도 밝혔듯이 유식학에 있어서 원측법사나 도중법사의 계통을 이어받았다. 도중법사는 오랫동안 중국에 유학하였으며 원측법사가 입적하기 5년 전인 692년에 신라로 돌아와 국내에 유식학을 최초로 가르친 고승이었으며 그 유식학의 꽃은 결국 대현대사에 의해 발현되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내의 대덕들이 법상(法相)에 관한 제론(諸論)을 모아서 종합적으로 정리함으로써 신라의 유가연구에 기반을 세웠으며 그의 문하에는 이 땅의 유가종을 대표할 만한 제자들이 배출되었으니 회암(檜巖), 운권(雲卷), 구암(龜巖) 등이다.
「삼국유사」 제4권 ꡐ현유가(賢瑜伽)ꡑ조(條)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ꡒ유가종의 조사인 고승 대현은 남산 용장사에 살고 있었다. 그 절에는 돌미록보살 장육상이 있었다. 대현이 이 장육상을 돌았는데 이 장육상도 역시 대현을 따라 얼굴을 돌렸다. 대현은 슬기롭고 분명 정밀하고 민첩해서 판단함과 분별함이 명백했다. 대개 법상종의 전량(銓量)은 그 뜻과 이치가 그윽하고 깊었으므로 해석이 매우 어려워 중국의 명사(名土) 백낙천도 일찍이 이것을 연구하다가 말고는 ꡐ유식은 매우 깊어서 구명하기가 어려우며 인명(因明)도 역시 그 문을 열기가 어렵다ꡑ고 하였다. 그러므로 학자들이 배우고 깨우쳐 이어가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스님은 혼자서 그 잘못을 바로잡고 짧은 시일에 그윽하고 깊은 뜻을 터득하여 자유자재하였다.
이밖에도 경덕왕 때 금광명경(金光明經)을 설하실 때 우물물을 솟구치게 한 일이 있었지만 여기서는 지면 관계상 생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