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연불수어생사湛然不隨於生死 어느새 겨울이 순식간에 성큼 다가왔다. 쌀쌀하고 을씨년스러운 날씨와 함께 기운이나 체력도 움츠러들기만 한다. 삐걱대는 한 쪽을 겨우 추스르고 나면 생각지도 않았던 저 쪽에서 시름시름 앓는 소리가 가시지 않는 것을 보자니 생노병사生老病死의 절대적인 괴로움을 입증하는가보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그리하여 생노병사의 고해苦海를 벗어나지 못하는 숙업宿業을 절절하게 느끼면서 늙음과 병고의 시절을 지낸다.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병고로써 양약良藥을 삼으라고 하셨다는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의 말씀이나 무상無常과 덧없음의 절절한 체험으로도, 담담하고 담박하게 살아간다면 생生과 사死에 연연하거나 끄달리지 않으리라 (담연불수어생사 湛然不隨於生死)는 말씀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은 추워진 날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봄에 움터 올라온 새싹은 여름에 자라나면서 작열하는 태양과 씨름하며 질적인 변화과정을 거쳐 온전한 개체로 성숙하여 열매를 맺고, 그 다음에는 개체로서의 삶을 정리하는 단계를 거쳐서 겨울에는 다시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기 위해서 지난 세월을 저장하는 생장화수장生長化收藏의 단계를 거치기 마련이다.
이처럼 하나의 씨앗 속에는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생애가 새로운 생명과 결실을 준비하며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은 전무全無의 백지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세상에서의 모든 결과의 연장선상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싹을 내린 생명은 개체로 자라나게 되고, 개체의 모습을 갖추면 하나의 주체로서 적극적으로 주위와 환경에 적응하고 대응하면서 자신의 열매와 결실을 이루게 된다.
각자에게 맡겨진 다양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 성장하고 열매를 맺었던 생명들은 가을을 보내고 겨울로 접어들면서 스스로의 삶을 나름대로 정리하게 된다. 푸르던 잎은 단풍과 낙엽으로 바뀌고 시든 가지를 정리하면서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거두어서 안으로 저장하여 다시 새로운 봄과 생명을 준비하는 것이다.
열매를 맺거나 혹은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산천을 장엄하기 위해서 모든 기운과 기력을 소진하고도 미미한 힘과 생명력을 자신을 위한 자양분으로 만들지 않고 아직은 아득하기만 한 시절인 봄에 다시 시작될 새싹을 위해서 양보하고, 처연한 모습으로 겨울을 시작하는 숲을 바라보면서 생사生死에 끄달리지 않고 얽매이지 않는 담담하고 담박한 의지를 엿보게 된다.
존재하는 모든 중생은 생명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이미 늙음과 죽음을 향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우주는 성주괴공成住壞空하고 인간은 생노병사生老病死하며 중생의 마음은 생주이멸生住異滅하면서 어느 한순간도 멈추어 있거나 변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것이 제행무상諸行無常이며 제법무아諸法無我의 법인法印이다. 이처럼 변하는 것을 거슬러서 변하지 않으려는 것은 생사에 얽매이고 끄달리는 부질없는 탐욕이며 집착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 변하는 것을 변하는 것으로 보는 지혜는 변하지 않는다.
생야일편부운기 生也一片浮雲起
사야일편부운멸 死也一片浮雲滅
부운자체본무실 浮雲自体本無實
생사거래역여연 生死去來亦如然
독유일물상독로 獨有一物常獨露
담연불수어생사 湛然不隨於生死
생이란 흘러가는 한조각 구름이 허공에 일어나는 것과 같고, 죽음이란 흘러가는 한조각 구름이 바람결에 흩어지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정처 없이 떠다니는 구름처럼, 우리들의 생사거래生死去來 나고 죽음 또한 실답지 못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속에 끄달리거나 얽매임이 없이 언제나 한결 같은 모습을 잃지 않는 주인공이 있으니, 생사에 끄달림이 없는, 나고 죽음에 끄달림이 없는 내 모습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남아 있는 모든 기운과 기력으로 다시 시작되는 새로운 생명과의 연결을 위한 토양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겨울나무처럼, 모든 지혜와 정성을 기울여 중생과 보리菩提를 위한 회향廻向에 진력盡力한다면, 나고 죽음에 끄달림이 없는 진실한 주인공이 되어서, 모든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나 담담하고 담박하게 살아간다면 생사에 연연하거나 끄달리지 않는 대자유의 자재自在로운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기대에 오래된 벗처럼 병고도 친숙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