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시 일본에 가 계시다고 했다. 주말에나 돌아오시니 그 후에나 뵐 수 있다고 했다. 며칠 후 스님을 뵙기로 하고 은해사에 찾아간 오후, 절 마당에 들어서서 대웅전으로 가려는데 발 내딛기가 미안했다. 아침나절도 아닌데 금세 마친 듯한 비질 자국이 선명하여. 살며시 대웅전 법당으로 들어서려는데 잔잔히 흐르는 클래식 음악 소리가 귀에 흘러들었다. 흔히 절에서 들을 수 있는 독경 소리가 아니었다. 어울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클래식 음악이 근엄함보다 편안함을 주니 마음의 결이 한결 부드러워지는 듯했다. 부처님을 뵙고 나와 절 마당에 서 있자니 돈관 스님의 시자가 서툰 우리말로 나를 스님이 계신 곳으로 안내했다. 스리랑카에서 왔단다. 시원한 연차와 화과를 내어주시며 돈관 스님은 말씀하셨다.
“종교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해야 해요. ‘현실 불교’가 되어야 해요. 생활, 대중, 사회 불교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글로벌 시대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법당에 앉고 일본에 잠시 출타하셨다가 스리랑카 시자의 시중을 받고 계시는 스님의 모습이야 말로 ‘현실 불교’다. 전통만 고수하다가 허물어지는 절집에 누가 찾아온단 말인가. 그러니 지난해에 젊은 돈관 스님이 은해사 주지로 앉자, 사람들은 은해사에 새마을운동이 일어났다고들 말했다. 전국에서 최연소 주지로 취임한 스님이 일으킨 변화의 물결은 점점 더 커져 거대한 혁신의 파도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주지 취임식부터가 달랐다. 취임식 자체가 아예 없었다. 1억 원은 든다는 취임식인지라, 주변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고사했다. 대신에 그 돈을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취임식은 하루 기분 좋게 하고 끝나는 거잖아요. 그런데, 장학금을 전달한 게 벌써 작년 일인데 아직도 고맙다는 말을 듣습니다. 기쁨이 오래 가지요.”
지난 4월엔 조계종 본사로는 이례적으로 사찰 주차장 요금제를 폐지했다. 은해사에 찾아오는 이들의 발걸음에 무게를 싣고 싶지 않았다. 그럼으로써 은해사는 연간 3~4억의 주차료를 받을 수 없게 되었지만 스님은 이것이 점차 번져나가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지난달엔 말사인 수도사의 문화제 관람료도 폐지했다. 절 문턱을 없애고 담장을 없앤 일과 같다. 그러니 누구든 절에 쉬이 발을 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가장 현실적 포교가 아니겠나. 친척 집이나 친구 집에 돈 내고 가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스님은 사회 환원 운동에도 열심이다. 영천 지역의 다문화가정이 템플스테이를 하도록 하고, 마을 사람들을 위해 영화도 상영하고 노인들을 위해 음식을 마련하는 행사도 여러 차례 꾸렸다.
“얼마 전엔 영화 ‘워낭소리’를 상영했어요. 마을 사람들이 전부 모여서 영화를 보고 잔치를 했습니다.”
현실 불교를 이루기 위해 스님은 거창한 것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다. 행정적인 부분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부터 바라보고 있었다. 힘들고 어려운 이웃들이 사찰에서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쉴 수 있도록 하는 스님의 마음 씀씀이가 따사로웠다. 스님은, 은해사는 다른 절과 달리 인정이 넘치는 곳이란다. 그러고 보니 절에서 살림을 사는 이들이 주지스님과 여간 가까운 것이 아니다.
“내가 아침마다 산에 가는데 우리 식구들이 다들 따라 나와요. 산에 오르내리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되니 좋대요.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은해사와 함께하는 가족’들과 종무 법회를 합니다. 한 시간은 모두가 소임자로서 하고 싶은 얘기들을 하고, 한 시간은 내가 강의를 하지요. 다른 사찰의 스님들께도 종무 법회를 권하고 있어요. 절 분위기가 정말 좋아지거든요.”
스님은 은해사 사람들을 ‘가족’이라고 했다. 그렇게 칭하니 가족적인 분위기가 아닐 수 없겠다 싶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가 부처님 앞의 가족이 아닌가.
“기독교는 하나님께 감사하지만, 불교는 가족에게 감사한 종교입니다.”
스님은 은해사의 컨셉트는 ‘깨끗, 친절, 포교’란다. 비질 자국이 선명한 절 마당이 왜 그런지 알겠다 싶었다. 아침부터 스님이 비를 들고 나서니 모두가 비를 들고 나선단다. 또한 절에 찾아오는 이들에게 주지스님을 비롯한 30여명의 스님이 직접 사찰의 해설자로 나선단다. 그렇게 친절하니 찾는 이들도 훨씬 많아졌단다. 어느 사찰이건 주지 스님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데 은해사는 되레 주지 스님이 앞서 나와 맞으니 절을 찾은 이들에게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얼마 전엔 여덟 분의 큰스님을 모셔 초청 법문을 했는데 매주 2천 명이 왔다며 스님은 절집이 그렇게 북적여야 할 것이란다.
“불교라는 말로만 남을 것이 아니라, 불교를 이해해야 실천할 수 있고 그래야 깨달음이 오지 않겠습니까.”
