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열기를 피해 그늘로 숨어보지만 이 안에서도 태양은 맹위를 떨친다. 미로처럼 끊어 질듯 이어져 나가는 골목을 걷는다. 그다지 할 일 없는 어르신 한둘이 보일 뿐 마을은 적적한 기분마저 든다. 하긴 지방 소도시들의 사정이 대부분 이러하지 않던가? 부모들은 일터에, 아이들은 학원에 있기 마련이어서 골목을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단지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낮은 주택들로 이어진 마을 한 곳에 산청포교당이 있었다. 거개의 포교당이 그러하듯 이곳 역시 남 보기에 그럴싸한 모습은 아니었다. 2층 시멘트 누각은 범종루와 대문을 겸하고 있는데, 위아래 엔‘산청포교당’과‘연꽃어린이집’글씨가 큼직하게 쓰여 있었다. 문을 들어서자 놀이 시설로 가득한 마당과‘우리들 세상’이라고 쓰인 2층 단독 건물이 눈에 든다. 1층은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고, 2층은 법당이다. 그리고 오른쪽엔 요사채가 자리했다. 마당 한편에 앉아 있으니 아이들의 소리가 하나 둘씩 들리기 시작한다. 깔깔대는 웃음소리, 떠드는 소리, 징징대는 소리, 이야기 소리. 이 모든 것들이 일시에 들리기 시작하니 슬그머니 웃음이 절로 난다. 아이들의 소리는 언제나 살아 있는 에너지를 전해준다. 한낮의 무료함과 적적함으로 가득했던 동네 분위기가 일순간에 해소되는 듯하다. 놀이 시간이 되어 야외로 쏟아져 나온 아이들은 정말 생기발랄生氣潑剌 그 자체다. 튀어오르는 용수철 같고, 수다스런 시냇물 같다. 포교당보단 어린이 집이라는 명칭이 더 어울리는 듯 했다. 그리고 이곳은 미취학 대상인 연꽃어린이집 아이들뿐 아니라, 동네 아이들도 이곳을 놀이터로 삼고 있었다.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아육왕경阿育王經’이 생각난다.불교 인구가 노령화되어 가고 있다. 그것도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거개의 사찰엔 남성보단 여성, 청소년보단 노인들의 모습이 주류를 이룬다. 또한 수적으로도 마찬가지다. 불교에 몸이나 뜻을 둔 이들이라면 포교의 중요성을 누구나 알 것이다. 법은 산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현실세계에서 살아 숨쉬어야 한다. 그래서 도심 포교당이 더욱 중요하게 느껴진다. 가까운 곳에 부처님의 뜻이 있음에도 산중을 헤매는 것이 현실이다 보니 도심 포교당은 상대적으로 여러 면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불교의 미래는 어디에 있는가? 답은 간단하다. 포교에 있으며 그 중심엔 포교당이 있다. 이곳에 와 있으니, 마당을 뛰노는 아이들을 통해 살아 있는 법을 더욱 희망하게 된다. 어려서의 경험은 매우 소중하여, 마치 치어稚魚시절을 기억하고 성장한 성어成魚와도 같다. 어린 시절 흙으로라도 공양하듯 일상에서 복을 짓는 기회가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의 놀이터가 훌륭한 법당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산청포교당에 용수철이 튀어오르듯, 아이들의 생기 있는 소리가 끊이지 않길 기원한다.