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선거는 어느 선거보다도 조용하고 차분했다. 일찍이 자승스님을 견줄만한 후보가 없었던 것이 조용한 선거를 치러낸 요인으로 작용했다. 출마를 고민했던 몇 스님은 자승스님이 종회 내 4개 종책모임과 많은 본사주지스님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자 출마를 접었다.
이번 선거는 예전의 선거와 달리 돈선거로 인한 잡음이 없었다.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한때 돈선거는 종단의 고질병이었다. 오죽했으면 종단의 한 원로 스님이 “종회의원 선거에 수천만 원이 들고, 총무원장 선거에 수억, 수십억 원을 씁니다. 국회의원도 100만원 받으면 모가지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절 집안에서 어떻게 삼보정재가 좋지 않은 곳에 쓰입니까.…이것은 종단적으로 박복해지는 일입니다. 이런 병폐를 쓸어버리지 않고서는, 지금 이런 구태의연한 선거 방법에 의해서 계속 나간다는 것은 불교를 스스로 멸망시키는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했을까.
왜 이번 선거에서 돈선거 잡음이 없었던 것일까. 박빙의 승부가 예상될 때 후보와 선거인단 모두 돈선거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애초에 승패가 뚜렷이 예상됨으로써 돈을 써서 표를 얻어야 하는 상황이 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돈선거라는 고질병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이번 선거는 돈선거 잡음을 없앨 수 있다는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 선거였음에도 공정한 경쟁이 자리잡는 새로운 선거문화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하기에는 조금은 인색해져야 한다.
종책선거는 여전히 과제로 남았다. 종책선거의 핵심은 종책토론회일텐데, 토론회는 열리지 않았다. 토론회는 종단 미래상을 종도들과 함께 공유하는 장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 새 총무원장이 선장이라면, 종책은 배의 하드웨어이며 소프트웨어다. 어떤 배로 어디를 향해 항해하는지를 배에 탄 사람들이 모두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직접선거가 아닌 간접선거에서 종책 공유는 더 절실하다.
종책선거가 되지 못한 몇 가지 원인을 짚어보면, 우선, 총무원장선거법과 선거 관련 법령에서 종책토론회를 자극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토론회를 열어야 한다는 조항이 없다보니, 후보들은 물론 종도들도 적극적이지 못하게 된다. 이번 선거에서 몇 단체들이 주앙선거관리위원회에 토론회 개최를 요구했으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단체들이 토론회를 열면 지원하겠다는 뜻만 비쳤을 뿐이다. 단체들도 어디에 요구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토론회를 조직해야 했다. 토론회 한 번 열지 못하고 치른 이번 선거는 내내 아쉽다. 불교단체들의 역량 부족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후 선거법 개정을 할 때 토론회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규정이 신설되길 바란다. 우리 사회의 여러 공직선거에서는 TV토론회를 열도록 하고, 예산도 지원하고 있다. 이런 제도를 종단에 도입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추진되어야 한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는 또 선거 관련 제도 개선도 과제로 제기됐다. 더 많은 종도들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추대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적지만 추첨제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문제는 선거를 어떻게 보느냐 일 것이다. 더 많은 종도의 선거 참여는 민주주의 원칙에 충실하자는 바탕에서 나오는 제안이다. 추대제는 종교단체인 만큼 원로들의 권위에 방점을 두는 방안이다. 현 시점에서는 더 많은 종도들이 참여하는 방안이 타당성이 있어 보이지만, 서둘러서 결론을 내릴 일이 아니다. 새 총무원장 체제가 출범하면서 선거법 개정을 위한 종단적 기구의 구성이 요청되며, 이 기구에서 다양한 의견을 듣는 일을 먼저 시작해야 한다.
총무원장에 당선된 자승스님은 선거 과정에서 종책제안서를 펴냈다. 이 제안서에는 60여 항의 과제가 들어 있다. 모두 필요한 일들이라고 해서 모두 이뤄낼 수는 없다. 종단의 인적 물적 조건이 한정돼 있는 만큼 상당 부분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순위를 정하고, 재원 조달 방법, 일정표 등이 세부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종도들의 마음이 모아져야 하는데, 이에 이르는 첩경은 총무원과 각종 종헌 및 종법 기구가 제자리를 찾아 제 역할을 다할 때 비로소 마음이 모아진다. 즉, 종단의 본래면목을 회복하는 일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래 물이 맑다는 속담은 이 경우에 적합하다. 상벌을 통해 지원하고 자극하고 규제해야 한다. 이 지점을 흐지부지하면 종도들의 마음은 흐트러진다.
새 총무원장 체제가 출범할 때마다 종도들의 마음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이번에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점에서 이후 화합을 바탕으로 힘 있는 종책 추진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종책모임간 연합이 계속 잘 유지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든다. 또 종책모임 연합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종도들이 소외되는 상황을 만들어서도 안 된다. 종책모임의 연합으로 새 총무원장이 탄생됐지만, 이제 새 총무원장은 종도들의 총무원장이다. 두루 아우르는, 토론하고 양보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자승스님은 당선 후 배포한 당선소감문과 첫 기자회견을 통해 “조계종은 사회에 새로운 희망과 가치관을 제시해 줄 것을 요구받고 있다”며 “종도들의 뜻과 의지를 겸허히 수렴해 수행종풍을 진작하고 한국불교의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고 다짐했다. “종정예하의 교시를 받들고 원로의원, 대종사스님들의 가르침을 받들어 종단 운영에 큰 일임을 하려고 한다. 신심과 원력과 공심으로 사부대중의 뜻을 모아 불교중흥에 새 역사를 창조하는데 헌신의 힘을 다하려 한다”고 말했다. 새 총무원장의 각오와 다짐이 마음 든든하다. 자승스님은 이후 4년 동안 우리 종단에서 가장 바쁜 가운데 노심초사하는 스님 중의 한 분이 될 것이다.
새 총무원장에게 모든 짐이 지워져서는 안 된다. 자승스님을 지지했던 스님들은 향후 4년 동안의 종단적 과제를 이뤄내야 하는 책임을 나눠가진 것이다. 원하는 후보를 총무원장으로 당선시킨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약속했던 종책 과제들을 총무원장을 도와 이뤄내는 일이 남았다. 권력은 군림하면서 누리는 것이 아니다. 권한을 한시적으로 위임받은 것일 뿐이다. 말 없는 종도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그 마음을 헤아리는 총무원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