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한해가 이운다. 산중에는 김장 끝내고 문풍지도 바르고 겨울채비를 마쳤다는 소문인데 때맞춰 저잣거리는 빛으로 넘쳐난다. 음력사월이면 오색등이 세상을 밝히며 부처님 오심을 축하하고 섣달이면 성탄을 맞이하는 트리가 어둠을 수놓는다. 세상을 밝히는 빛, 어둠 속에 반짝이는 빛, 내 마음을 비추이는 빛, 빛, 빛, 빛.........이 여러 가지 빛으로 화폭을 채우고 그 빛으로 우릴 끌어안는 화가 방혜자를 만났다.
작가는 작품으로 만나야
빛은 천지사방 어디에서도 닿을 수 있지만 빛의 화가 방혜자를 만나러 가는 길은 고단한 여정이었다. 그이를 서울에서 만날 수 있었으면 했는데 단번에 거절이었다. 작품을 보지 않고 어떻게 작가를 만났다 할 수 있느냐는 일침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경기도 광주 언덕배기에 자리 잡아 풍광도 좋은 영은미술관에 방혜자의‘ 색채(色彩)의 시학(詩學)- 마음의 빛’이 전시중이다.(12월 13일까지) 고맙게도 방혜자선생과 오랜 인연인 큐레이터가 인로왕보살이 되어 주었기에 먼 길도 단숨이었다. 선생이 한 걸음 앞장서 작품 앞으로 다가선다. 아!!프리즘을 통과한 빛이 영혼을 노래한다. 공중에 내 걸린 색색의 유리가 무한공간에 펼쳐진 우주인 듯 빛의 생멸이 반복된다. 설치미술-<빛의 놀이>다. 눈이라도 내릴 듯이 무겁게 가라앉은 하늘에 잠시 구름 걷히면 환상의 빛이 미술관 바닥에 나타난다. 모두의 탄성이 이어지는데 기포가 살아있는 색유리를 통해 펼쳐지는 빛의 스펙트럼은 우리 모두를 홀리게 했다. 다음 작품으로 옮겨가지 말고 종일 빛의 유희에 빠져들고 싶지만 미술관 1, 2층에 선생의 작품이 기다리고 있었다. 과연 빛의 화가다. 지상전이라도 마련해 작품을 소개하고 싶지만 여의치 않으니<빛에서 빛으로><평화의 빛><빛의 숨결><색, 빛, 에너지><우주의 빛>....이렇게 선생의 작품에 걸린 제목이라도 나열해 본다. 어떠신가, 화폭에 담겨진 빛의 느낌이 마음으로 다가오는지? 그이의 작품에서 만들어진 빛이 게으른 겨울햇살 속에 흐르는 물같이, 들려오는 노래처럼, 불어오는 바람인 듯 미술관을 가득 채우고 있다.
파리유학, 길상사, 불화, 빛의 구도자
1961년, 전쟁과 혼동의 시대로 유학을 꿈꾸기에는 암울한 시기였다. 그러나 가정적으로 밝고 행복했던 방혜자선생은 문학과 예술을 귀하게 여기는 열린 부모님의 지지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국비장학생1호로 파리유학을 떠나 파리국립미술학교 파리국립미술응용학교에서 벽화와 색 유리화수업을 받았다.
어린시절 시냇물 속 조약돌에 비친 햇살을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이후 늘 빛에 감탄하고 빛의 존재를 느끼며 살았다는 그이는 내면의 세계를 빛으로 표현해내는 특유의 기법으로 프랑스, 독일, 스위스등지에서 주목되는 현대미술화가로 평가받는다. 선생은 고희가 넘도록 100여 차례 개인전과 단체전을 열며 창작활동을 하는 한편 1991년 재불교민불자회를 위한 법정스님초청법회를 인연으로 파리교외 길상사 건립에 마음을 보탰다. 오랜 해외생활을 하는 동안 생겨난 외로움과 고독을 이겨낼 인식처가 될 불사가 시작되면서 매일같이 현장으로 출근했다기에 ‘그 때 이야기 좀 해주세요..라고 했지만 ’뭐 다 지나간 이야기를...하고 흘려버린다. 하지만 파리 길상사건립 재불화가전도 열렸다고 하니 당시 선생의 활약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법정스님께 받은 법명이 연화장(蓮花藏)인 그이는 2005년 강화 전등사에서 \'생명의 빛 나눔의 기쁨‘을 주제로 전시회를 가졌는데 그 때 이야기 한 토막, 사찰에서의 전시회니 만큼 작품걸기가 수월치는 않으리라 걱정했는데 희한하게도 회랑의 기둥과 기둥사이가 자로 잰 듯이 작품과 딱딱 맞아 떨어져서 부처님의 가피려니 하며 전시회를 진행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도 너무 고마운 일이란다. 어르신들 하시는 말씀 가운데 ’절에서 하는 일은 저절로 저절로 되는 거란다‘가 바로 이 대목에 맞는 말인 듯 하다. 선생은 원불교중앙중도훈련원과 서울 보각사, 개화산 개화사의 후불탱화를 조성하는 인연도 지었으니 어렸을 적 몸이 약해 산사로 요양 떠나곤 하던 그 부처님인연이 지중한 것 같다. 매일 아침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이를 두고 ’빛의 구도자‘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 있으리라.
