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지리산 묘향대에서 사라진 개운 스님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학사대 - 원동 2009년 09월 331호
지리산 묘향대에서 사라진 개운 스님 이번 해인지에 우연히 글을 내게 되었습니다. 어떤 주제로 글을 쓸까 많이 망설였습니다.
해인지를 보는 사람이 어떤 분들일까? 생각하면서 공감대를 가질 수 있는 주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제가 출가하게 된 동기인 개운스님과 능엄경에 대해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흔치 않은 이번 기회에 동호동고자를 찾는 마음으로 능엄경과 개운스님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중학교 때부터 수행방법에 관심이 많았고 각 수행방법에 따라 수행한 사람들이 각기 어떠한 경지를 성취하는가에 초점을 맞춰서 가능한 모든 종교 및 수행문파의 수행방법에 대해 알려고 노력했고 모든 경전을 읽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가능한 모든 성현들의 말씀과 행적을 살펴보려고 노력했고, 어떠한 방법과 수행으로 어떠한 일상으로, 먹고 자고 입는 것에서부터 언제 먹는지, 무엇을 먹는지, 언제 자고 언제 일어나고 무엇을 입는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생활하는지 등 가능한 모든 범위에서 각기 비교하고 통합하여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과정은 출가하기까지 연속된 과정이었습니다. 한데 서로 상치되기도 하고 서로가 서로를 설명하려면 설명이 안 되는 부분에 있어서 각 종교와 수행문파들의 다양성을 그대로를 인정하고 모두를 통합해서 이해하려는 과정은 한 생각범위에서 하나를 받아들일 때마다 한동안 믿었던 생각이 깨지면서 스스로를 부정하고 이를 인정하고 다시 시작하는 결과가 되었기 때문에 늘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능엄경을 만났는데 비로소 안심하고 출가하였습니다.
스님들의 기본교육과정인 강원의 교과과정에도 포함되어 있는 능엄경은 그동안 바라밀제 번역본만 전해져 오다가 이번 불공삼장의 번역본이 개운스님을 통해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되니 매우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음은 불공스님의 능엄경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경위를 소개해 드립니다.

개운스님(1790~?)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외가에 의탁하였다가
봉암사에서 어린 소년의 나이로 머리를 깎고 그 후 십년 동안 스승을 구하여 강산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본사로 돌아와 문경 희양산 봉암사 환적암에서 스승(불공삼장(705~774))을 만나 수행하는 법을 듣고 백련암(白蓮庵)에서 금을 연단하여 구슬을 얻고(수다원과를 마침) 도장산 심원사에서 보임출태(사다함과)를 하고 유집임경(아나함과)하는 동안에 여가를 활용하여 유가심인정본수능엄경(瑜伽心印正本首楞嚴經)의 원고를 초하여 끝냈으나 발행할 시기가 아직 이르고 면벽수행(아라한과)이 더 급하기에 우선 보류하여 간행하지 않고 여러 마리의 용으로 하여금 교대하며 지켜 보호하게 하고 지리산 묘향대로 떠납니다.

은밀한 곳에서 남모르게 도를 닦아 증득한 뒤에는 모습이 신선의 풍채로 변하는데다 일마다 기적이 많은 것을 보고 사방 이웃에서 끊임없이 찾아들므로 오래도록 선정에 들기가 어려워 부득이 멀리 한적한 곳(지리산) 으로 떠났는데, 떠날 무렵 원고를 도장산 심원사 천장 위에다가 깊이 간직해 놓고서 후세의 어진 이를 기다리며 몇 가지 흔적을 남겼습니다. 경북 문경 화북읍 장암리 용유동엔 주먹으로 ‘동천洞天(신선들이 산다는 이상향)’이란 글자가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정과 끌로 새긴 것이 아닌 주먹으로 썼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백년 뒤 큰 인연이 있는 사람이 이를 인쇄하여 배포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실제로 100년뒤 1950년대에 양성陽性이란 스님이 도장산 심원사에 들러 잠시 머물게 되었는데 온지 며칠이 안 지나서 양성스님은 아주 묘한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밤이 깊어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이상한 환상幻像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환상은 점차 뚜렷해졌습니다. 처음에는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가 그 다음엔 두툼한 책이 나타났습니다. 나중엔 노인이 양성陽性스님을 향해 받으라는 듯이 책을 내밀었습니다. 양성스님은 왜 헛것이 보일까 의아해 하다가 그냥 잠이 들었습니다. 한데, 이튿날에도 똑같은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양성스님은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천장에 뭔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용기를 내어 천장을 열어 보았습니다. 천장 속엔 개운조사가 주석을 단<능엄경>이 있었습니다. ‘내가 떠난 뒤 백년 후에 인연 닿는 사람이 이 책을 발견하리라’한 개운조사의 예언이 이뤄진 것이었습니다. 양성스님은 책을 읽어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베꼈습니다. 그런 다음 원본은 천장에 도로 넣어두고 필사본만 가지고서 심원사를 떠났습니다. 양성스님이 심원사를 다녀간 지 사흘 만에 심원사에는 큰불이 났습니다.
모든 건물이 남김없이 다 타버렸고 개운조사가 쓴 책도 건물과 함께 재로 변했습니다. 양성스님은 개운조사가 당부한 대로 이 책을 출판하여 널리 전했습니다.

지리산에서 수행하는 이들 사이엔 개운스님의 얘기가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으며 개운스님이 현재까지 살아있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반야봉의 묘향대엔 개운조사를 한번만이라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