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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란 복을 짓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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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지현 1999년 03월 205호
복지란 복을 짓는다는 말입니다. 복을 짓는다는 말은 만나는 모두를 살린다는 말이며 살린다는 말은 주면서 산다는 밀입니다. 주면서 살다 보면 보살의 삶이 되고 부처의 삶이 되겠지요.
복은 물질적인 것을 뜻합니다. 복이 있으면 물질적인 여유로움이 있고 복이 없으면 물질적인 여유가 없다는 뜻이지요. 덕은 인간관계에 해당됩니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도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존경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도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늘 쓸쓸한 이들도 있습니다.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고, 복이 있는 사람은 가난하지 않다라는 말이지요. 복과 덕을 다 갖춘다면 외롭지도 않고 가난하지도 않으니 자연스럽게 하는 모든 일들이 잘되고 즐겁고 평화롭겠지요. 이러한 풍요로움으로 모두를 만난다면 풍요로움을 줄 수 있고 나누는 삶은 곧 살리는 삶이 되겠지요.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서 여러 해를 살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사람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일입니다. 모두가 나처럼 소중하다는 뜻에서 살면 감사하고 고맙다는 말이 쉽게 나오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향상되고 진취적인 의미를 줄 수 있습니다. 짜증스런 표정이나 고통스러운 표정이나 아쉬운 표정은 지울 수가 없어지지요. 생각해 보면 우주에 있는 모든 보배를 다 준다고 하여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목숨입니다. 나의 목숨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의 목숨이 다 내 목숨처럼 소중하지요. 이 소중한 뜻을 배우고 깨달았다는 것이 불교를 배운 이익이고, 공덕이라 자부할 수 있습니다. 소중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면 성의 있는 만님이 되고 편안하고 즐겁습니다. 삶이 정성스러우면서 편안하게 될 때 만나는 이들도 좋아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복과 덕이 갖추어지는 것이지요.
모든 일을 정성스럽게 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불자의 기도이며 부처님전에 예배하는 뜻이 아닐까요. 살다보면 특히나 배운 것이 많아지고 가진 것이 많아지고 지위가 높아지면 다른 사람의 소중함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날마다 예배하고 기도를 통해서 다른 이들도 나처럼 소중하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합니다.
내가 제일이다 나 혼자만이 제일이다라는 생각은 나를 외롭게 하고 괴롭게 하고 가난하게 하는 원인이 되지요. 즐겁고 풍요로우려면 교만심과 아만심을 꺾어야 하는 것이지요. 교만심이 없어져 겸손해지면 손해 보는 일이 있어도 화가 나지 않습니다. 화가 난다는 것은 교만심, 아만심, 욕심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각이 우리를 괴롭히는 원인이 되기에 버려야하지요. 복을 짓는 것은 이러한 괴로움의 원인을 버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부처님 전에서 정성스럽게 예배하는 마음으로 가고 오고 앉고 서고, 모든 일을 하면 곳곳에서 부처님이 탄생한다고 합니다. 일마다 불공 기도하듯 하면 언제나 부처님과 함께한다는 뜻이지요.
저는 복지관을 맡아 운영한지 사년 쯤 되었습니다. 직원들에게 모든 사람을 친부모나 가족처럼 대하라는 말들을 합니다.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고 가슴에는 태양과 같은 정열을 불태우라고 권합니다. 순간순간이 모여 우리의 평생이 되니 순간순간을 정성으로 살면 미소를 머금을 수 있지요. 언제 어느 때 자신이 살아온 길을 돌아보더라도 부끄러움보다는 기쁨과 보람의 미소가 생겨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차츰 가정 같은 복지관, 가족 같은 복지사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늘 모자란다고 생각합니다만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해서 살다 보니 모자람이 줄어듬을 느낍니다. 소중한 사람을 정성스럽게 만나면 그 곳에서 고운 꽃이 피어나고 향기가 번짐을 느낍니다. 너무너무 견디기 힘들어서 울면서 괴로움을 토로하는 이들을 가끔 만납니다. 요즘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더욱 그런 사람이 늘어납니다. 차분히 사연을 듣고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봅니다. 무엇이 소중한지 무엇부터 풀어야 하는지를 한참 이야기하다 보면 지금 불행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의 조건을 이미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더 크고 밝은 희망을 갖게 합니다. 울면서 왔다가 웃으면서 가게 되지요. 그렇게 불행에서 행복으로 변하는 것을 보는 재미도 보람이라 할 수 있겠지요.
부처님 전에 촛불을 밝히면서 지신을 태워서 주변을 밝히는 보살의 길을 가겠다고 다짐합니다.
욕망의 충족으로 얻는 즐거움을 버리고 욕망을 극복하는 즐거움을 참된 즐거움으로 삼으려 합니다. 보살의 길은 멀고도 험합니다. 그러나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길입니다. 경전을 배우면서 경전의 주인공인 보살의 삶이 저의 삶이기를 바라고 다짐합니다. 특히 모든 중생의 고뇌를 다 풀어 주겠다고 서원을 세우신 관세음보살처럼 오늘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로 하는 관세음보살처럼 살겠다고 서원하면서 관음의 원력과 지혜와 자비가 내 눈과 손으로 나투시기를 바랍니다.
복을 짓는 삶이란 보살의 길을 가는 것이고, 보살의 길을 가는 것은 지옥 같은 고통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지요. “극락 갑시다”보다는 “지옥갑시다”라는 말이 불자다운 삶은 아닐는지요. “내가 아니면 지옥의 중생을 누가 구제하리요”라고 말씀하시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