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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여왕과비로자나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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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이야기 - 편집실 2009년 11월 333호

2005년 6월 해인사에서는 국보 팔만대장경을 모셔놓은 전각의 법보전에 모셨던 목조 비로자나부처님 개금불사를 위하여 복장유물을 개봉하는 과정에서 불상 내면에 中和三年중화3년(서기 883년)에 제작되었다는 연기문이 발견되었다.
이 명문의 발견으로 지금까지 조선 시대에 조성된 불상으로 알려져 온 법보전의 비로자나 부처님은 해인사 창건당시에 조성된 국내 최고最古 통일신라 목조불상임이 밝혀졌다. 더불어 해인사 대적광전에 모셨던 비로자나 부처님과는 그 크기와 손가락 길이 등 전체적인 모습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쌍둥이 부처님으로 문화재 전문가의 내부 벽면 명문 해석에 의하면 대각간 위홍과 진성여왕의 서원과 사랑과 염원이 담긴 불상으로 확인되었다.

서원대각간주등신사미우좌비주등신 誓願大角干主燈身賜弥右座妃主燈身
중화3년계묘차상하절칠금착성 中和三年癸卯此像夏節柒金着成
서원합니다. 대각간님의 비로자나 부처님이시며 오른쪽의 부처님은 비님의 비로자나부처님입니다.
중화3년 계묘년 여름 부처님을 금칠하여 이루었습니다.

비로자나부처님은 지권인을 하고 있는 우견편단의 좌상으로 대한민국 국보인 석굴암 본존불, 불국사 비로자나불과 같은 크기, 비례를 가진 8~9세기 신라의 전형적인 양식으로 그 모습이 근엄하고 아름답다.
따라서 당시 같은 양식의 불상이 석재, 금속재, 목재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통일신라 목조 불상의 출현으로 현재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백제 목조 관음상을 만들었던 우리 민족의 예술적 기량은, 9세기에도 아름다운 목조불상을 제작하였다는 사실이 새롭게 확인됨으로서 한국 목조불상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되었다.


진성여왕과 각간 위홍의 관계는 여러 문헌에서의 기록도 있다. 진성여왕은 경문왕의 딸로 이름이 만曼이다. 아버지 경문왕은 860년 9월에 헌안왕의 장녀와 결혼하여 왕자 정(晸, 헌강왕)과 황(晃, 정강왕), 그리고 공주 만(曼, 진성왕)을 낳았다. 신라 49대 헌강왕의 여동생인 진성여왕은 평생 결혼하지 못하는 신분으로 삼촌인 위홍과 사랑한 사이였다고 삼국사기는 기록하고 있다. 진성여왕 2년에 위홍魏弘이 죽자 북궁해인수北宮海印數에 원당願堂을 지어서 혼백을 살리고 비로자나 쌍둥이 불상을 조성하여 절에 시주하게 된다. 해인사를 위홍의 원당으로 삼았기에 여왕은 왕위를 버리고 오직 위홍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절에 몸을 의탁하고 마침내 이곳에서 죽었으니 죽어서도 함께 하고자 한 마음일 것이다.

왕위를 물리고 나서는 이 북궁에 들어와서 위홍을 그리며 살다가 죽어서는 황산에 묻혔다. 해인사 큰 법당 서까래에서 나온 해인사 중창기에 보면 북궁이 바로 해인사요, 원당願堂은 지금의 해인사 암자인 원당암願堂庵이며, 황산은 원당암에서 바라보이는 동구 밖이다. 죽어서까지 사랑을 연장시켜서 애절함을 더하게 하는 진성여왕과 위홍의 사랑은 진성여왕의 사랑하는 님에 대한 애틋함과 간절함이 오늘날까지 쌍둥이 부처님으로 다시 오롯이 나란하게 어깨를 견주고 후세 사람들의 따뜻한 눈길을 받게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