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이번 선거는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기에 한 가지만 사족처럼 덧붙인다면, 선거제도 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현 총무원장 선거제도는 중앙종회의원 81명과 24개 교구본사에서 10명씩 선출한 교구선거인단 240명을 합쳐 321명이 총무원장을 뽑는 대의제다. 현 선거제도는 94년 종단개혁의 산물이다. 그 전에는 중앙종회에서 총무원장을 뽑았다. 그런데 중앙종회는 총무원장이 임명한 총무원의 부장과 본사주지가 종회의원을 겸직할 수 있었다. 당시 총무원장에게 권력이 집중된 형태였다. 종회를 장악한 총무원장의 장기 집권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다보니 당시 의현 총무원장은 3임을 강행했다. 의현스님은 종회에서 총무원장으로 뽑혔다. 그러나 종도들의 마음은 이미 의현 총무원장에게서 떠나 있었으며, 의현스님을 축출하는 것으로 상징되는 개혁은 많은 종도들의 지지를 얻었던 것이다.
선거로 뽑힌 대표는 다수의 주성원들의 지지를 획득할 때 비로소 법적․정서적 대표로서의 지위를 부여받는다. 94년 3선에 성공한 의현스님은 법적 정당성은 확보하였지만, 종도들의 마음을 얻는데 실패하여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의현스님의 예가 아니더라도, 선거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대중의 의사가 선거 결과에 왜곡됨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 비춰본다면, 지금의 선거제도는 상당히 큰 문제를 지니고 있다. 먼저, 구성원 중 일부만이 선거에 참여한다. 81명의 종회의원 중 51명은 24개 교구에서 2명씩(조계사는 4명, 해인사는 3명), 선원․강원 등 직능대표 20명, 비구니 10명 등이다. 교구에서 뽑히는 종회의원은 입후보하여, 법랍 5년 이상의 비구들에 의해 선택을 받는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대표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각 교구에 10명씩 배당된 선거인단은 입후보 등의 선거 절차 없이 뽑힌다. 교구선거인단을 뽑는 교구종회 당일 구성된 전형위원회가 10명의 선거인단을 발표하고, 이를 박수로 승인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대부분의 교구가 이런 방식으로 선거인단을 뽑는다. 그러다보니 본사주지와 교구의 유력자들에 의해 결정된다. 본사주지와 교구의 유력자들이 투표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더라도 종도들의 뜻을 충분히 헤아린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왜곡할 소지도 많다. 특히 조계종 승려의 절반을 차지하는 비구니스님들은 철저히 소외된다.
\'나\'의 총무원장을 뽑는 선거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는 제도여야 한다. 그렇다고 반드시 일정 자격, 즉 법랍 5년 또는 10년 이상의 비구․비구니에게 투표권이 주어지는 직접선거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직접선거이든 간접선거이든 구성원이 소외되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간접선거는 적은 비용으로 과열되지 않은 가운데 선거를 치른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구성원의 뜻이 굴절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직접선거는 구성원의 의사가 반영된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비용이 많이 들고 과열될 경우 전체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런 장단점 비교는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두 선거제도의 장단점은 증명되고 있다.
이웃종교의 예 중 천주교의 교황 선출인 방법인 콩클라베(Konklave)는 익히 알려져 있다. 매우 이상적인 제도로 평가받고 있으나, 이 제도 하에서도 뇌물로 교황에 선출된 사례가 발생하는 하는 등 큰 후유증을 앓기도 했다. 각 교구의 추기경 이상이 모여 교황을 뽑는 것인데, 우리의 경우로 끌어들인다면, 원로의원들이 일정 자격을 갖춘 여러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논의를 거쳐 만장일치로 1명을 뽑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원로의원들에 대한 종도들의 신뢰가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될 것이다.
진각종의 경우는 통리원장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으면 모두 후보자가 된다. 선거권은 종의회의원들이 갖는데, 이들이 후보자의 이름이 적힌 투표용지에 선호하는 후보자에 표시를 하는 방법이다. 과반수 이상의 득표자가 통리원장에 당선된다. 별도의 후보자가 없다보니 선거운동이 과열되지 않는다. 천태종의 총무원장은 종정이 지명하고, 중앙종회가 동의를 표시하는 방법으로 진행한다. 종정의 권위를 존중하는 가풍이 유지되고 있기에 가능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각 조직은 고유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애초에 좋은 제도라는 것은 없고, 나쁜 제도도 없지만, 현실적으로 나쁜 제도는 있다. 입법 미비가 많은 제도도 나쁜 제도이겠지만, 제도를 악용하려는 의도가 관철되는 조직의 제도가 바로 나쁜 제도이다. 그러나 좋은 제도가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조직의 문화와 전통과 정서에 부합해야 한다. 또 제도의 취지를 지키려는 의지가 없다면 제도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제도는 완벽할 수 없다. 선거에 임해서는 경쟁의 당사자들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강박증을 떨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선거 제도의 허점을 찾아 이를 악용하려는 유혹을 떨치지 못한다. 이러한 때 후보자 측이 비승가적인 방법으로 치닫지 않도록 감시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또 선거관리위원회가 관련법에 따라 적절히 선거를 진행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따라서 선거제도와 함께 제도를 지키기 위한 장치가 동시에 마련되어야 한다. 불교단체들이 그런 활동을 하고 있다니 다행스럽다. 그러는 중에도 은밀히 진행될 수도 있는 탈법 사례를 단체들이 제지하기에는 역부족인데, 이런 것이 한 집단의 수준을 드러내는 바로미터가 된다.
이번 선거에 출마를 예정하고 있는 예비후보들이 선거법 개정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방법은 약간의 차이가 잇다. 어느 후보는 추대제를, 어느 후보는 다수가 참여하는 직선제를 주장하고 있다. 아직 답은 없다. 다만, 구성원의 의사 반영이 충분하지 않고, 금권선거 여지가 많다는 점에서는 동의하고 있다. 선거법 개정의 방향은 구성원의 의사 반영이 왜곡되지 않아야 하며, 불법을 방지하고 불법에 의한 결과를 징치하는 제도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가 끝나면 바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질질 시간을 끌면 또 기회를 놓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