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지가 굳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철이 안 들어서일까. 지천명에 이른 지금도 나는 내 여생에 크고 작은 전환점이 이어질 것만 같다. 시간의 물살에 실려 가면서도, 낯선 도시를 여행할 때처럼 ‘저 모퉁이를 돌면 어떤 풍경이?’ 하는 호기심이 가시지 않는다.
모퉁이를 지나 만난 풍경 하나. 중학교 시절에 살던 집 부엌이다. 한쪽은 방, 한쪽은 마루와 연결된 문이 나 있는 북향의 우묵한 부엌. 어느 날, 무심코 부엌에 들어서던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집안 살림을 도맡던 두 언니가 은밀히 나누는 눈짓을 본 것이다. 부엌에서 볼일을 마치고 나오려는데 큰언니가 나를 불러 앉혔다.
“넌 고등학교 어디로 갈 거냐?”
난데없는 질문이었다. 아들들은 중학교 때부터 도회지로 보내지만, 딸들은 고향의 고등학교를 마치고 살림을 거들다 시집가는 것, 이게 우리 집의 질서였다. 공부를 잘한 큰언니의 담임이 집으로 찾아와 대학에 보내야 한다고 했을 때도, 여자들에게 꿈의 직장이던 은행에서 둘째언니를 채용하겠다고 했을 때도, 부모님은 승낙하지 않았다. ‘여자가 세상을 알면 팔자가 고달파진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지나치게 엄격한 집안 분위기에 초등학교 때부터 반항하다 멍이 들대로 든 나는 중학교 시절엔 이미 순치되었다. 다른 세상은 이따금 책 속에서나 만나는 거고, 나도 언니들처럼 그렇게 살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다. 그런데 왜? 나는 두 언니가 졸업했고 다른 한 언니가 다니고 있는, 읍내에 하나뿐인 여자고등학교의 이름을 댔다. 다시 언니들이 눈짓을 나누었다. 그럴 줄 알았어, 하는 눈빛이었다.
“넌 여기서 살 애가 못 돼. 그러니 대전의 고등학교에 갈 생각하고 준비해. 내가 아버지께 말씀드려 줄 테니.”
그렇게 해서, 나는 고등학교 진학과 동시에 집을 떠나왔다. 그때 그 모퉁이, 낯익은 풍경에 안주하려는 내 등을 떠밀어준 언니들이 없었다면 어찌 살고 있을까, 가끔 상상해본다. 지금보다 안락하게 그러나 어쩐지 나 자신에게 덜 정직한 삶을 이어가고 있을 것 같다.
풍경 둘. 마흔 살을 코앞에 둔 나는 출판사에 보내기로 한 첫 소설집 원고를 보면서 포옥, 한숨을 내쉬고 있다. 대체 이런 글을 쓰자고 그렇게 책상 앞에서 뭉개고 있었던가. 이야기는 칙칙하기 짝이 없었고, 단편 한 편을 빼고는 죄다 화자가 여성이었으며, 주제는 ‘가족’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곰곰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마지막 직장에 다니던 삼십대 초반의 나날에 먼저 혐의가 갔다. 그 시절, 내 집은 언제나 열려 있었다. 워낙 야근과 밤샘을 일삼던 직장이어서, 집에 누가 있든 없든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사채업자인 아버지와 충돌해 집을 나온 후배, 이혼을 염두에 두고 생각할 거리가 많아진 후배, 학생운동에 연루되어 일단 몸을 피해야 하는 친구의 조카 등등. 대개 한 달 정도 머물다 떠나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히 가족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된 이후엔 집이 일터였으므로 이전처럼 집에 머물게 할 수는 없었다. 그 대신 전화가 있었다. 이혼한 후배와 이혼한 친구, 주부로 살면서 남편이나 시댁과 갈등을 겪는 후배 등등. 전화선을 타고 오는 울음소리에 나까지 덩달아 젖는 기분이었다. 몇 시간씩 이어지는 통화에 송수화기를 귀에 댄 채 졸기도 했다. 남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툭툭 털어버리는 성품도 못 되니, 내 생각이 여성이 받는 핍박이나 가족 관계의 범주에서 맴돌 수밖에 없었다.
다음 창작집을 엮으며 또다시 한숨 쉬지 않으려면 내가 달라져야 했다.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인정에 끌려 다니고 말에 휘둘리며 지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동안 맺어온 관계를 무 토막 자르듯 쳐낼 수도 없었다. 마음만 산란하던 어느 날, 신문광고에 눈길이 멎었다. 개발이 덜 된 나라에 가서 일할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광고였다. 몇 년 전에도 똑같은 광고에 끌렸지만, 글 쓰는 게 우선이라고 마음을 접었었다. 그런데 전환점이 절실한 이때 다시 이 광고가 눈에 띄다니, 무슨 계시처럼 느껴졌다.
막상 떠날 생각을 하니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전세로 살던 집은 한 달 전에 2년 재계약을 했고, 연로한 아버지도 눈에 밟혔다. 소설집은 언제쯤 나오는지 기별도 없는데다, 잡지에 연재중인 장편의 연재 분량도 적잖이 남아 있었다. 다른 때 같으면 그 중의 하나에도 발목 잡힐 내가, 마음에 차가운 물이 고인 듯 지원 서류를 챙기고 있었다. 글쓰기보다 남을 돕는 일에 더 소질이 있다면, 그리로 건너가도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소설집은 최종합격자 발표가 나기 직전에 출간되었다. 때를 맞춘 듯, 장편을 연재하던 잡지사는 부도가 나서 무기한 휴간에 들어갔다. 다시금, 내 등을 떠미는 손길이 느껴졌다.
열대에서 보낸 2년이 내게 무엇이었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하긴 어렵다. 그러나 떠나기 전과 돌아온 뒤의 나를 비교할 때면, 나는 속으로 말하게 된다. 그때 떠나길 참 잘했어, 라고.
앞으로 내가 만날 크고 작은 전환점들. 그 중 가장 큰 전환점은 금생에서 입었던 육신을 벗는 바로 그때일 것이다. 감히 바라옵건대, 그 큰 모퉁이에서 내딛는 내 걸음이 의연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