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오늘날 출가자에게 불교학이란 무엇인가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학사대 - 원걸 2009년 11월 333호
중생衆生에게는 팔만사천八萬四千가지의 번뇌煩惱가 있어 불교에는 팔만사천법문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많은 번뇌煩惱가 있고 그만큼 많은 법문이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렇게 법문이 많기에 불교는 경전經典 또한 그 수가 많다.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는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은 그 매수枚數가 81,258장이며 경전의 수만 1,512종이나 된다. 이 엄청난 양量에 보는 것만으로도 아연啞然해 진다. 저 많은 경전을 평생 다 한번 읽어 볼 수나 있을까.

『중아함경』에 이르기를 바닷물의 양이 아무리 많아도 그 맛은 한가지 짠맛이라 굳이 그 많은 바닷물을 다 마셔 보지 않아도 바닷물이 짜다는 것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전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그 말하고자 하는 바 또한 한가지라는 것이다. 경전이 이렇게 많은데 한 장만 읽어도 그 진실한 뜻을 알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얼마나 배워야 하는 것일까.

조계종은 출가자의 고령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 지난 2003년 행자교육원 수학 자격을 ‘15세 이상 50세 이하’에서 ‘15세 이상 40세 이하’로 낮추었다. 그러나 출가자의 감소로 인해서 다시 법을 개정한지 3년 시행된 지 2년만인 2005년 교육법을 개정해 출가 제한 연령을 다시 50세로 상향조정했다. 출가자의 감소가 너무 급격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2008년도를 기준으로 한해 출가자는 287명이며 그중 30대가 101명으로 전체의 35%이며 40세 이상이 99명으로 34%에 해당된다. 70%가 30세 이후에 출가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출가자들의 학력에 대해서는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지만 조계종의 출가 요건이 고등학교 졸업이상이다. 또한 교과부의 ‘2009 교육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5-34세 국민 가운데 전문대 이상 졸업한 국민이 56%로 OECD 가입 국가 가운데 2위에 해당하는 높은 학력을 가지고 있다. 출가자들의 고학력화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겠다.

세상은 출가자들에게 ‘출가자 중심의 종단이 좀 더 문을 열고 다양화, 전문화, 현대화하는 길이 곧 한국 사회 내에서의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찾는 길이고 세계화할 수 있는 길’이라면서 소통하기를 원한다. 출가자는 학문을 하는 단체는 아니지만 불교에 관해서는 더 확고한 신념과 개념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불교학적인 측면에서 과연 출가자가 주도主導하고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출가자와 재가자의 관계가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출가자가 교리 해석의 독점적 권위를 가졌지만, 자료와 정보가 공개됨으로써 진리는 사권師拳 속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고 출가자보다 교리방면에 더 뛰어난 재가자들이 배출되고 있다.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한 인터넷의 수많은 교리 사이트를 보면 출가자로서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출가자는 ‘가장 끈적끈적한 애정의 울타리와 가정을 넘어서, 일정한 목표를 추구하는 이익 집단과 결별하고서, 나아가서는 국가와 민족, 세계, 인류로부터 냉엄하게 한걸음 물러서서 우리 삶의 문제를 살펴보고 검증’해야 하며 가치의 기준을 제공해야 한다. 그렇다면 출가자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지식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불교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비판과 증명을 허용하지 않는 독단적인 종교가 아니다. 불교는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시대와 환경에 적응해왔다. 초기불교․대승불교․선불교․밀교 등 다양한 불교 전통은 단순한 시대적 구분이나 지리적 구분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와 환경에 부단히 적응해온 사상사적 구분이기도 하다. 어떠한 것은 끊임없이 변해가야하고 어떠한 것은 변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출가자는 무엇을 끊임없이 변화 시키고, 무엇은 변하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오늘날 우리는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 혁명에서 시작하여 산업사회와 후기 산업사회를 거쳐 이제는 정보화 시대에 접어들어, 단어만 입력하면 모든 정보지식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정보화 시대에 출가자에게 불교학을 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인가. 출가자에게 불교학이란 무엇인가. 불교학이란 출가자에게 기초학문인가. 불교학을 한다는 것이 수행일 수 있는가.

불법을 똥덩어리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일 수 있을 때 그 자리에서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기존 사상思想의 부정 없이 새로운 사상이 가능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노력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아니면 구성된 것들을 이해하는데 힘겨워 하고 있는가. 새로운 옷을 입은 불법을 꿈꾸는가, 아니면 경배敬拜하고 모시는데 여념이 없는가.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불교는 자부심이기도 하지만 발전을 가로 막는 걸림돌은 아닌가. 불교학은 이성적인 비판적 인식을 통하여 현상을 기술하고 분석하고 해석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것이 불교를 부정하거나 평가절하하거나 해체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사용되어 온 다양한 불교학 방법론의 장단점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방법론도 수용할 수 있는 열린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출가자는 엄연한 전문가 집단이다. 전문가라면 그 분야에 지식과 경험을 두루 갖추어야 한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전문가라는 것은 한쪽으로 편향偏向된 사람들이다. 불교 전문가로서의 출가자는 전통적인 불교학에 조금은 편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천의 사표師表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을 갖추는데 필요한 기초적인 학문을 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아울러 수행과 교화敎化에 매진할 수 있는 기틀을 닦아야 한다. 그러나 그 방법은 전통적인 불교학 방법론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오늘날 출가자에게 불교학이란 무엇일까? 란 질문에 하나의 정의(定義, definition)를 내리기란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다. 하나의 정의는 수많은 반박과 반대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이 아닌 것, 출가자의 불교학이 아닌 것은 무엇인지 대답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문헌 속에 파묻혀 현실 속에서 살아 숨 쉬지 않는 자기 철학이 없는 불교학은 출가자의 불교학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