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내 앞의 모든 너에게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이 달의 이야기 - 윤해영/동국대학교 교수 2009년 12월 334호
지금부터 약 5천여 년 전 수메르 인들은 달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태음력을, 비슷한 시기 이집트 사람들은 태양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태양력을 만들었습니다. 서력기원 전 1세기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집트 원정에서 그곳 천문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12달 달력을 지었습니다. 1682년 로마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는 천문학자들을 시켜 율리우스력의 오차들을 수정하여 훨씬 완전한 달력을 편찬했습니다. 지금의 달력들은 모두 이들의 노고에 힘입은 결과입니다.
흘러가는 시간을 이렇게 구분 짓는 작업은 우리들의 삶에 참으로 많은 의의를 주었습니다. 그때와 지금 그리고 다가올 때를 안다는 사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의의들 가운데 작은 하나는 어느 시점을 기준하여 지난 일들의 정리와 다가올 일들의 계획을 가능케 한 일일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인 것 같습니다.
12월은 구획된 시간의 한 자락을 접고 새 자락을 펼칠 시점입니다. 이때쯤이면 누구든 지난 한 해를 정리해보고 다가올 한 해를 다시 설계코자 할 것입니다. 저 역시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저 또한 매년 이 시점이 되면 이와 비슷한 일을 반복합니다.
저는 우선 다시 한 번 감사하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새해 새날을 시작해서 오늘의 이날까지 한 해 동안, 지금의 나를 가능케 해 준 내 앞의 모든 너에게 감사드립니다. 내 앞의 모든 너는 나의 존재 근거입니다. 나는 나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나는, 내 앞의 방바닥과 기둥과 천정과, 지금 입고 있는 옷과 어제의 음식과, 배우러 온 학생과 등록금을 내 준 학부모와, 그들의 직장과 그 직장이 생산한 결과를 사준 소비자들과, 그 생산을 가능케 해 준 재료와, 그 재료의 존재를 가능케 해 준 공기와 물과 햇빛과, 손가락의 움직임을 남기고 허공으로 사라져 가는 좀 전에 먹은 쌀과, 나를 인정해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의 애정으로, 즉 내 앞의 무수한 모든 너로 말미암아 존재합니다. 내 앞의 그 어느 한 가지라도 없어진다면 나는 손상되고 결국은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니 나의 존재 근거인 내 앞의 모든 너에게 감사치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시간이 한 자락 접혀 가는 이 시점에서 그 모든 것들에 다시 한 번 끝없이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저는 이런 진리를 순간순간 아니 어떤 때는 아주 오랫동안 잊어버립니다. 아니 도리어 내 앞의 모든 너에게 불평과 불만을 가지며 심지어 분노를 분출하기까지 합니다. 저는 이 순간에 그 어리석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참회하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방바닥이 왜 이렇게 차갑고, 기둥은 왜 이렇게 가운데를 차지하고, 천정은 왜 이렇게 낮고, 옷은 왜 이렇게 더러워지고, 밥은 왜 이렇게 맛없고, 내 몸은 왜 이리 약하고 내 머리는 왜 이리 둔하고, 이렇게 불평하고 불만한 어리석음을 참회합니다. 그 비싼 등록금내고 결석하고, 말뜻을 도통 알지 못하고, 약속을 어기고, 고마운 줄 모르고 도리어 배신하고, 나를 헐뜯고 모함한 이들에게 분노한 모든 어리석은 일들을 참회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또한 할 일을 남에게 미루고 내일로 미루는 게으름에 대해 참회합니다. 더 많은 논문을 쓰지 못하고, 열정적으로 강의하지 못하고, 공동체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일들을 참회합니다. 한 해의 시간이 선 그어지는 이 시점에서 이 같은 모든 한없는 어리석음을 뉘우치고 다시는 반복치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한 해를 보내고 맞이하는 이 순간, 하고 싶고 해야 할 일들은 무척 많습니다. 벌여 놓은 일들 가운데서 이달 중에 꼭 마무리하지 않으면 안 될 일들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 꼭 한 가지만 말한다면, 저는 이 순간 나와 다른 이들의 몸에서 도파민, 옥시토신, 엔돌핀 같은 호르몬이 많이 흘러나오도록 하고 싶습니다.
캘리포니아주 로마린다 의대의 리 버크 교수와 스탠리 탠 교수는 웃음과 건강의 관계 연구로 유명해 졌습니다. 이들에 의하면, 사람이 웃음을 웃으면 전체 650개의 근육 중에서 3분의 1 이상이 움직이면서 한 번의 웃음으로 10분 간 빨리 걷거나 윗몸 일으키기 25회의 운동효과, 즉 50kcal를 소모합니다. 또한 웃음이 끝나면 근육과 긴장이 이완되면서 평안과 안심의 심리상태로 인도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웃을 때 행복감을 만드는 신경전달 물질인 엔돌핀이 분비된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엔돌핀은 암세포를 직접 파괴하는 자연 살해 세포(natural killer cell)를 증식시킵니다. 웃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인 사이토카인 호르몬이나 인터페론 감마 호르몬은 백혈구를 증가시켜 면역력을 높이고 직접 행복감을 높여 줍니다.
그런데 문제는 저는 남을 웃기는 재주가 별로 없다는 사실입니다. 웃기는 잘 하니 나의 행복 호르몬들은 많이 나오겠지만 그만으로는 다른 이들을 어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다행인 것은 이들 호르몬이 웃을 때보다 5천배 이상 많이 나올 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전율적 감동을 받으면 도파민, 엔돌핀, 옥시토신 등 이들 호르몬이 마구 쏟아진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떨 때 감동을 받습니까? 예술과 스포츠는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역경과 고난을 이긴 성취에도 우리는 감동합니다.
그러나 저는 자신을 낮추고, 자신을 비우고, 자신을 버려,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헌신하는 희생적 사랑을 만날 때 전율하는 감동을 느낍니다. 저는 그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포함한 모든 종교의 핵심 가르침이라고 믿습니다. 이 달이 가기 전에 꼭 다짐합니다. 글로써든 말로써든 행동으로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나를 포함한 온 세상을 한 걸음 행복으로 나아가도록 일조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