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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욕수행에 있어서 하심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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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대 - 보각 2009년 12월 334호
불교사전에서 인욕의 의미를 찾아보면 ‘참고 견디는 것’, ‘고난에 견디어 내는 것’, ‘모욕이나 박해를 참고 견디어 마음을 안 일으키는 것’, 이라는 뜻을 지니고, 사람의 성격과 같은 특성을 묘사할 때에는 ‘관용’으로 이해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일반적으로 자기에게 해롭거나 조금이라도 손해를 본다거나 모욕을 당하게 되면 화를 내게 되는데, 불교에서는 이런 사람을 가리켜 범부라고하며, 범부들이 모여 사는 이 세상을 사바세계라 한다. 사바를 의역하면 인토忍土라는 뜻으로, 이 세상은 인욕하고 인내하며 하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라는 말이다. 범부들은 모두 자기 뜻대로 세상일을 처리하려다 보니 충돌과 마찰이 일어나고, 다툼이 일어나고 원한과 질투와 시기가 일어나 분노와 번뇌가 끊이지 않는다. 어떤 피해를 당해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과 분노, 증오와 복수심 등이 생겨 부정적인 충동이 일어날 때 우리는 의뢰 적으로 나의 몸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고 업을 짙게 된다.
이 시대를 앞서 살고가신 조사스님들 중에 모범이 되는 인욕 제일주의인 청담스님이 생각난다.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위해 스스로 지옥에 뛰어든 목련 존자를 떠올리며 청담스님은 지옥에 갈 각오를 하고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드리기 위해서 “파게한 몸, 이정도의 고통은 달게 받겠다”며 장장 10년의 세월동안 참회하는 마음으로 맨발 고행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길가에 피에 물든 발자국이 보이면 청담 스님이 방금 그 길을 지나간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얘기 했을 정도로 스님의 고행은 처절하고 냉혹했다.
『금강경』에서는 인욕을 통해 지혜를 완성하고 성불 할 수 있다고 경전에서는 제시하고 있다. 부처님은 전생에 인욕선인 이었고 성불하시고도 인욕수행을 철저히 하셨다. 심지어 다른 사람 때문에 손발의 마디가 잘리어도 원망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음으로써 최상의 지혜를 완성 하셨다. 여기서 말하는 최상의 지혜란 무상혜(無上慧)로서 완전무결한 부처님의 지혜 즉 큰 깨달음을 이루셨기 때문에 우리가 행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원인과 조건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는데 수많은 원인과 조건들을 현상 내면을 무시하고 외부에 독립적인 고통의 원인이나 분노의 원인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서 화를 내게 된다.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분노가 일어나게 되면, 분노가 반복되고 결국은 폭발하게 되는데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괴멸할 정도의 파괴력을 갖게 된다. 분노는 독사를 건드린 것처럼 싫어하는 것에 강하게 반응 하며, 그 반응은 몸과 마음에 아픔과 고통을 나타내게 되며, 자신을 사량 분별 하게하여 마음을 뿌리째 뽑기에 행복한 삶과 원만한 관계성을 갖질 못하게 한다.
성냄을 갖는 원인으로는 첫째 참을성이 없고, 둘째 합리적 사고가 결여되고, 셋째 상대를 배려함이 없고, 넷째 탐욕이 많으며, 다섯째 성냄, 미워함, 증오심을 가까이 하는 특성이 있다.
⟪잡아함경⟫을 보면 인욕에 대해서 부처님은 설하였다. “성내는 마음을 가라앉히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근심과 걱정이 없어진다. 성냄은 독의 근본. 그래서 성냄을 없애고 인욕을 실천하는 사람은 모든 성인이 칭찬한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는 항상 이치를 살펴서 어리석음을 다스리니 어리석은 사람은 성을 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침묵으로 성냄을 항복받는다. 힘이 없으면서 힘자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어리석은 자의 힘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진리를 멀리 벗어나니 이치로 볼 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큰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약한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는 것은 가장 훌륭한 참음이라 할 수 있으니 힘이 없으면 어찌 참고 용서하겠는가. 남에게 온갖 모욕을 당할지라도 힘 있는 사람이 스스로 참아내는 것은 가장 훌륭한 참음이니 스스로 힘이 없어 굴복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어찌 참는 것이라 하겠는가. 위험에서 자신을 보호하듯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다른 사람을 보호하고 남이 나를 향해 불같은 성질을 내더라도 돌이켜서 스스로 침묵을 지켜라. 이러한 이치를 잘 지키면 스스로 이롭고 남에게도 이롭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러한 이치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침묵하고 참는 사람에게 자신이 이긴 것으로 여겨 오히려 험담을 하나니 모욕을 말없이 참아내는 사람이 언제나 이기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자기보다 강한 사람 앞에서 애써 참는 것은 두렵기 때문에 참는 것이요, 자기와 같은 사람 앞에서 참는 것은 싸우기 싫어서 참는 것이며, 자기보다 약한 사람 앞에서 참는 것이 가장 훌륭한 참음이다. 성내는 마음을 가라앉히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근심과 걱정이 없어진다.”는 내용이다.
성냄은 독의 근본 그래서 성냄을 없애고 인욕을 실천하는 사람은 모든 성인이 칭찬한다. 분노를 해결하는 방법을 다들 알고 있지만 막상 닥치면 잘 안 지켜지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본인은 너무나 평범한 이 주제를 가지고 다시 한 번 각인 시키고자 한다. 심각한 일에서부터 사소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수많은 상황들 속에서 분노와 접하게 된다. 화가 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줄곧 화를 내게 되고 스스로의 행복을 파괴하게 된다.
수행자로써 출가하기 전에는 스님들이 대체로 자비스럽고 근엄한 모습만을 보았었는데 본인이 막상 출가하여 생활해보니 그렇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수행의 과정에 있는 출가자들조차 일상에서 화를 내는 일이 흔히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실천 수행하는 데 있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이러한 것들을 다시 생각해 봄으로 실수를 되풀이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나에 대해서 힘들 때 어떻게 하냐고 물어본다면 늦은 밤 산길을 넘어가는데 공동묘지를 지나게 되었을 때, 옆에 보기 싫은 사람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힘이 될까 라고 생각하면 그 사람에 대한 싫어하는 마음은 없어진다. 그래도 안 될 때는 내가 전생에 저 사람에게 나쁜 짓을 많이 해서 금생에 갚는 군아라고 마음먹으면 한순간에 참을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되는데, 다들 각자의 답을 찾기 보기 바란다.
분노심이 일어날 때 인욕으로 극복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는 있지만 행하기는 쉬운 일은 아니다. 인욕수행이 어려운 것은 하심이 잘 안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앞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내적이든 외적이든 공격에 대하여 마음이 흔들리지 말고, 끊임없이 일어나는 분노와 고통 속에서도 마음의 평화와 자비심을 잃지 말며, 공의 도리를 잘 관하여 마음을 성숙시키고 정화시킬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러한 수행법이 대승보살의 수행법가운데 하나인데 역대로 큰스님들을 보면 인욕과 하심 수행을 잘하셔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해인사 승가대학 스님들의 논문을 요약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