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볕은 잔잔하고 바람은 한가로워 여여한 오후, 허공엔 노릇한 가을빛이 떠다니니 조계사 앞을 지나는 사람들 발걸음도 거분하다. 그런데 총무원에서 만나기로 한 스님은 어디서 무얼 하느라 이리도 바쁘신가. 총무원 안에서 일을 보는 중이라고 하면서도 좀체 뒷모습도 보여주질 않으시니 기다림은 가을 저녁빛처럼 창가에 머문다. 어둠이 깃들기 시작한 시간, 마주앉은 스님의 얼굴엔 하루의 노고가 슬쩍 깃들어 있지만 스님은 내색하지 않으려는 듯 안면의 그 텁텁한 꺼풀을 슬쩍 손으로 쳐내신다.
“바쁜 척 하는 거지, 뭐….”
혜경스님이 총무국장 자리에 앉은 것도 3년이 넘었다. 전등사 주지 소임까지 맡고 있으니 몸 둘 곳도 맘 둘 곳도 많겠다 싶다. 그러나 스님은 말씀하신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선방에선 시은으로 편하게 먹고 살았으니 그 시은을 갚는다는 생각으로 소임을 살아야 하지 않겠나, 밥값을 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말씀이다.
“허나 선방에서 정진하는 것이나 여기서 소임 사는 것이나 똑같아요.”
마음 자세에 대한 말씀이다. 정진을 하는 것도 소임을 사는 것도 출가 시의 목표로 가는 노정인 것이니, 길을 가는 이가 마음만 달라지지 않으면 된다는 말씀이다. 그 길의 환경이 다르다고 해서 마음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다. 도인이 되기 위한 과정이니 도인이 되겠다는 생각만 안 잊어버리면 선방에 있든 소임을 살든 똑같다는 말씀이다. 그러니 힘들 것 없다는 말씀이다.
“숨 쉬는 게 힘드나? 죽음에 임박한 사람이나 힘들지.”
그러나 우린 때때로 마음을 잃고 주저앉는다. 대체 왜 걸어가고 있는지, 지금 가고 있는 곳이 어디쯤인지 몰라 숨을 쉬는 게 세상에서 가장 힘들어질 때가 있다. 그러자 스님은 말씀하신다.
“그래서 강원 툇마루에 써 있잖아요. 조고각하照顧脚下, 발밑을 살펴보라.”
스님 책상엔 결제해야 할 서류들이 깊은 산중의 가을 낙엽처럼 쌓였다. 그런데도 스님은 잰걸음 없이 여여히 하나하나 살펴보신다.
“국장이라는 소임은, 실무를 장리한다고 되어 있어요. 책임지고 관리한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서 실무 책임을 진다는 얘기인데, 그러려면 실무를 완전히 파악을 했을 때 그 실무를 장리할 수 있는 것이지요.”
부장은 정책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자리이고 국장은 규정에 입각해서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자리다. 그러자면 국장은 업무 규정에 대해 충분히 파악해야 하고 그 규정에 맞도록 모든 업무를 진척시켜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적어도 1년이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스님의 생각이다. 그래야만 실제적으로 업무를 주관할 수 있어 올바른 행정이 구현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장의 자리변동이, 정치적인 안배가 아닌 업무의 실무 책임자로써 역량을 기르고 발휘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종단의 승려 교육이 좀 더 다양해져야 하지 않겠나 싶은 생각도 있다.
“난 총무국장으로 3년을 살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요. 원장 스님이 아주 엄격한 원칙주의자이신데 내 생각과 잘 맞았거든요.”
원칙에 따라 움직이면 되는 곳이 사회지만, 그 원칙을 안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어 문제가 되는 곳이 사회이기도 하다. 그것은 종단에서도 마찬가지. 원칙을 아예 모르는 이에겐 설명을 하면 되는 문제이지만 잘 알고 있으면서도 원칙을 어기려는 이들, 다른 힘을 빌어서 안 되는 걸 되게 하려고 하는 이들, 자신이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큰 소리를 내며 전체를 흩트리곤 한다. 스님은 일을 하면서 그런 부분이 가장 짜증스럽단다.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하고, 길이 있으면 찾아보겠다고 해요. 그런데 찾아봐도 길이 없을 땐 다른 길을 찾아 제시하기도 하고요.”
원칙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에게 원칙의 잣대를 어떻게 갖다 댈 것인가 생각해야 할 문제다. 그 문제 위에서 스님은 여러 방법을 두고 잣대의 폭을 최대한 넓혀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결코 사람에 따라서 넓혔다 좁혔다 하지 않는다는 것.
“원장 스님은 정말 안 되는 건 하지 말라고 해주십니다. 아무리 큰 어른이 이야기를 해도 아닌 건 아닌 거라는 거지. 원칙, 법적 근거를 벗어나는 건 안 된다는 거지요. 그런 분들이 있어서 점점 종단이 건강해지고 있어요. 원장 스님을 비롯해서 그런 스님들과 종단을 건강하게 만들어 간다는 것, 건강해지려고 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 나 또한 그 구성 중 한 명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그렇게 건강해지는 종단의 구성원이니 내가 건강해지는 것, 그 모든 것이 즐겁지요. 그러니 내가 안 행복하겠습니까?”
총무원 스님들 중에 전화가 제일 적게 오는 사람이 바로 혜경스님이란다. 바쁜 사람일수록 전화통이 불이 나기 마련인 것을, 그래서 전화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고 보니 마주앉아 있는 내내 스님의 전화가 울리지 않는다.
