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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묵은 여행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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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이야기 - 김윤선(만월심) 2009년 10월 332호
3년 전 여름 나는 24일간 유럽여행을 떠났다. 혼자 떠난다는 공포감에 넉 달 동안 고민했다. 나는 겁이 많았다. 귀가 시 항상 가족을 괴롭혔다. 집이 인적이 드문 외곽이기도 했지만 저녁 8시만 넘으면 버스정류장으로 식구들을 마중 나오게 했다. 이런 내가 혼자 여행을 간다고 했으니 가족들은 경악과 동시에 반대했다. 그런데 김치를 담그던 어느 날, 엄마는 말씀하셨다. ‘내가 널 어떻게 말리겠니? 가!’ 후에 알았지만 엄마는 24일 동안 내 걱정으로 이 말을 내내 후회하셨다고 한다.
7월 5일, 여행 첫 날은 걱정과 공포에 시달렸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임종을 못 보면 어떡하지?’, ‘살아 돌아 올 수 있을까?’ 등. 그 당시는 진지한 고민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할머니는 아흔이 가까운 나이셨지만 지팡이 없이 걸어다닐 정도로 건강하셨고, 나는 스스로 선택한 여행인데 죽으러 가는 사람처럼 마음가짐이 비장했기 때문이다. 여행사에 비행기 티켓을 사기당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공항에 갔지만 직원은 약속된 시간에 나타났다. 이미 여행은 시작되었고, 게이트를 들어가며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 울었다. 부모님은 그것을 헤어짐의 눈물로 알고 같이 우셨다. 비행기 타기 직전까지도 홍콩 숙소를 함께 예약했던 여행자와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꼭 살아 돌아오리라’며. 이 날 하루 모노드라마 한 편을 찍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비행기에서 만난 두 명의 여행자가 내 마음 속을 짓누르던 긴장감을 풀어주었고, 나는 이륙도 전에 웃고 있었다. 간혹 사람들이랑 웃다가도 방금 전 울던 내 모습을 생각하면 머쓱했다. 진실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가져다주는 힘이란 참으로 크다. 어디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상황은 변화할 수 있다. 나는 첫 여행지 암스테르담에서 여행자 두 명과 함께하며 두려움을 누그러뜨렸고, 하루 동안 여러 차례 기차와 버스를 잘못타서 길을 헤맸다. 그러나 이 날의 실수는 혼자 여행하는데 큰 도움을 주어서 다음 날부터는 기차와 버스를 잘 탔다. 또, 낯선 곳에 가더라도 당황하지 않던 이들의 씩씩함에 자극을 받았다. 내가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것은 도움을 주는 많은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나는 여행에 앞서 두 가지 다짐을 했다. 우선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도 도와줄 수 없으니 열심히 말을 걸기로 했고, 저녁 7시 전에는 숙소로 가기로 했다. 숙소를 찾을 때도 여행지를 갈 때도 외국인들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었다. 대부분 친절하게 안내를 해줬다. 유럽에서 만난 이들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또 유럽의 상점들은 4시가 지나면 문을 닫고, 거리는 저녁 8시가 넘으면 한산했다. 밤늦게 돌아다니는 식의 위험한 상황을 만들지 않으면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다. 여행 직전까지 월드컵을 보느라고 새벽까지 잠을 안 잤는데, 10시에 자서 6시에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반복했다. 숙소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여러 사람들을 만났고, 그 중에서 스위스 베른에서 만난 일본인 에이코는 내 여행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에이코는 내가 나폴리에 가고 싶다고 하자, 여행서적들이 지나치게 과장했다며 용기 있게 나아가라고 조언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자 혼자 가기에는 나폴리가 위험하다고 했지만 그녀는 달랐다. 중요한 것은 나의 신념, 나의 계획, 나의 즐거움이라며, 이것에 맞게 나아가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용감하다며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
에이코와 나눴던 많은 대화의 영향일까, 다음 날 나는 프리부르를 가려다가 계획에 없던 몽트뢰를 갔다. 그곳은 재즈 페스티벌로 음악이 넘쳐흘렀고, 거리에서 사람들은 춤을 췄다. 갑작스럽게 갔던 몽트뢰의 기억이 강렬해서 그 후로 여행지에서 마음에 드는 장소가 있으면 버스에서 그냥 내렸다. 로마에서도 런던에서도 지하철 표시만 찾으면 숙소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낯선 지역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여행의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신문이나 책자를 보다가 혹은 거리를 걷다가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갔다. 이를 테면 지하철에서 베르캄프 은퇴식 기념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을 보고 다음 날 아스날경기장에 가는 식이었다. 그래서 여행자들이 ‘내일은 뭐할거야?’라고 물으면 ‘나도 몰라. 내일이 되어야 알아!’라고 답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brave!’를 외쳤다. 숙소 예약도 하루 전 날 하거나 당일 날 했다. 이탈리아와 스위스 여행이 길어져 여행자 천국인 파리에서는 반나절만 체류했다. 파리도 안가려 했지만 런던으로 가는 유로스타를 타기 위해 갔다. 그것도 음식을 해먹는다고 몇 시간을 소비해서 3시간 정도 돌아다닌 게 전부였다. 중국인 여행자는 숙소에서 ‘어떻게 파리를 반나절만 머무냐?’며 한 번 놀랬고, 마트에서 ‘쌀은 영국가서도 살 수 있다’며 두 번 놀랬다. 동해보다 오지랖이 넓었던 그녀를 보며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나중에 다시 오면 된다는 생각에 아쉽지 않았다.
나는 대담해졌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다음에는 아프리카에 가야겠다고 계획했다. 그래서 집에 돌아가자마자 부모님께 한 말이 ‘이젠 아프리카에서도 잘 지낼 수 있어!’였다. 나는 여행에서 돌아와 가족들에게 마중 나오라고 하지 않았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 얼마나 사람을 피로하게 하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그동안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살았음을 알았는데, 이는 삶에서 정해진 기준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공부할 때, 취업할 때, 결혼할 때 등. 그러나 여행에도 ‘어디를 꼭 가야한다’하는 것은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였다. 나의 기준, 나의 즐거움에 따라 움직이면 되는 것이었다. 단,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말이다.
끝으로 혼자 가는 여행이 혼자가 아닌 이유는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낯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곳에서는 내가 조금만 다가가면 친구를 만날 수 있다. 시작은 혼자지만 늘 누군가와 함께인 것이다. 지금 여행을 망설이는 이가 있다면 용기를 내어 ‘그곳’으로 떠나라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