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이면 출가의 길을 떠나는 막내아들에게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었을까?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분위기가 거실 전체를 감싸고 있을 때 어머니께서는 먹고 싶은 게 없냐고 물으셨고, 나는 그때 ‘미역국’이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아침 일찍 미역국 한 그릇을 먹고 새로 태어나는 기분으로 첫발을 내디딘 출가였다.
생각처럼 쉽지 않은 길이 바로 출가다. 20대 초반부터 출가에 대한 마음을 품어왔지만 숱한 망설임과 갈등으로 주춤거리고 있을 뿐, 막상 그 첫발을 내딛는 일이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그런 오랜 방황에 종지부를 찍고자 작년 이맘때쯤 여행을 떠났었다. 이번에야말로 여행 도중에 인연이 닿는 곳에 세속 모든 짐을 풀어놓고자 비장한 각오로 나선 길이었다. 강원도 오대산에서 저 멀리 땅끝 해남까지 이어지는 여행길에서 유독 지리산의 한 사찰에서 꽤 오랫동안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었는데 그것이 시절인연이 되어 그 자리에 하나의 단락을 짓는 마침표를 찍게 됐다.
늦가을에서 겨울을 지나 초여름까지 큰스님을 시봉하며 행자생활을 해나갔었다. 겨울의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도량석을 돌고 범종을 친 일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에는 어느덧 아련한 추억으로 남는다. 그러던 중 6월부터는 해인사 본사교육에 참여해 새로운 행자생활을 맞이하게 됐다. 해인사 대방 규칙에 따라 그전의 입산일과 무관하게 다른 말사 행자 한 분과 더불어 막내행자로 생활을 시작했다.
자원봉사자로, 혹은 직원으로 지내며 유독 깊은 인연을 맺어 왔던 해인사에서 행자생활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해인사 행자생활은 익히 들어보고 지켜본 바와 같이 정말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거기에다 일이 많은 하안거 기간에 합류해 스님들의 발우공양 준비를 하느라 더 정신이 없었던 날들이었다. 그래도 그 모든 엄격함이 스님을 공양하는 정성에 다름 아니었다. 그처럼 누군가에게 정성을 기울이는 삶이 결코 쉽지 않음을 몸소 크게 느끼게 해 준 소중한 배움의 시간이었다.
국방부 시계만 가는 것이 아니라, 행자실의 시계도 차곡차곡 쌓여 어느덧 집체교육을 마치고, 그간의 피로와 긴장을 풀며 행자교육을 준비하는 날들이 찾아왔다. 마애부처님께 올릴 마지를 준비해 산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오늘의 추억을 또렷이 기억하고자 도반들끼리 모여 기념촬영도 하면서 우리들만의 특별한 휴가를 보냈다.
학수고대했던 37기 행자교육은 신종플루 확산에 대한 우려 때문에 기존에 실시했었던 직지사에서 충남 공주 태화산에 있는 전통불교문화회관으로 자리를 옮겨 시험적으로 개원됐다. 기간도 2주로 단축된 상태여서 하루 빨리 수계를 받길 원하는 행자들에게는 가뭄에 단비마냥 엄청난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거기에다 화장실과 샤워실이 구비된 숙소생활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환경을 제공했다.
교육기간이 단축되면서 교과목도 많이 축소됐지만 습의과정은 오히려 강화돼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는 생활이었다. 그것은 행자생활 내내 강조되었던 시선하향, 발끝모음, 차수철저, 묵언철저의 연장선상이었다. 특히 몇몇 행자들이 꽤 힘들어 했던 무릎을 꿇는 인욕정진의 시간에는 보경당에 모여 행자들끼리 예불을 올리며 30분 이상씩 앉았던 경험이 유용하게 작용했다.
새벽 3시, 도량석 소리에 억지스레 눈을 뜨면서 시작되는 하루는 밤 9시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거침없이 내달렸다. 오후 불식에 아침과 사시공양은 발우공양으로 진행되었는데, 손에 익지 않은 발우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에 무거운 침묵이 때때로 깨졌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안정된 분위기에서 발우공양이 몸에 익어질 무렵, 어느덧 행자교육도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수계식 삼일 전에는 삼보일배를, 전날 밤에는 3000배 철야정진이 있었다. 출가해 행자교육원에서 생애 첫 3000배를 하리라고 미루고 아껴 두었던 3000배를 비로소 하게 된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일 배 일 배에 오늘 이 자리에 이르도록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았던 모든 인연을 떠올리며 그들의 행복한 삶을 기원하고, 그들과의 건강한 만남을 바라는 서원이 석가모니불 정근 소리와 함께 마지막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각양각색의 출가 사연이 모여든 자리는 어느새 한데 어우러져 도반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굵은 매듭을 짓게 되었다. 행자교육원 생활은 그간에 미미하게 느끼고 있었던 도반애를 다져주는 좋은 기회였다. 해인사 행자실에 뿌리를 내린 각자의 마음이 행자교육 기간을 통해 꽃이 피고 향을 더하는 듯했다. 벌점을 받고 남들이 다 잠든 시간에 참회를 받을 적에도 도반이 옆에 있어 그리 힘든 줄 몰랐었다. 늦은 밤 숙소로 올라가며 손짓으로 인사를 건네는 따뜻한 표정에 하루의 피로가 스르륵 녹아내리는 그 순간의 기분을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삶에 힘을 불어넣어주는 비타민이 될 것이다.
수계식날, 가사장삼을 수한 모든 도반들의 모습이 의젓해 보였다. 풀어두었던 짐을 다시 정리에 바랑에 넣고,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를 날을 기약한 채 저마다의 길을 떠났다. 해인사 행자들도 다시 본사로 돌아와 방장스님, 주지스님 등 여러 어른 스님들께 인사를 드리며 수행자로서 지니고 살아야 할 덕목을 마지막으로 바랑에 더 챙겨 넣었다.
어수선한 생각의 실타래를 미처 다 풀지 못한 채 산문에 들어서서 수계를 받는 날까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제 또 다른 시작이다. 저마다 가슴에 품은 서원들이 더욱 견고해지고 그것이 시절인연을 만나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모두들 근념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