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역경사업(譯經事業)
선사의 뛰어난 업적 중 하나가 역경과 저술이라고 하는 것은 앞에서 이미 말하였다. 선사의 역경사업은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이후 개인적인 사업으로는 가장 조직적이며 체계적인 사업이었다. 이러한 역경에 관한 문제는 중국에서도 약 700년 동안 계속되었다. 불과의 포교방법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으나 그 중에서도 제일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 역경이다. 그 나라에 정착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지 않고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는 불교가 전래된 지 1100여 년이 지나서야 한자문화권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이러한 움직임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직후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을 한글로 저술하였으며, 세조도 그 뜻을 받들어 역경사업을 게을리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그 뒤로는 간경도감마저도 몇십년만에 중단되고 말았으니 중국에서 불경의 번역작업이 약700여 년 지속되었던데 비하면 너무나 미약하였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용성선사는 1921년 개인적으로 사재를 털어 삼장역회(三藏譯會)를 설립하여 활발하게 역경사업을 재개하였다. 선사는 역경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누구나 알아보기 쉬운 우리글 우리말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확고히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역경과 저술은 여지껏 한자문화권에 익숙한 기성세대의 타성 때문에 많은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선사는 여기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꾸준히 계속하였다.
선사의 뒤를 계승하여 1964년 7월 21일 동국대학교에 역경원(譯經院)의 개원을 보게 되었으며 거종단적인 입장에서 해인사소장 「고려대장경」의 번역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많은 경전이 개인적으로냐 혹은 단위 사찰 중심으로 번역되고 있으며, 알기 쉬운 불교서적이나 수상집들이 쏟아져 나오며, 불교잡지와 신문들도 여러 종류 간행되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와같이 알기 쉬운 불서들의 출판은 대중불교운동에 커다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주고 있으며, 일반대중에게도 친근감을 주고 있다.
용성선사의 역경운동이 오늘날도 한국불교에 있어서 계승․유지․발전되고 있으며, 한문경전의 완전한 한글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공적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볼 때 선사는 한국불교 역경의 초조(初祖)라고 하더라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3) 포교의 현대화
용성선사는 대각교의 모체를 민중으로 보았다. 민중이 없이는 조국의 광복도, 불법의 전도도 할 수 없음을 절실히 느끼고 민중불교운동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러기 위하여 민중을 자각시켜야 하며 이들을 교화시키는 일이 무엇보다도 급선무임을 깨달은 선사는 역경과 선의 대중화 및 항일운동도 꾸준히 전개하였다. 특히 경제적인 생활의 보장까지도 역설하였으니 그의 뛰어난 안목은 실로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선사의 포교의 현대화 운동은 다양한 방법으로 전개되었다. 즉 불경의 한글화, 불교의식의 한글화 및 간소화, 의식의 음악화, 찬불가의 보급 등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1920년대에 시작한 이와 같은 운동은 오늘날도 계승되어 각 사원에서는 불교합창단이 조직되고 있으며, 이제는 전국적인 모임으로 확산되고 있다. 또한 과거에는 선(禪)을 산중의 출가자들의 전용물로만 여기던 것을 선사는 과감히 민중속에 끌어내리게 된다. 이것에 대하여 일부에서는 선(禪)의 속화(俗化)라고 하는 여론도 없지 않았으나, 또 한편으로는 속(俗)의 성화(聖化)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선사는 산 속에서만 고상하게 여겨지는 선회(禪會)를 민가의 신도집에서 처음으로 개최하였으며, 여기에서 참선(參禪)이란 말을 사용하게 되었으니 서울장안에서 이것이 효시가 되었다.
선사의 선의 대중화 운동은 오늘날에도 계승되어 대중선(大衆禪)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는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 외에도 일반대중을 위한 법회․교리․강좌 등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아직도 미비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중 한 가지가 의식의 한글화와 현대화의 실천이다. 물론 우리의 전통의식도 좋지만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우리말로 집행하는 의식이 필요하다. 기도하는 소리를 들으면 스스로 느끼고 감명을 받을 수 있는 기도와 참회 시식이 절실히 요망된다. 용성선사는 이러한 어려운 작업을 실천에 옮겼던 것이지만, 오늘날도 널리 시행되지 못하고 있으니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4) 민족의식의 고취
선사의 일생에 있어서 항일운동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러한 선사의 기개(氣慨)는 일제시대뿐만 아니라 해방 후에도 한국불교의 내면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므로 민족전통을 유지 계승하면서 서구 물질문화에 물들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쓰고 있다. 만약 오늘날 한국사회에 있어서 불교마저도 서구화되어 버린다면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 우리는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제시대의 항일운동이 오늘날은 민족정신 계승운동으로 전개되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는 문화적인 계승과 정신적인 계승으로 나눌 수 있다. 문화적인 면에서 선사는 우리글 우리말을 사용하였다. 일제의 강압 속에서도 굴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사용하고 보급하였다. 다음으로 정신적인 면으로는, 일제의 민족정신 말살정책의 하나로 시행된 불교의 왜색화(倭色化) 내지 대처화(帶妻化)에 대한 강력한 반대운동의 전개였다. 이것은 앞에서도 이미 말하였듯이 오늘날의 조계종을 중창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된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