그냥 되는 거에요
내면세계를 빛으로 표현하는 화가 방혜자, 참 조그맣고 가냘픈 외모를 지닌 그이의 전시작품가운데는 대작이 여럿 있었다. 우문일 수밖에 없지만 어떻게 이런 큰 작품이 만들어지느냐고 살짝 물어보니 기운을 아끼려는 것일까. 속삭이듯 돌아온 대답은 “그냥 되는 거에요.” 그렇다. 그냥 되고... 저절로 되고~~
예술가들이 작업을 하는 큰 줄기는 비슷한 것일까? 며칠 전에 읽은 <개미>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꿀벌이 꿀을 만들 때 이 꿀이 좋은 꿀인가 나쁜 꿀인가 고민하지 않아요. 그냥하세요‘ 부끄러움이 생겨난다. 취재를 마치고 그들의 삶을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끙끙대는 내 모습이 보이니 말이다.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는 방혜자선생은 파리에 유리 아틀리에가 있다고 한다. 프랑스로 건너간지 30여년 만에 마련했다는 그곳에 낮에는 햇빛이 밤에는 별빛이 쏟아내려 시인이가도한 선생의 맑은 언어가 생산된다.
우주의 중심인 생명, 평화 사랑과 영혼을 이야기하는 선생의 시 한편을 소개한다.
나는 오랫동안/천공을 돌고 돌았다
별과 별 사이에서/밤을 새워/빛과 빛 사이에서 놀았다
이제 대지로 돌아와/돌 하나 모래 한 알의/속을 들여다본다
세포의 빛들이/깨어나는 소리를 듣고
빛의 눈들이 물성의 속 속까지/번쩍이고 있음을/알게 되었다
오늘 이 순간/내 곁에 있는/모든 생명들이
하나 되어/장엄한 빛으로/피어남을
1,2층 전시장을 돌아보고 선생은 작업실로 우릴 안내했다. 영은미술관은 방혜자선생을 입주 작가로 선정하고 창작스튜디오를 제공하고 있는데 창 너머로 햇살이 스며들면서 그림의 에너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바닥에 펼쳐져 작업 중인 그림과 물감들을 보고 있으려니 유학3년 만에 처음 그림이 팔리고 부모님의 재정지원을 벗어나 독립하면서 계란2개로 한 끼를 해결했다는 일화가 있기에 물었다. 예술을 하면서 밥벌이의 어려움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예술이 상업성으로 기울고 부와 손을 잡게 되면서 본연의 사명과 빛을 잃어 가는데 모든 욕망과 명예 이런 거 생각지 말고 그냥 그려야합니다.”불편한 내색이었지만 그이의 대답은 단호했다.
빛의 화가 방혜자
방혜자선생은 그림의 바탕재료로 닥종이와 한지를 주로 사용한다. 한지는 흡수력이 뛰어나고 번짐을 통해 그림의 깊이와 색감의 묘미를 더해주기에 선생이 추구하는 세계를 담아내기에 적합한 소재였다. 색채에 대한 검색가라도 불리는 그이는 식물성천연염료나 흙, 석채, 모래 같은 자연안료를 한지나 부직포에 원하는 색이 나올 때까지 수없이 색을 입혀나간다. 자연의 숨결을 그대로 받아 낼 수 있을 때까지. 특히 한지의 경우양면에 색을 칠하는 배채 화법으로 작업을 하는데 이 배채법은 고려불화에 사용된 기법이다. 고려불화가 가장 높게 평가 받는 것도 이런 배채법에 있다고. 선생은 작품뒷면도 일일이 돌아가며 설명을 해 주었는데 작품을 뒤에서도 감상할 수 있게 설치된 것도 이채로웠다. 그이가 작품을 통해 내보이는 빛의 세계는 창조이자 생명, 자비의광명의 빛이다. 세상의 무거운 짐과 어두움을 기쁨으로 바꾸는 힘을 갖고 있는 빛의 화가 방혜자, 그이에게 해인사에 모셔진 두 분 비로자나불의 광명을 언제 한 번 작품으로 형상화시켜봤으면 하고 희망을 내비쳤다. 생각해보겠다는 것인지 알았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조용하고 영민한 눈빛이 날 바라본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니 미술관 정원에서 선생의 프랑스인 남편 알렉상드르 기유모즈 교수(파리국립학술원한국학 책임자이자 사회과학대학 교수를 역임한 프랑스에서 한국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고 한국말을 가장 잘하는)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토지문학관에서 번역작업도 병행하고 있는 아내와 함께 곧 원주로 출발할 거란다. 저녁햇빛 속 두 분의 모습이 그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