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그런 때가 있다. 비포장도로와 간혹 산길로 어렵게 운전하여 내소사에 도착한 것은 22년전 2월 초순 어느 겨울 저녁이었다. 화순 운주사에서 오전 내내 이른바 천불천탑의 고졸한 미소를 두루 참배하고 곧장 서해안을 따라서 내소사에 도착하였다. 내소사 대웅전 앞마당에 고목 한 그루 그 겨울 저녁에 적막해 보였다. 그런 상황은 언어로 포착하기는 어렵지만 느낌으로 간직될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의 의식은 의식 너머를 지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원, 무한, 그리고 초월적 상황은 의식에 의해 설명될 수 없지만 의식에 의해 그런 상태가 지시되어질 수 있다.
20년이나 지난 오랜 기억의 영상이 아직도 선명한 것은 세상 잡사에 분주할 때마다 ‘내 마음의 내소사’가 호출되어 침잠의 시공을 넌지시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그 겨울 저녁에 만난 내소사의 경험을 원형으로 그 후 유사한 체험들이 함께 연결되면서 새로운 습관이 자라게 되었다. 여행지에서 자연의 배경과 함께 침묵하게 되었다.
평생 아련한 기억으로 남을 내면의 영상은 드문 만큼 귀한 것이다. 그런 장면은 평생토록 정신의 고요한 힘이 되어준다. ‘마음의 사진술’은 그 후 몇 번의 가슴 시린 경험이 되풀이 되면서, 내면의 풍경화를 포착하는 과정이 세 박자로 구체화 되었다.
멈춤. 고요함. 그리고 찰칵.
물리적 소음이 사라지는 조용함이 아니라. 내면의 소란이 사라지는 고요함이 배경이 되면, 자연의 풍광은 우리에게 넌지시 말을 걸어온다. 결코 의도적으로 우리가 접근할 수 없다. 단지 그 때를 맞이할 준비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관광객이 썰물처럼 사라진 텅 빈 공간에 석탑의 긴 그리자가 대웅전 마당에 길게 드리울 때, 그것도 찬 겨울저녁 공기가 사념의 티끌을 얼어붙게 할 때 그런 순간을 포착할 수 있는 내면의 사진기는 무심결에 홀연히 눌려져야 한다. 뇌리에 각인되는 것은 한 순간이지만, 그 결정적 순간의 포착은 오랜 준비기간이 요구된다. 잡다한 전경에서 침묵하는 배경을 찾아내는 우연한 순발력과 시선이 멈추는 곳에서 자연의 숨결에 동참하는 고요함이 습관처럼 길러져야 한다.
그 겨울 저녁 텅 빈 내소사에서 홀연히 만난
고요히 내려앉은 침묵하는 시공은 자연이 내린 지복임에 분명하다.
박문호
경북대 전자과 졸업 후 Teaxs A&M에서 전자공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 취득.
2007년 불교TV <뇌와 생각의 출현> 강의.
현재, 대전 100booksclub 공동운영위원장. ETRI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대학시절부터 관심사는 천문학과 물리학이었다. 박문호 선생님은 물리학을 공부하는 왕도에 대해 “자연과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이해한다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의 과학 분야는 양자역학의 응용이다. 물질공부의 요체는 양자역학, 즉 마음공부의 요체는 세포학이라 할 수 있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우회해서 물리학을 공부하는 것은 대부분 시간 낭비에 불과하며, 물리학 공부의 지름길은 우회로를 가능한 무시하고 곧장 양자역학 그리고 상대성이론을 성실하게 연구하는 것뿐이다.”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