스님은 교육을 중요시한다. 그중에서도 어린이 교육, 포교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엄격하기보다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며, 스님은 마술이나 물놀이 같은 놀이 시간을 더 많이 마련한단다.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데, 절에 와서 뛰어노니 얼마나 좋으냐고 하신다. 그리고 은해사 불교대학을 개설했는데 백명 모집에 정원보다 두세 배나 되는 사람들이 와서 곤란했다며 허허 웃으신다. 이것이 다 스님부터 마음의 문턱을 없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불교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해요. 현재 우리나라의 불교는 맹목적인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불교방송에서 신행상담을 하면서 더 많이 느꼈지요. 축원이나 방생 같은 것을 보세요. 그것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문화예요. 그렇게 하다가는, 말사는 결국엔 아무도 오지 않고 스님 혼자서 집지키는 형태로 밖에 안 남습니다.”
현재 은해사에선, 근처 대학이나 회사에서 시무식을 하러 많이들 찾아온다. 절에서 하는 시무식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인데, 하나 둘 찾아와서 기쁜 마음으로 돌아가니 소문이 나서 더 많이들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근처에 군부대가 많아서 그쪽으로 포교를 넓히고 있단다. 스님이 뜻을 둔 교육과 포교가 자연스레 물꼬를 트고 유유히 흘러가는 모습이다. 그야말로 ‘현실 불교’다.
스님들도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단다. 옛 어른 스님들은 학교에 가지 말라고 하셨지만 ‘현실 불교’를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배워야 불교 방송국에도 있고 재무도 보고 포교도 하지 않겠나 하는 말씀이다. 돈관 스님이야말로 ‘현실 불교’를 위해 대구불교방송 총괄 국장, 은해사 기획 국장, 환성사 주지, 제 14대 중앙총회 의원 등을 역임했다. 그리고 현재는 경북불교대학 학장으로 있다.
누군가 문 밖에서 스님을 뵙고자 기다리는 듯했다. 마침 계를 받는 날이라서, 사미계를 받은 스님들이 돈관 스님께 인사를 드리러 찾아온 길이었다. 잠시 물러나 있자니 방문을 건너 스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님은 한명 한명에게 다음 행로를 물으시더니 한마디씩 건네셨다. 행자 생활을 은해사에서 하면서 한명도 벗어나지 않고 모두 잘 마쳐서 뿌듯하다며 웃으셨다.
스님들이 물러가고 나자 스님은 종무소에 가보자며 일어나셨다. 절 마당을 걷는데 스님은 코스모스가 줄지어 피어선 길을 따르며, 얼마나 예쁘냐고 꽃을 어루만졌다. 마치 좀 전에 계를 받은 스님들의 마음을 하나 하나 보살피듯이, 다문화 가정의 식구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듯이, 저소득 가정의 아픔에 고개 끄덕이듯이.
종무소에 들어서니 ‘은해사와 함께하는 가족’들이 왁자하다. 주지 스님이 들어서도 스스럼없이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눈다. 벽에 붙어 있는 조직도를 보니, 정말 ‘은해사와 함께하는 가족’이라 글자 아래 사진과 이름이 하나하나 붙어 있다.
그런데 종무소가 보통 사찰과는 다르다. 마치 은행이나 우체국에 온 것처럼 창구화 되어 있다. 사찰에선 유일하단다. 여러 사찰에서 은해사의 종무소를 보기 위해 다녀가기도 했단다. 은해사는 여느 사찰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는 점이 많다. 스님의 살림 사는 모습이 그렇다.
남해가 고향인 스님은 어려서 금산 보리암과 용문사에 머물기도 했단다. 열살 생일 때는 절에서 생일 불공을 드려야 한다고 어머니보다 먼저 나섰단다. 그러다가 스님은 새벽 범종소리를 듣고 발심했단다. 스님은 전생에도 스님이었는데 아무래도 일본의 스님이었던 것 같단다. 어려서 일본에 한 번도 안 가봤는데도 전생에 머물던 일본의 절도 눈앞에 그려지고 일본 염불도 하고 그랬단다.
지금은 한국의 은해사에서 은사 스님인 일타 스님이 머물던 방에 머물고 있다며, 스님은 따끈해진 마음으로 은사 스님을 추억했다.
“내가 옻이 올랐을 때였는데, 어느 날 밤에 눈을 떠보니 스님이 제 몸을 긁어주고 계셨어요. 은사 스님이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하셨지요.”
은해사는 1200년 전, 기축년에 지어졌다. 그런데 올해가 기축년이고 10월 11일이 마침 기축일이다. 그래서 개산대재를 연다. 대덕 큰 스님을 모시고 대법회도 열고 개산 법요식도 하고 보살계 수계식도 하고 산사음악회도 연단다. 돈관 스님은 일부러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가수들을 불렀단다. 음악회도 대웅전 앞 절 마당에서 할 거란다. 그렇게 은해사 생일잔치를 한바탕 벌여보겠단다. 이미 마음이 즐거워진 스님이 말씀하셨다.
“부처님도 즐거우셔야 하지 않겠어요?
부처님도 스님도 비질 자국 선명한 절 마당을 지나가는 미물들조차도 즐거운 절, 은해사에도 저녁이 오는지 선뜻 찬바람이 불어왔다. 가을이다. 찬바람 속에 있다가 따끈한 아랫목에 들면 마음도 스르르 풀려 행복한 계절이다. 함께 모여 음식 앞에 놓고 노닥이고 노래하기 좋은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