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끽다거(喫茶去, 차나 한잔 마시게)’로 유명한 조주종심 선사(778~897)께 한 사람이 진영眞影(초상)을 그려 바친 일이 있었다. 그것을 받으시면서 선사는, “만일 나를 닮았으면 나를 때려죽일 것이요, 닮지 않았다면 당장 불살라 버려라.” 하였다.
조주선사의 행장을 담은 『조주록(趙州錄)』에 있는 글이다. 나같이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정말 이해하기 힘든 언행이어서 그림을 그려 바친 그 사람이 내가 아니길 참 다행이다싶었다. 조주스님께 선물한 그 그림은 초상화의 범주에 들어간 진영이었지만 우리가 이야기 하고 있는 선의 그림에도 실은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그러니 여기서 동양과 서양의 인물화의 차이를 잠시 살펴보고 지나가자.
동양화와 서양화는 제작하는 원래 태도나 지향하는 방향에 큰 차이가 있다. 특히 인물을 그릴 때에는 외모가 얼마나 비슷한가 보다는 그림의 주인공의 정신을 그림으로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해 보이는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평가기준이 된다. 이를 전신사조(傳神寫照 전신傳神 혹은 사신寫神이라고 하며 초상을 통해 대상의 품성, 인격, 정신을 담아 낸다.)라고 하며 인물화가 도달해야 하는 첫 번 째 목표점이기도 하였다. 물론 여기에 ‘터럭 한 올이라도 일치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다.(一毫不寫 便是他人)’라는 사실적인 경지까지 이룬다면 그림 속 주인공은 완벽한 그 인물의 재현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가르켜 ‘진영眞影’이라고 하였다. 진영, 말하자면 ‘진정한 그림자’라는 뜻인데, 그렇다보니 조주스님께는 그림 속의 인물이 그 누구일 뿐 그 사람은 절대 아니며 물에 비친 달빛과 같이 단지 ‘그림자’일 따름이었다.
조주록에는 저 대화에서 선사의 일갈에 대한 결말은 나와 있지 않다. 그런 결말을 기대했다는 사실 자체가 실은 웃긴 일이기도 하다. 조주 선사의 그 한마디는 그림은 그저 그림자이거나 혹은 허상일 뿐이라는, 더 나아가 우리가 눈으로 보는 현상 역시 바다 위에 떠있는 물거품이나 화로 위에 떨어지는 눈(雪)과 같이 허망할 수 있다는 경계를 하기 위한 대사였을 것이다.
조주선사는 그림 속에서 형사(形似, 형태)만 추구하는 것만을 경계한 것이 아니라, 어줍잖게 들이대는 식의 전신(傳神, 정신을 전함)까지를 포함하여 경계했지만 선화의 등장 이후 그 형식에 있어서 형사 보다는 단순화된 먹과 선으로 시도하는 전신을 그 우위에 두었던 것도 사실이다. 원대 말기의 유명한 화가 중에 하나인 예찬(倪瓚, 1301~1374)는 심지어 “일필逸筆로 대략 그리고 형사形似를 구하지 않는다.”라고 하였고, 송대 유명한 서예가이자 문인이었던 소식(蘇軾, 1036~1101)은 “형사形似로 그림을 논하는 것은 어린 아이같은 식견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비슷한 예로 글인지 그림인지 모를 난독성難讀性의 글씨체가 바로 초서草書이다. 초서는 그렇게 형태를 버리고 리듬만 살렸다. 몇 개의 핵심적인 부수만으로 그게 무슨 글자인지, 결코 아는 사람만 알아볼 수 있게 불친절하게 쓴 것이 초서이다. ‘이건 그림도 아니고, 글자도 아닌’ 서체만 가지고는, 원하는 뜻을 만인에게 전할 길이 없으니 어찌 그 정신을 전할 수 있으랴만, 간략하고 신속하게 쓰는 초서의 기법과 정신은 선화가 지향하는 바와 일정 부분 공감할 수 있다. 그래서 선화를 그리는 사람은 마치 서예에 있어 초서草書의 달인처럼 그에 합당한 충분한 안팎의 내공이 필요한 것이다.(유감스럽게도 감상하는 사람의 내공도 물론 함께 요구된다.) 대부분의 선화가 단순하고, 간략화 된 몇 개의 선과 먹의 번짐만으로 훌륭하게 완성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 내공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