“내겐 별로 부탁할게 없거든요. 대부분 뭘 부탁하려고 전화를 한단 말이지. 3년 지나니 그게 내가 얻은 소득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오해도 많이 받았단다. 거만하다는 둥, 뒷배경이 좋아서 무시한다는 둥.
“내 뒷배경이 뭔지 알아요? 시비가 일어나면 그만두면 된다는 생각. 그것이 든든한 내 뒷배경입니다.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살지는 않는다는 거지. 내가 여기서 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얼른 떠나야지요.”
일이 많으면 일에 찌든 얼굴이기 십상이다. 그러다가 어깨가 축 처져서는 일도 인생도 뭣도 필요 없이 그냥 앞만 보고 가자고 자신을 어르고 달래고 설득하고 주입시키고 그러다가 얼토당토않은 주문을 외기 마련이다. 그게 요즘 현대인의 실상이다. 그때에 스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자유로움이에요.” 스님께 여쭙는다. 자유로유십니까?
“자유로울 때가 많지. 내가 짜증을 안 내고 즐겁게 있으면 자유로운 거야.” 스님께 여쭙는다. 자유로운 시간이 많으십니까?
“시간을 나누면 자유로울 수가 없지.” 다시 여쭙는다. 저는 왜 즐거움을 찾을 수가 없나요?
“즐거움을 찾으려고 하면 힘들지. 그냥 즐거워야지.” 다시 여쭙는다. 어떻게 즐거워집니까?
“빠져야지.”
자신의 인생 속으로 쑥 빠져야한다는 것. 그러면 시공이 나뉠 수 없는 것이 되고 그러니 자유롭고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일에 빠지면 즐겁지. 그러면 일에 절대로 쫓기지 않아요. 해야 될 거라는 생각과 현실을 일치 시키지 못 하니 힘든 거지.”
스님은 직원들에게도, 일을 잘 하고 못하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정직하게 열심히 하는가에 대한 얘기만 할 뿐이다. 즉, 행복에 대한 얘기를 할 뿐이다.
“나는 부처님을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행복전도사라고 생각해요.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려고 살아요. 어떻게 행복해질 것인가, 그리고 어떤 것이 진정한 행복인가에 대한 정의는 부처님 가르침에서 찾으면 되는 거지요.”
스님은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연으로 출가했다. 경제적으로도 힘들고 오랜 병환도 있었던 어머니는 돌아가시면서도 편히 눈 감지 못하셨다. 몸도 마음도 힘겹게 살다 가신 어머니의 49제를 절에서 드리는데, 어머니가 참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49제를 하는 스님께 어찌하면 어머니가 좋은 곳으로 갈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스님은 머리를 깎고 중이 되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머리를 깎고 지금껏 절집에서 살고 있다.
“나는 내 성격에 중이 참 잘 맞다고 생각해요. 우리 노스님한테서 사미계를 받을 때, 스님께서 뭐라고 하셨느냐면, ‘넌 참 복이 많은 놈이야!’라고 한마디 하셨어요.”
스님은 요즘 들어 생각할수록 그 말씀이 참 맞는 것 같단다. 고비고비마다 좋은 분들을 참 많이 만났구나 싶단다. 밖에서 살았으면 밥이나 먹고 살았을까 싶단다.
“자유롭고 싶어요. 그런데 그게 잘 안돼요.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 하네요.”
초발심자경문의 발심장에 나오는 ‘삼일수심三日修心 천재보千載寶 백년탐물百年貪物 일조진一朝塵’, 3일간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이고 백년을 탐해 모은 재산은 하루아침에 먼지가 된다는 문구대로 살고 싶은 게 스님의 원력이다.
“뭘 거창하게 이루겠다는 거대한 원력은 없어요. 그저 개인적으로 살고 싶은 삶은, 어디에 있든 거기서 인연을 맺어 살다가 헤어질 때 내 뒤꼭지에 대고 욕하는 사람이 적기를 바라지요. 수처작주隨處作主가 되면 뒤꼭지가 아름다운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주인이 되어 사는 삶. 스님은 스스로가 중이라는 생각을 잊지 않고 대중에 대해 생각하면서 산다면 크게 나쁜 짓은 하지 않고 살겠나, 그렇게 살면 뒤꼭지가 조금쯤 예쁜 사람으로 남지 않겠나 생각한다. 그런 마음으로 소임도 보고 그런 마음으로 살아간다. 스님께서 마지막 말씀을 하신다.
“지금 내가 가진 것, 내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내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은 우리의 것이지요. 현재 다만 내가 이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뿐이라는 생각입니다.”
스님은 말씀을 끝내고 다시 자리에 앉아 결제해야 할 서류들을 펼치신다. 밤늦은 시간, 톡톡한 어둠이 사위를 감싸는데도 스님은 일에, 그리고 삶에 빠져계시는 중이었다. 그 어느 곳에도 제대로 빠지지 못하고 자꾸만 튕겨져 나온다는 내게 스님은 말씀하셨다.
“즐거운데 빠져나와 지나?”
스님과 헤어져 캄캄한 어둠에 헛발을 디디며 그나마 못난 뒤꼭지를 감춰 줄 어둠이 있어 다행이라고 중얼거렸다. 뒤꼭지가 예쁜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아닐까. 그러니 아직은 어둠에 숨어있는 시간. 찬란한 오후의 가을볕에서도 아름다운 자가 되기 위해, 당당히 뒤돌아서서 갈 수 있는 자가 되기 위해 안으로 안으로 발을 쑥 들이밀며 가는 가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