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시대는 건국 초기부터 문치주의를 폈기 때문에 어떤시대 보다도 제지와 출판이 왕성하게 이루어졌다. 고려인들은 중국에서 전래된 제지술을 통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한 뒤 더욱더 발전시켜 중국인이 제일 좋은 종이라 칭하는 질 좋은 고려지를 만들어냈다. 고려는 종이 뿐만 아니라 필(筆), 묵(墨), 연(硯)이 송나라에서 높이 평가가 되었다. 하지만 고려말기에 접어들어서는 국운의 쇠퇴로 종이제조도 저조해졌다.
고려지의 원료는 닥, 등(藤:등나무)을 사용했고 닥피를 삶는 데는 석회와 잿물을 썼다. 또한 고려지를 만드는 도구로는 증해솥, 표백조, 발을 사용했다. 그리고 고려지는 추지법(搥紙法)이라고 하는 다듬이질 방법을 많이 사용하였다. 추지법은 적당한 수분을 먹인 다음 큰망치로 두들겨서 면을 고르게 하여 섬유상의 구멍을 메우고 광택있는 종이를 만드는데 필요한 종이 가공기술이다. 이것은 한지가 지나치게 물을 빨아들 수 있고 보푸라기가 이는 단점을 보완하는 것이다. 많이 두들기면 종이가 치밀해지고 광택이 나며 잔털이 일지 않아 글씨가 깨끗하게 잘 써진다. 이러한 기술은 우리 전통의 종이 가공법이 되었다.
고려지 종류에는 깨끗하고 단단하며 질긴 상화지(霜華紙), 얄팍하고 깨끗하여 매끄러운 부채등을 만들 때 사용한 선자지(扇子紙), 두껍고 우피처럼 질긴 계문표지, 백색 유연하여 미인의 손길처럼 부드러운 백면지 등이 대표적인 종류이며, 그 밖에 상백지(桑白紙), 사혼지(死婚紙), 삼첩지(三貼紙), 견양지(見樣紙), 청자지(靑磁紙), 금분지(金粉紙), 청지(靑紙) 등이 있었다. 고려판「사분율(四分律)」이라는 불서(佛書)에 한 책이 15~16가지의 종이로 되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종이의 종류가 다양했음을 알 수 있다. 주로 경주, 예천, 풍기, 청도 등 경상도 지방에서 많이 생산되었으며, 불서(佛書), 의서(醫書), 사서(史書) 등을 비롯한 각종 서적, 지폐를 만드는 데나 선물용으로 쓰였으며 중국과 교역하는데 필수품이 였다.
고려지의 우수성은 중국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계(程棨)는「삼류헌잡지(三柳軒雜識)」에서 종이의 품질이 우수한 고려지를 중국에서 으뜸가는 좋은 종이에 비유하였고 송나라 손목(孫穆)은「계림유사(鷄林類事)」에서 고려의 닥나무 종이인 백추지 빛이 희고 윤이 나서 사랑스러울 정도라고 극찬하였으며 왕희지가 쓴「난정서」에는 고려지는 단단하고 질기기가 비단과 같으며 여기에 글씨를 쓰면 먹빛이 아름답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고려지는 재질의 우수성으로 인하여 팔만대장경, 속장경의 인경본과 많은 불서제작에 사용이 되었다. 해인사 비로자나부처님 복장물에도 고려지를 이용하여 제작된 전적이 다량으로 발견되었는데 대부분 고려 12~13세기 자료들이다. 복장시 부처님의 몸속에 산소를 차단하고 당시 사용된 고려지로 인하여 거의 완형모습으로 나왔다. 발견된 고려전적은 서지학, 불교사, 불교미술사 분야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700년전 부처님께 복장한 고려전적을 통해 최고의 종이기술로 당시의 불심이 오래 동안 간직하기를 바라던 염원이 느껴지는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