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 년의 행자시절이 묵담스님 밑에서 염불을 익히고 예식을 배우며 절집생활을 익혔던 시기였다면, 칠 년에 걸친 강원시절은 만암스님 곁에서 경전공부를 했던 시기였다. 묵담스님에겐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는 철두철미함을, 만암스님에겐 합리적인 일처리 습관을 익혔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십 년 동안 여법하게 공부하고 만암스님에게 선지식이라는 칭찬을 받으며 그분에게 비구계와 보살계를 받았으나 가슴 한켠이 늘 허전했다. 뭔가 매듭을 지어야 할 것 같았다.
‘출가의 길이란 무엇인가’
‘출가의 길에서 수행자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출가의 길에 몸을 부려놓았으나, 망망대해와도 같은 그 길에서 무엇을 붙들고,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 지가 선명하지 않아 고뇌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렇게 아침, 저녁으로 예식을 올리고 경전을 읽고 살림을 사는 것이 내가 가야 할 길인가.’
뚜렷이 길이 보이지 않아 스님은 답답했다. 그런 까닭에 잠만 들면 꿈이었다. 앉아서 눈만 감아도 꿈에 시달렸다. 신경쇠약 증세에 이를 만큼 불안했던 시기에 해인사 총림으로 향한 발걸음은 변화를 위한 선택이었고 무엇인가 이끄는 힘이었다.
‘무엇에 이 한 생을 걸어야 하는가’
스님에겐 한 생을 걸 그 길을 발견해야 했고, 그리고 믿고 따를 스승이 필요했다.
출가한지 십 년만에 스님은 변화를 통한 성숙을 위해 길을 떠났다. 그리고 떠나온 그 길에서 ‘이 생에서 그 스승을 만나 다행이었다’고 회고할 만한, 자신의 중요한 시절을 바쳤던 스승을 만났다. 그리고 자신이 걸어야 할 가장 확실한 길을 발견했고, 뚜렷하고 큰 발걸음으로 그 길에 아낌없이 자신의 생을 던졌다. 스물 넷, 출가의 길을 들어선지 꼭 십 년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