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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마감하면서 하고 싶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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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이야기 - 선담 2009년 12월 334호
한 해를 마감한다는 것은, 다시 한 해를 준비한다는 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 해의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12월달을 보내고 나면, 한 해의 시작인 1월달이 온다. 그래서, 끝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마감’을, ‘시작의 다른 이름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시작과 끝의 관계는 동전의 양면처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달은,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12월달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산문山門에서 12월달은 동안거冬安居기간이다. 동안거란, 음력 10월 보름부터 정월 보름까지 스님들은 바깥 출입을 삼가하고 수행에 힘쓰는 기간이다. 그렇기에 ‘한 해를 마감하면서 하고 싶은 일’이란 말은, 산문에 있는 스님들에게 있어서는, ‘동안거를 지내면서 하고 싶은 일’이란 말로 바꿔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 해를 마감하면서 하고 싶은 일은, 동안거 기간 중에 수행정진을 잘 하는 일이다. 수행정진을 잘 하고자 하는 마음은, 출가해서 삭발염의 -머리깍고 괴색壞色의 옷을 입는 것을 말한다- 를 처음으로 했을 때나, 지금 이 자리에 있을 때나 별반 차이가 없다.
보통 한 해를 마감한다고 하면, 한 해를 정리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한 해를 마감하면서 하고 싶은 일이 수행정진을 잘 하는 일이라고 하니 불교를 공부하는 초학자 말답지 않은가. 불교에서는 모든 일이 수행과정이 될 수 있기에 그런 것 같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달은 산문에 있어서 동안거 기간이다. 안거 기간은 수행에 더욱 힘쓰는 기간이다. 그러니 수행을 잘 하고자 하는 생각말고 무엇이 더 있겠는가. 그런데, 그 수행정진을 잘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삼척동자도 다 알만큼 쉬운 일이기도 하지만, 팔십먹은 노인도 행하기 어려운 것이 불교의 수행이기 때문이다. 불교 수행의 가르침을 얘기하자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諸惡莫作 衆善奉行 제악막작 중선봉행
自淨其意 是諸佛敎 자정기의 시제불교

이 말은 ‘모든 악한 행을 하지 말고, 모든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라.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라는 의미이다. 쉽게 말하면, ‘나쁜 짓 하지 말고, 착한 짓 많이 하라’는 것이다. 하루나 이틀은 하기 쉬워도 백일이나 이백일, 일년, 이년 그 이상은 하기 힘든 일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게을러 지려고 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래서, 매일새벽마다 처음 발심發心하여 출가를 결심하였던 때를 떠올린다. 그러면, 수행정진 하는데 방일放逸해지려는 마음을 추수릴 수 있다.
부처님 법을 배우고 행함에 있어서 하루나 이틀은 하기 쉬울 수 있다. 하지만, 오랜기간동안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는 처음 발심했던 때를 잊지 말고, 제대로 배우고 익히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이라는 말이 있다. 법성게에도 나오고, 화엄경 약찬게에도 나올 만큼 매우 중요한 말이다. 이 말은 ‘처음 발심한 때가 곧 바른 깨달음이다’라는 말이다. 이러한 일을 안거 기간에 집중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한 해를 마감하며 하고 싶은 일이다.
‘한 해를 마감하면서’라는 말을 생각하면, ‘시작’이라는 말이 반사적으로 떠오른다. 그 다음에 떠오르는 것이 ‘시작은 반이다’라는 말이다. 그런데, 시작은 반이다라는 말이 재밌는 말이다. 문자 그대로 시작이 반이다라는 얘기인지, 아니면 반이 시작이다라는 얘기인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시작이라든가, 반이라든가, 마감이나 끝이란 말들은 중생의 인식작용이 만들어낸 ‘틀’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해인사 일주문에는 다음과 같은 주련柱聯 -기둥이나 벽에 장식으로 써서 붙이는 글의 구절을 말함- 이 있다.

歷千劫而不古 亘萬歲而長今 역천겁이불고 긍만세이장금

이 말은 ‘천겁을 지냈어도 그 천년은 옛날이 아니요, 만년을 말하더라도 그 만년은 오래도록 오늘이어라’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금강경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不可得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

이 말은 ‘지나간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 조금 달리 말하면, ‘과거도 취할 수 없고, 현재도 취할 수 없고, 미래도 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거는 지나 갔으니 취할 수 없고, 현재는 말하자마자 과거가 되니 취할 수 없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 취할 수 없다. 그리고, 미래라고 말하자마자 그것은 현재가 되기도 하고, 현재라고 말하자마자 그것은 과거가 되기도 한다.
‘끝을 천겁이나 과거에, 반(중간)을 장금이나 현재에, 시작을 만세나 미래에 대비시켜서 생각해 보면 어떨까’
틀에 갖힌 인식은 중생의 마음을 벗어나기 어렵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벼룩은 자기 키의 50배에서 100배를 뛸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능력을 가진 벼룩을 작은 유리병에 넣고 한동안 기르다가 밖에 놓아주면, 작은 유리병 높이 만큼만 뛴다고 한다. 유리병을 일종의 틀로 생각해보면, 틀이란 능력을 제한하는 요소가 된다. 일주문의 주련이나 금강경에 나오는 글구는 중생이 가진 인식의 틀을 벗는데 도움을 준다.
한 해를 마감하면서 하고 싶은 일은 수행정진을 열심히 하는 일이다. 그런데, 한해를 마감하면서라는 말이 수행정진을 하려는 마음에 틀을 제공해 주는 것 같아서 위와 같은 생각을 해보았다. 수행정진을 열심히 해야겠다라는 생각도 하나의 틀이 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부처님 법을 배우고 실천함에 있어 분별망상심을 버리고, 처음 발심했던 그대로 수행정진하면서 이번 동안거를 잘 지내고 싶다. 천겁을 지냈기에 오늘이 있을 수 있고 만년을 말할 수 있지만 이것은 지금 오늘인 것이다라는 말처럼 말이다.
금년은 4년마다 한번 오는 윤달이 있어서 절에 큰 행사도 많았고, 강원 방학과 가을 학기도 각각 보름정도 길었다. 몇 달전 늦가을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낙옆들을 보면서, 무상無常함을 느꼈다. 말 그대로 추풍낙엽秋風落葉을 보았다. 앙상한 나뭇가지만 보이는 나무들 사이로 잎이 파릇파릇한 침엽수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계절이 바뀌거나 세월이 흘러도 바뀌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새삼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나의 출가의지를 재확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