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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도胡桃의 개념과 불교의 보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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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샘 - 김계유 2009년 10월 332호
무식하다, 미개하다 야만적이다는 뜻의 오랑캐라는 개념에는 중화족 중심의 역사관이 반영되어 있다. 동쪽의 이족夷族, 서쪽의 호족胡族 남쪽의 만족蠻族 북쪽의 융족戎族 등이 그 예다.
따라서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문화, 정치 사회 등의 모든 유물들에는 이와 같은 자국 중심의 역사관이 어떤 형식으로든 반영되어 있기 마련이다.
중국이 원산으로 알고 있는 호두나무 역시 예외가 아니다.
호두는 원래 우리나라에 전래되었을 때의 이름이 胡桃였다. 원산지를 중국으로 알고 있는 것과 달리 호두의 원산지는 페르시아였기 때문이다.
그것을 전한시대의 장건張騫이 처음 중국으로 가져오면서 그 과일의 생긴 모양이 마치 복숭아씨를 닮아 오랑캐 나라에서 들여온 복숭아라는 뜻의 胡桃라는 명칭이 생겨났을 것으로 여긴다.
호도는 처음 우리나라에서도 호도로 불리다가 발음을 쉽게 하기 위하여 호두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 발음상의 이유 외에도 호두의 속 모양이 흡사 사람의 두뇌를 닮아 뒷날 명칭을 바꿔 불렀다고 보기도 한다.
호두는 가래나무과에 속하는 과실이다.
열매가 9~10월 쯤에 익는데 수확하는데 여간 어려움이 없지 않다.
사람이 나무에 올라가서 긴 대나무 가지 등을 활용하여 이를 떨어뜨리고 난 뒤 그것을 다시 포대에 주워담아 껍질이 문드러지게 하는 방법으로 속의 알맹이를 얻는다.
그런데 이 호도를 절에서는 여름 결제가 지나고 겨울 결제가 시작되기 전 대중들의 운력으로 그것을 수확한다. 거두는 방식은 먼저 나무 밑의 잡초를 말끔하게 베어 내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나서 나무를 잘 타는 사람이 한 두명씩 위로 올라가 열매를 아래로 떨어뜨리는 역할을 맡는다. 대체로 산사의 호두나무는 평지가 아닌 산의 비탈이나 낭떨어지 같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서 열매를 따는 과정에 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 그러나 대중들과 어울려 호두 열매를 수확하다 보면 번거롭기 보다는 오히려 운력하는 재미가 더 많다.
출가 수행에 필요한 여러 관심사 및 개인적인 이야기거리들도 심심찮게 주고 받게 되면서 운력을 하는 시간은 매우 유익한 수행의 공간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의 추세를 돌이켜보면 대체로 일은 지겹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일의 재미를 일에 따른 소득의 여부에만 관심을 집중하기 때문이다. 일을 해서 돈을 만들어야 한다는 당위성은 인정하지만 돈이 목적이 된다면 누구나 거기에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일의 진행과정은 지겹고 힘들게만 느껴질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것은 아마 현대사회의 한탕주의로 통하는 세계관 때문이 아니겠나 싶다. 아쉬운 부분이다.
백장은 말했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밥을 먹지 말라.(一日不作 一日不食)
그 의미는 무엇일까? 자기 밥은 자기가 생산해서 먹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었을까? 아니면 사람은 누구나 생산적인 활동을 통해서 세상과 소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었을까?
백장의 신분이 많은 대중과 함께 수행하는 선지식이었다는 점을 참작하면 거기에는 수행자의 본분 이외에도 나름대로 삶의 이치를 염두에 둔 경구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호두 열매를 수확하는 경험에 비추어보면 결론은 단순해진다.
삶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 중시되어야 하며, 정신의 풍요로움은 동시에 육체적 행위를 통해서 추구되어져야 한다는 삶의 안목과 조화의 문제다.
내가 지금 매달려 있는 이 순간의 일에서 삶의 재미를 찾지 못하고 내일의 소득만을 염두에 둔다면 지금의 나는 소외되는 존재론적인 형태의 폐단을 우리는 정말로 벗어나기 어렵다. 또 사람이 생각만 많고 몸이 너무 편하면 몸은 병들거나 급속하게 쇠약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거기에서 우리는 어떻게 건강한 정신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거창하게 삶의 형이상학적인 문제를 거론할 것도 없다. 사람의 몸은 움직이면서 살아가야만 하고 그 움직임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하는 자각은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직 그것 뿐이다. 세상의 이치는 더도 덜도 아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상적인 삶의 방식으로 보살도를 강조한다. 자기의 이익이 아닌 남을 위한 배려를 통해 자기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삶의 관점이다. 흉년 든 세상에는 쌀이 되어 구제하고, 질병이 도는 세상에는 약풀되어 치료하겠다는 이산 혜연선사의 발원문이나 지장보살의 원력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다. 덕천 향교의 골짜기를 밭으로 일궈 사람들에게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역사 속의 이름없는 어떤 수행자에게서도 우리는 그 예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추재기이에서 소개하고 있는 그 승려의 신분은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하루는 그 수행자가 덕천 향교를 찾아와 근처의 빈 골짜기를 활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였다. 승려가 달라고 하는 골짜기는 쓸모없는 나무와 돌멩이로 가득 차 있어 밭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버려져 있던 곳이었다. 그런 황무지를 그 승려는 밭으로 개간하여 활용하면서 삼 년 동안 경작한 뒤 관습에 맞게 세를 내겠다는 조건이었다.
향교에서는 마다하지 않았다.
향교측의 허락을 받아낸 그 승려는 다음날 아침 두어 말의 떡을 싸고 도끼 한 자루를 들고 와서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 즉시 개간을 시작했다.
손으로는 나무를 뽑거나 베고, 발로는 돌을 차 아래로 굴렸다. 해가 중천에 오기도 전에 무성한 수풀과 돌 비탈이 벌써 평평하게 되었다.
또 다음날은 한 손으로 두 개의 보습을 미는데 언덕에서부터 봉우리까지 상하종횡으로 움직여 수십 수백 묘를 일구었다. 거기에 곡식 여러 섬을 씨 뿌린 다음 초가집을 짓고 살았다.
가을에 곡식 천 오륙백 곡을 거두었는데 올해에 그처럼 하고 그 다음에도 또 그 다음 해에도 그렇게 하여, 쌓아둔 곡식이 삼천여 곡에 달했다. 그리고 나서 하루는 향교 측에 이렇게 말했다.
“불자가 밭갈면서 공부할 수는 없습니다. 소승은 이만 돌아갈까 합니다. 일궈놓은 밭은 향교에 바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그 수행자는 근처 고을에 사는 백성 삼천여 호를 불러 가가호호 한 섬씩 나누어주고, 표연히 그곳을 떠나가 버렸다. 마음이 따스해지는 이 한편의 미담! 누구를 위한 개간이었을까? 필경 보살행을 염두에 두었으리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기록에서 누가 말하지 않아도 세상을 살아가는 보살행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오랑캐라는 개념에 담겨 있는 자기 중심의 세계관하고는 달라도 너무나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내가 나를 비우면 나도 세상도 더불어 마음이 따스하지만 내가 나를 비우지 못하면 그것은 갈등과 반목으로 인한 고통 뿐이다. 아! 그것이 부처님 무아사상의 본질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